▲ 수확된 포도는 바로 압착기에서 압착된다. <사진= 김지선>

자크송 하우스가 샴페인을 만드는 법

포도밭을 떠나 우리는 하우스의 길 맞은편을 가로질러 양조장으로 들어갔다. 양조장 안의 원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랗고 동그란 압착기 한 개와 사각형의 압착기 2개가 보였다. 수확 직후 4,000kg의 포도를 이 압착기에 모아, 깨끗한 즙만을 얻기 위해 손가락으로 누르듯이 살짝 압착한다고 한다. 산드린씨가 처음에 압착한 2,000ℓ의 포도즙 퀴베(cuvée)로만 와인을 만들며, 두 번째로 압착한 500ℓ의 포도즙 타이(taille)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500리터나 버린다고요? 남는 걸 미련없이 버리지 못하는 내가 샴페인 양조자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과감히 버림으로써 최고의 와인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

▲ 발효 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포도즙에 있는 침전물을 가라앉힌다. <사진= 김지선>

압착한 포도즙은 침전물을 가라앉히기 위해 12시간에서 24시간동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보관한다. 이때 포도즙이 산화하지 않도록 약간의 이산화황을 첨가하는데, 자크송은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이고자 드라이아이스를 더 넣는다. 24시간이 지나 침전물이 바닥에 가라앉으면 맑은 포도즙만 배럴로 옮기고 침전물은 조금 남겨둔다. 침전물에 섞여 있는 효모는 산화 방지나 타르타르산을 안정시키며, 와인에 풍미와 구조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효모는 유명 맛집마다 있는 비밀 양념의 역할을 한다. 비슷한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어도 와이너리 별로 특징적인 맛이 있으니 말이다.

▲ 1차 발효된 와인은 약 1년간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사진= 김지선>

우리는 자리를 옮겨 큰 오크통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게 걸러진 포도즙은 이곳에서 포도밭 구획(parcel)별로 나누어진 오크통에 들어가 발효를 시작한다. 11월에서 1월까지는 와인과 효모를 섞어주는 바토나주(batonnage)를 하고 약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이후 와인은 커다란 탱크로 옮겨져 블렌딩된다. 매년 날씨 등의 변수가 있기에 블렌딩되는 포도나 빈티지의 비율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후 탄산을 만드는 2차 발효를 위해 티라주(Tirage, 당, 효모가 들어있는 와인)를 더하고, 와인을 병에 넣는다.

▲ 병에서 숙성중인 샴페인에 짙은 침전물이 보인다. <사진= 김지선>

드디어 유리병에 들어간 와인은 지하셀러인 카브(cave)에서 샴페인의 모습으로 변한다. 자크송의 대표 샴페인 격인 퀴베 700 시리즈는 병입후 5년에 가까운 기간을 숙성하고 싱글 빈야드 퀴베는 9년 정도 숙성한다. 법적으로는 15개월, 유명 샴페인 하우스의 기본급 샴페인도 보통 3년 정도 숙성하는 것과 비교하면 자크송의 샴페인들은 꽤 오래 숙성하는 편에 속한다.

▲ 숙성 후 침전물을 한 곳으로 모으는 기로팔레트 <사진= 김지선>

몇 년간의 숙성이 끝나면 기로팔레트(gyropalette)라 불리는 기계에서 1주간 회전하며 샴페인 안에 있는 침전물이 병의 목 부분으로 모인다. 많은 샴페인 생산자와 같이 산드린씨도 기계와 수작업의 차이가 와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효모 등의 찌꺼기가 모두 병목으로 모이면 병 목부분을 얼려 뚜껑과 언 침전물을 제거하고(데고르주망, dégorgement), 샴페인에 정식 코르크와 뮤즐렛을 씌워 다시 6개월을 보관한 뒤 와인을 출시한다. 규모가 작은 하우스이어서인지, 아쉽게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이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 않아 카브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 침전물이 병의 목부분으로 모인 와인은 이곳에서 냉각된다. <사진= 김지선>

퀴베 700, 빈티지와 넌빈티지의 중간 어디쯤

'자크송'하면 떠오르는 붉은 글씨의 700번대 와인들. 퀴베 700(Cuvée 700) 시리즈는 자크송뿐 아니라 샴페인 지역에서도 독창적인 와인이다. 완전한 빈티지도, 그렇다고 아예 넌빈티지도 아닌 샴페인이기 때문이다. 퀴베 700은 한 빈티지의 와인 80%와 기존에 저장해둔 와인 20%를 섞어 만든다. 샴페인의 동질성보다는 한해의 특징을 살려내고자 한 것이다. 20%의 리저브 와인은 80%의 빈티지 와인의 특징을 지우지 않으면서 복합적인 맛을 내기 위해 더한다고 한다. 양 극단으로 가지 않음으로써 좋은 것만 취하는 자크송만의 방식이다. 이 퀴베 시리즈를 시작하며 자크송은 넌빈티지 샴페인의 생산을 멈추었다고 한다. 퀴베 700시리즈의 품질에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늘아래 같은 와인은 없다는 그들의 철학을 분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퀴베 700시리즈가 무엇인지를 알고나면 바로 왜 728번부터인지 궁금해진다. 왜 1번도, 700번도 아닌 728번부터 시작했냐고 산드린씨에게 물었다. 그는 "자크송 내부에서 샴페인을 구분하고자 사용한 생산 번호가 있었고, 1898년에 1번으로 시작하여 우리가 700시리즈를 내놓기로 결심한 2000년의 생산 번호가 728번이었다"고 설명했다. 언뜻 보기에 시케 형제는 모든 것을 바꾸려 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전통을 잇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크송 테이스팅

▲ 왼쪽부터 퀴베 736 데고르주망 타디프(degorgement tardif), 퀴베 740, 디지 코르네 보트레이(Dizy Corne Bautray) 2007 <사진= 김지선>

퀴베 736 데고르주망 타디프(degorgement tardif, 늦은 데고르주망)는 2008년 빈티지 와인을 9년간 숙성한 후 출시했다. 레몬처럼 시면서 나무껍질처럼 씁쓸하고 거친 맛이 나서 아직 완전히 숙성하지는 않은 인상을 준다. 10년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 보면 꽤나 잠재력이 있다.

올해 새로 출시된 퀴베 740은 과일의 달콤한 향이 강하고, 요거트향이 잘 살아있다. 마시면 향을 맡을 때보다 시큼 새콤한 과일맛이 나고, 산도가 높아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베이스 와인의 빈티지는 2012년이고, 나머지는 리저브 와인이 들어갔다.

디지 코르네 보트레이(Dizy Corne Bautray) 2007은 코르네 보트레이라는 단일 밭에서 나온 빈티지 샴페인이다. 샤르도네 100%로 만들어졌으며 9년 숙성했고, 도자주는 넣지 않았다. 9월 중순이 되어서야 수확을 시작할 정도로 포도 숙성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나뭇가지처럼 뻣뻣하면서도 달콤한 과일, 요거트향이 은은하게 난다. 역시 산도가 높고 새콤한 레몬향이 느껴진다. 

자크송 하우스를 떠나며

포도밭부터 양조장까지 와이너리를 돌아보는 동안 '내추럴'이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그만큼 자크송 하우스는 샴페인을 만드는 작은 부분에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최고의 맛을 찾아낼 뿐이다. 이런 하우스의 모습을 닮아서인지, 산드린을 포함한 이곳 사람들에게서도 자연스러운 사람 냄새가 풍겼다. 그들의 푸근한 웃음은 자연에서 나온 것일까. 자크송 샴페인 한 잔과 함께 덧칠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만끽하고 싶다.

▲ 김지선 칼럼니스트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