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 없는데, 아침에 눈을 떠 보면 희한하게 개운한 날이 있다. 과음한 다음날 일어나 보니 며칠 동안 없어지지 않던 뾰루지가 말끔히 사라지고 찌뿌둥하던 몸도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드는 날처럼 말이다. 포르투에서의 첫 밤을 보낸 다음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호텔의 친절한 직원들 때문인지 아니면 전날 먹은 따뜻한 포르투갈의 전통 요리 덕분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피로 때문인지, 차가운 숙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위 꿀 잠을 잤다. 호텔을 나서니 우중충한 날씨에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것 같다. 다양한 색을 칠한 거리의 건물들은 흐린 날씨에 뒤덮여 밝기를 한껏 낮춘 사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뭐, 이건 이대로 운치가 있어 좋다! 폭우가 쏟아지면 쏟아지는 대로 신나게 물을 첨벙이며 낯선 도시를 둘러볼 준비가 돼 있었다.

숙소에서 내려와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 나타(Nata)가 유명하다는 집을 찾아갔는데 하필 휴일이다. 조금 걷다가 파스텔(Pastel: 패스츄리 빵과 디저트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바(bar)와 그 앞의 키 높은 의자가 담배와 신문, 잡지 등을 팔며 때로는 커피와 간단한 음식도 제공하는 프랑스의 따바(Tabac)를 연상시킨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 한 잔과 나타, 그리고 슈크림 빵 하나를 시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는 아저씨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여행자로서, 나 이외에 다른 관광객 없이 현지인만 있는 곳에서의 식사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식 이름,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는 우유와 달걀, 설탕 등을 넣어 만든 과자, 즉 일종의 커스터드 타르트(Custard tart)이다. 와인이 그렇듯,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과자들도 대부분 수도원에서 만들어졌다. 19세기 초, 수도 리스본 근처 벨렘(Belém)지역에 있는 제로니무스(Jéronimos) 수도원이 입헌 군주제를 표방한 자유주의 혁명과 함께 문을 닫게 되자, 한 수도사가 나타의 레시피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층층이 쌓인 바삭한 패스츄리와 겉을 살짝 태워서 느껴지는 버터와 캐러멜 맛 달콤함이, 노란색의 마냥 부드럽기만 한 다른 에그 타르트와는 또 다른 맛이다.

수도사들, 맛있는 거 먹으며 살았구나.

에스프레소와 너무도 잘 어울려 몇 개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거대하기만 한 슈크림 빵은 왜 시켰나 모르겠다.

상점들이 늘어선 산타 카타리나 거리를 지나 볼량 시장(Mercado do Bolhão)에 다다랐다. 1839년에 문을 연 이 재래시장은 야외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빵과 채소, 해산물, 치즈 등의 식재료부터 꽃과 각종 생활용품, 그리고 포르투 하면 빠질 수 없는 포트와인까지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었다. 평소 쇼핑에 취미가 없던 나는 아줄레주 타일 장식의 냄비 받침대와 식탁보, 포르투 기념 마그넷 등,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에 올 때는 그 소재를 찾을 수 없어서 가져오지 못한, 자질구레한 것들을 샀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렴한 물가에 탄력을 받아, 나는 시장에서 발견한 분홍색 머플러도 사기로 했다! 머플러의 길이가 너무 짧다고 하니 상인 분이 길게 매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내 목에 그럴듯하게 걸쳐 준다. 굳이 유럽의 끝까지 와서 내가 얼마나 패션 감각이 없는 사람인지를 드러낸 것 같아 머쓱해진 나는, 서둘러 계산을 하고 시장을 나왔다. 그 후 프랑스에 있는 동안 가을, 겨울마다 함께 했던 그 머플러를, 나중에는 보풀이 너무 많아져 한국에 가져올 수 없었다.

▲ 채소와 꽃을 함께 팔고 있는 볼량 시장의 한 가게 <사진=송정하>

여행을 하면 늘 배가 고프다. 하지만 나는 오늘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점심은 불량 시장에서 산 옥수수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함께 마실 카페라테를 사기 위해 맥도날드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의 거대한 독수리 모양 장식이 위압적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의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와 계산대 위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햄버거 먹는 곳이 왜 이리도 클래식하고 웅장한가 싶다. 알고 보니 임페리알(Imperial)이라는 카페를 개조한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맥도날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맥도날드에서 나와 기념품점에 들러, 그때까지 말로만 듣던 셀카봉이라는 것을 샀다. 나는 새로 산 분홍색 목도리를 길게 두르고, 다양하고도 수많은 셀카를 찍어 대며 리베르다드(Liberdade) 광장을 거쳐 다음 목적지인 클레리구스 탑(Torre Dos Clérigos)으로 향했다.

포르투를 상징하는 클레리구스 탑은 1763년에 완공되었는데 75 미터 높이에 240개의 계단을 가진 매우 높은 탑이다. 그래서 두오로(Douro) 강에 도착하는 배들의 등대 역할을 하기도 하고, 19세기에는 매일 정오마다 이 탑에서 대포를 쏘아 마을에 시간을 알리곤 했다고 한다. 탑 내부는 돔 모양의 천장과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등을 갖춘 교회 그리고 각종 성화와 금은 세공품, 조각품 등이 있는 전시실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전시회가 포함된 3유로짜리 티켓(현재는 무려 6유로라고 한다)을 들고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계단 오를 일이 많다. 옛 건물과 지형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 때문일까, 공항에 내려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허름한 숙소를 찾아가는 순간부터 계단과의 씨름이 시작되지만 그중 압권은 방문한 도시의 전경을 보기 위해 이처럼 도시의 상징적인 탑을 오를 때다.

계단은 대체로 발판, 통로 할 것 없이 폭이 좁고 경사는 심하며 구불구불 나선형으로 되어 있다. 중간에 내려오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층계참에서 몸을 벽에 바짝 기대고 잠시 서 있을 때 빼고는 묵묵히 앞을 향해 전진해야 뒤에 오는 사람이 방해받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긴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는 또 의식의 흐름 같은 것에 빠진다. 다음에는 더욱 가뿐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평소에 운동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지라는 각오부터, 슬슬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질 때 즈음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돈을 내고 이런 힘든 수고를 해야 하나 하는 의문, 그리고 계단 오르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듯하여 마침내는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알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때가 바로 탑의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춥기만 했던 1월의 포르투지만 꼭대기에서 느껴지는 바람이 시원하다. 포르투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포트와인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와 포트와인을 생산하는 여러 와이너리들이 보인다. 날씨가 맑았다면 도우루 강 너머 바다까지 보였겠지만 흐리고 안개 낀 날씨가 주는 포르투만의 정취가 느껴진다.

▲ 탑 꼭대기에서 본 포르투의 붉은 지붕들 <사진=송정하>

생각해 둔 관광지를 갔을 뿐인데 오늘 하루 목표를 채운 것 같은 보람을 느껴 스스로에게 후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게 만드는 게 바로 여행의 고마운 점 같다. 여유가 생긴 나는 인터넷도 찾지 않고 근처 거리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칼데이레이루스(Caldeireiros)’로 들어갔다. 매우 깨끗하고 모던한 분위기로 벽에 장식된 아줄레주 타일마저 쿨하고 시크하다. 나는 우선 타파스(Tapas)로 대구 크로켓(Bolinho de Bacalhau)과 트리파스(Tripas a Moda do Porto) 즉 포르투식 내장 요리를 주문했다.

돼지머리고기와 송아지 내장을 샐러리, 당근, 양파, 마늘 등 각종 채소 그리고 흰콩과 함께 조리하여 빵 혹은 밥과 함께 먹는 트리파스는 순댓국을 즐겨 먹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다. 프랑스에도 비슷한 내장고기 요리가 있지만 포르투의 트리파스는 고기 특유의 냄새 없이 담백한 풍미가 일품인 것이 포르투갈 사람들, 고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분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이렇다. 15세기 초반, 서아프리카 연안 탐사와 대서양 탐험을 이끌어,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개막한 ‘항해자’ 엔리케(Henrique) 왕자는 어느 날, 포르투 시민들에게 아프리카에 있는 포르투갈 군대에 공급할 고기를 모두 기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포르투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남은 내장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탄생한 요리가 이 ‘포르투식 트리파스’ 라고 한다. 그래서 포르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트리페이루(Triperio), 즉 내장고기 먹는 사람(Tripe eater)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따뜻하고 푸짐한 요리 덕에 포르투갈에서는 후한 인심과 정을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레스토랑 바의 선반에는 포트와인병이 즐비하지만 내일모레, 샌드맨(Sandeman)과 테일러스(Talyor’s) 와이너리를 갈 예정이기 때문에 포트와인은 잠시 아껴 두기로 했다. 대신 도우루 지역의 레드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포르투갈 하면 포트와인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포트와인에 들어가는 품종으로 만든, 맛있고 진한 드라이 레드 와인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주문한 것은 포르투갈의 대표 품종인 토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토리가 프랑카(Touriga Franca)와 템프라니요(Tempranillo)의 포르투갈식 이름인 틴타 호리스(Tinta Roriz)가 블렌딩된 것이었다. 진한 루비색만큼이나 풍부한 무게감과 익은 베리 류의 맛이 오크 향과 잘 조화되었다. 산도도 적당하여 트리파스로 가득 채운 입안을 상쾌하게 만든다.

와인에 두 가지 타파스 요리를 느긋하게 먹고 나니 잊고 있던 메인 요리, 타이거 새우 요리가 나온다. 이미 배가 꽤 부른 참이었는데 다행히 새우가 이름값을 못하고 매우 작다. 이어서 포르투갈식 대구전도 나온다. 남은 와인과 함께 진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호사를 누리고 싶었으나 배가 너무 불러 차마 그러지 못했다.

아직 밤 8시밖에 안됐는데 밖은 이미 어둡고,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 푸짐하게 먹었으면 다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의무가 아니던가. 나는 언덕 위에 지어진 포르투 대성당을 지나, 포르투와 빌라 노바 데 가이아를 잇는 ‘동 루이 1세 다리(Ponte D. Luís I)’를 보기 위해 내처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 계단을 걸으니 도우루 강이 나오고 저 멀리 클레리구스 탑 꼭대기에서 보았던 와이너리들이 점점 가까워 온다. 한참을 더 내려가니 드디어 동 루이 다리와 강 주변의 황홀한 야경이 펼쳐진다.

▲ 전차가 지나가는 동 루이 다리와 강 너머 보이기 시작하는 와이너리들 <사진=송정하>

가만 보니 파리 에펠탑의 저층 부분을 떼어 와 양쪽으로 길게 죽 잡아당긴 모양새다. 포르투갈의 국왕 루이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철교는 알고 보니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Théophile Seyrig)라는 인물이 설계했다고 한다. 도로와 철도 병용교 로서, 위층은 전차가 다니고 아래층은 자동차가 다니며 위아래 모두 보행자 전용구역이 함께 있다. 나는 낮에 산 셀카봉을 들고 내 얼굴과 배경이 같이 나오는 완벽한 구도를 찾기 위해 위아래 보행자 전용 도로를 열심히도 왕복했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가려니 이번엔 오르막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오르고 오른 후 포르투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 걸린 거울 속에는 아까 산 화사한 분홍색 목도리가 무색하게, 목에는 무거운 디지털카메라와 한 손엔 셀카봉을 든 산발한 머리의, 그야말로 만신창이 여행객이 있었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숙소의 온도 변화를 확인할 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 송 정 하

법대를 나왔지만 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아 프랑스 보르도로 떠났다. 보르도 CAFA에서 CES(Conseiller en sommellerie:소믈리에컨설턴트 국가공인자격증), 파리 Le COAM에서 WSET Level 3를 취득했다. 사람이 주인공인 따뜻한 와인이야기를 쓰고 싶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송정하 noellesong0520@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