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포도 탐구] <4>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의 보조가 아닙니다.

승인2018.01.24 12:51:21
▲ 메를로 100%로 만든 페트뤼스 <사진= Andrew Phillips>

와인을 접하는 열 명 중 아홉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알고 난 후에야 메를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 역시 메를로의 첫인상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포도일 뿐이었다. 타닌이 거친 와인에 부드러운 질감과 묵직한 바디감을 더하는 것만이 메를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메를로를 이러한 조수의 역할로만 본다면 아쉬운 일이다. 보르도 생테밀리옹과 포므롤의 최상급 와인인 페트뤼스(Petrus)와 르 팽(Le Pin)에는 메를로가 90% 이상 들어가며, 전 세계 재배량의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생산량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메를로는 주로 진득한 검은 자두의 과일 향이 두드러지는 품종이다. 자라는 지역의 기후가 더울수록 검은 계열의 과일 향이 많아지고 기후가 서늘할수록 라즈베리와 같은 붉은 열매 향이 많아진다. 보통 알코올이 높은 풀바디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풍미가 강렬하지는 않으나 카베르네에는 없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소비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메를로는 전 세계에서 무려 11만 4천 헥타르에서 재배되었는데, 이는 당시 카베르네 소비뇽의 재배 면적인 5만 1천 헥타르를 훌쩍 뛰어넘는 넓이였다. 왜 이렇게 많이 재배될까? 이는 메를로가 다른 품종보다 일찍 열매를 맺어서 따뜻한 기후는 물론 축축하고 서늘한 기후에서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다. 열매가 빠르게 익어서 포도의 산도가 떨어지기 전에 수확해야 하고, 열매가 고르지 않게 익거나(coulure), 봄 서리, 곰팡이 또는 노균병에 약한 약점이 있다.

이 품종의 기원은 카베르네 프랑과 프랑스 토착 품종인 마들렌 누아 데 샤렝테(Magdeleine Noire des Charentes)다. 카베르네 소비뇽 역시 카베르네 프랑을 부모 품종으로 두고 있어 메를로와는 반쯤 형제 격이다. 이런 역사가 있어 카베르네와 메를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 메를로 주요 생산지

프랑스에서는 시라와 블렌딩한 랑그독(Languedoc) 지역의 와인이 점차 늘고 있으며, 이외에도 부르(Bourg), 블라예(Blaye), 프롱삭(Fronsac),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AOC 대부분 지역에서 메를로가 재배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리울리에서 가장 좋은 품질로 만들어지는 포도로 자리매김했으며, 베네토, 트렌티노-알토 아디제, 에밀리아-로마냐 등 이탈리아의 20개 지역 중 14개 지역에서 자라고 있다. 슈퍼 투스칸 와인으로 잘 알려진 마세토는 메를로 100%로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동부 유럽, 즉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에서도 메를로는 사랑받는 존재다.   

스페인의 경우는 예외다. 전 세계의 흐름과는 예외적으로 이곳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메를로보다 많이 재배되는데, 스페인의 뜨거운 기후 때문에 메를로가 산도를 금방 잃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에서 가장 많이 메를로가 자라는 곳은 페네데스다.

미국에서는 영화 '사이드 웨이'의 영향으로 잠시 메를로의 인기가 주춤하기도 했으나, 캘리포니아에서만 1985년 800 헥타르이던 재배 면적이 2010년대에 들어서는 18,000 헥타르로 증가했다. 다소 서늘한 워싱턴주의 생산자들은 메를로를 사용하여 섬세하고 과실 향이 뛰어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외에 뉴욕에서도 메를로의 재배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호주의 메를로 생산은 1990년대에 미국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급증했으나, 이후로는 큰 증가 없이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다. 또 뉴질랜드에서는 피노 누아에 이어 가장 많이 재배되는 적포도 품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 김지선 칼럼니스트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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