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성의 400일간 세계와인기행] 프랑스, 샤토 파프 클레망 (Chateau Pape Clement, France)

700년 역사를 간직한 교황 클레멘스 5세의 와이너리를 가다
승인2019.12.12 14:21:39
▲ 페삭 레오냥에 있는 파프 클레망의 철제 정문

샤토 파프 클레망은 보르도 페삭 레오냥에 위치하고 있으며 700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로, 클레멘스 5세 교황의 이름을 가졌다. 그라브 Grave 지역의 Grand Cru Classe에 속하는 이 와이너리는 14세기 초엽 보르도의 대주교였던 베르트랑(Bertrand de Got)의 소유로, 그가 대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친형이 선물로 준 와이너리였다.

베르트랑은 그 이후에 프랑스 최초로 교황의 자리에 올랐는데, 미남왕으로 불리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당시 로마 교황청과 힘겨루기를 하며 왕권을 확장하던 차에,  프랑스인을 교황으로 내세우는 억지를 부려서 졸지에 베르트랑을 교황으로 추대하게 된 것이다.  그가 소유했던 포도원은 교회에 헌납하고 보르도를 떠났는데, 한번도 로마 바티칸으로 가지도 못하고 아비뇽에 머무른 채 불운한 삶을 살았다.

▲ 3단으로 적재된 오크통들이 숙성중이다. 붉은 색상마저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듯하다

14세기 초엽은 교황 권위와 세속의 군왕의 권세가 극한으로 대립했고 클레멘스 5세를 포함, 7대 교황이 약 70년간 아비뇽 유수 교황청 시대를 지내며 로마와 대립하던 그런 시기였다. 필리프 4세는 로마 교황의 정치간섭을 극도로 싫어하여 자신을 황제로 선언하여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며, 프랑스의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그는 플랑드르 지방과 아키텐의 소유권을 놓고 영국의 에드워드1세와 전쟁을 치루면서 필요한 전비 확보를 위해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들이며 교황을 코너로 몰아넣었다.

삼부회 소집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진 필리프 4세는 교황과 정면 대결에 나섰는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대범한 작전을 펼쳤으니, 바로 교황을 납치하는 일이었다. 1303년 필리프 4세는 심복 부하 노가레를 파견하여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이탈리아 아니니의 별장에 감금하고, 반항하는 교황의 뺨까지 때리며 안하무인격 무례를 범했다.

▲ 프랑스인으로 최초의 교황, 클레멘스 5세의 문장이 보인다

프랑스로 납치하는 과정에서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교황은 너무 화가 나고 분통해서 한달 만에 홧병으로 사망하였다. 콘클라베에서 그의 후임으로  베네딕토 11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납치현장에 있었던 그는 즉시 노가레를 파문하고 복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 교황도 불과 1년만에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뜨게 되는데, 그가 독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베네딕토 11세 서거 후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진행되었으나, 추기경단은 양분되어 일년간 공전하며 혼란이 가중되었다.

프랑스의 실세 필리프 4세의 추종파와 이탈리아 보니파시오 8세 추종파로 분리되어 1년간 갈등을 겪다가 결국 프랑스 우호 진영의 추기경들이 지지했던 보르도(Bordeaux)의 대주교 베르트랑(Bertrand de Got)을 교황으로 선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는 1305년 6월 5일 클레멘스 5세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프랑스인으로서 처음으로 교황에 선출된 것이다.

▲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파프 클레망의 실내 인테리어

그러나, 그의 앞길은 험난했다. 교황의 아비뇽 유수와 서방 교회의 대분열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고, 10년내에 죽게 되는 비운을 겪은 것이다. 클레멘스 5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리용으로 추기경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교황 즉위식을 치루었다.

교황의 즉위식 날 브르따뉴의 공작 요한 2세가 교황 앞에서 기사단을 이끌고 대성당을 향해 가는 길에 수많은 축하 인파가 밀집하여 대 상황을 이루었는데, 어느 건물벽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무너지는 바람에 벽더미에 깔려 큰 부상을 당해 요한 2세가 나흘만에 죽게 되는 사고가 생긴 것이다.

너무나 불길한 징조였을까, 이후 자신을 밀어준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의 압력은 거세져 점점 더 목을 졸라왔고, 그 결과 교황 클레멘스 5세는  로마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아비뇽에 머물게 되었고, 그를 포함, 7대에 이르는 교황들이 아비뇽에 정주하게되어, 이른바 70년간의 아비뇽 유수가 어어졌다.

▲ 오랜 역사를 간직한 페삭 레오냥의 샤토 파프 클레망 와이너리 건물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자신이 교황으로 임명한 클레멘스 5세를 강압하여, 당시 십자군 전쟁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던 템플기사단들을 이단으로 몰아 붙이며 전원 체포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자끄 드 몰레 단장을 포함, 지휘부 전원이 체포되고 성전기사단의 모든 재산을 압류했다.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고 서양에서 불길한 날로 터부시 되는 '13일의 금요일' 의 기원이 되었다.

살아남은 템플기사단 단원들은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프리메이슨을 조직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템플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1314년 3월18일 이단 판정으로 화형 당하면서 필립 4세와 클레멘스 5세에게 '너희들도 올해 안에 반드시 죽을것이다'라며 죽음의 저주를 퍼부었는데, 우연의 일치였던지 교황은 그 다음 달에 죽고, 필립4세는 그해 10월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일설에 따르면, 클레멘스 5세가 죽은 날 밤, 그의 시신이 안치된 성당에 벼락이 내리쳐 성당 건물과 그의 시신이 완전히 새까맣게 불타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운 저주였는지, 아뭏던 남을 무고하게 해치면 벌을 받나 보다.    

▲ 지하 와인 숙성고에서 익어가는 와인

이런 슬픈 역사를 간직한 그라브 지역 내에서도 페샥 레오냥에 위치한 파프 클레망 Chateau Pape Clement 와이너리는 양조장과 와인 셀러 등 여러 곳에 교황의 문장과 상징물로 가득한 곳이다. 와인 또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데, 특히 화이트 와인은 최고 수준급이다.

이 와이너리는 프랑스 혁명 후, 몇 명의 소유주들의 손을 거치며 포도원의 상업적 개발 시도가 이어졌고 19세기말에는 보르도의 2등급 그랑크뤼 와인 가격에 맞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재앙수준의 우박으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뒤 이어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방치되어 있다가 1949년 이후 비로소 그 명성과 잠재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전설의 보르도 양조학자 에밀 페노(Émile Peynaud)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페삭 레오냥 지역에서 샤또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과 라 미숑(La Mission)에 이은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 고객 접견실에 비치된 파프 클레망의 와인들

1994년 주인이었던 폴 몽테뉴 사망후, 아들 레오 몽테뉴는 당시 샤토 라 투르 카넷(Chateau La Tour Carnet)의 소유주 베르나르 마그레즈(Bernard Magrez)와 함께 이 와이너리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  유명한 양조컨설턴트인 미셸 롤랑이 양조를 컨설팅 해주고 있다. 포도밭 면적은 약 10만평 정도이며, 그 중 9만평에 카베르네 소비뇽 60%와 메를로 40%가 식재되어 있다. 나머지 밭에는 소비뇽 블랑 45%, 세미용 45%, 뮈스까델 10%의 청포도 품종이 재배된다.   

▲ 지하셀러에서 익어하는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들

그랑뱅 Grand Vin으로 분류되는 샤토 파프 클레망(Chateau Pape Clement)은 연간 85천병의 레드 와인과 4000병 정도의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세컨 와인으로 Le Clémentin du Pape Clément 과 Le Prélat du Pape Clément 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Grand vin은 일반적으로 65%의 Cabernet Sauvignon과 35%의 Merlot 블랜딩 비율을 보이고 있다. 오크통에서 최소 14개월 동안 숙성되는데, 절반 정도만 새 오크통을 써서 절제미를 더한다.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소비뇽 블랑 50%에 세미용 50%를 블랜딩한다. 

▲ 시음 와인중 단연 최고였던 샤토 파프 클레망 블랑 2013

시음했던 2013 파프 클레망 화이트 와인의 색상은 옅은 금색을 띄고 있었고, 잘익은 감귤향과 어렴풋한 열대 과일향이 올라왔고, 은은한 오크향이 기분좋게 올라와 과일향을 압도하지는 않았다. 단단한 산도가 골격을 잘 잡아주었고, 입안에서는 크리미 하면서도 구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련된 절제미가 돋보이는 페삭 레오냥 화이트의 정수를 느끼는 듯 했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인력개발원 국제교육팀장, 호텔신라 판촉/마케팅팀장, WSA와인아카데미 대표로 일했으며,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7천명의 구독자를 가진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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