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 Quixote, Wilhelm Marstrand <사진=Wikimedia Commons>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돈키호테 中

▲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1605)', 초판 표지 <사진=Wikimedia Commons>

누구나 다 알지만, 제대로 완독한 사람은 드문 소설. 1,600쪽이 넘는 분량에 등장인물만 650명이나 됩니다.

라만차의 돈 키호테(스페인어: Don Quijote de La Mancha, 돈 끼호떼)는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지은 소설로, 세계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됩니다. 그전의 기사 소설은 전지전능한 3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묘사해 나갔습니다. 반면 돈키호테에서는 등장인물이 대화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제목은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지요. 1605년 발표될 때의 원제목은,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 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입니다.

'돈’은 경칭이고, ‘키호테’는 갑옷의 허벅지 보호 장비 이름입니다.

▲ 피카소의 돈 키호테 작품

피카소의 드로잉입니다. 라만차 평원에 작렬하는 태양아래 산쵸 판사, 사랑하는 말 로시난데와 함께 대평원 위를 걷는 ‘돈키호테’,

라만차는 스페인 최대의 와인 생산지 이기도 하지요. 1615년에 출판된 <돈키호테> 후편에서 산초는 “어떤 술이든 냄새만 한 번이면,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맛은 어떻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술통을 몇 번이나 바꿨는지, 술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알아맞히거든요. 하지만 놀랄 건 없어요. 내 핏줄에 우리 아버지 쪽으로 오랜 세월 동안 라 만차에서 알려진 아주 대단한 술 감정사가 둘이나 있었으니 말이죠.”라고 말하며 이 말에 대한 증거로 조상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피카소는 큐비즘 양식과는 전혀 다른 담백한 터치로 모국 스페인의 영웅을 그려냈습니다.

▲ 앞: 돈 키호테와 산초 뒤: 세르반테스 <사진=Needpix>

"산초, 자유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가장 값진 재산 중의 하나다. 우리는 하늘이 내려 준 빵 한 조각을 하늘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감사할 필요 없이 떳떳하게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야." 

- 돈키호테 中

“세르반테스의 삶은 온갖 사건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에스파냐어권의 뛰어난 작가가 쓴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다. 그의 명성은 서양 언어권에서 단테, 셰익스피어, 몽테뉴, 괴테와 톨스토이가 보여주었던 탁월함처럼 영원한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글 쓰는 방법을 알았고, 돈 키호테는 행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오로지 서로를 위해 태어난 하나다.”
- 해럴드 블룸

"돈키호테는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도 그를 위해 태어났소. 그는 행동을 하고 나는 기록을 하는 것이오... 그리하여 우리 둘은 하나인 것이오. 안녕히!" 

2부의 말미에 세르반테스가 쓴 구절 입니다.

▲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사진=Wikimedia Commons>

작가 세르반테스는 평생을 불운과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떠돌이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녀야 했으며, 오스만 터키와 스페인을 필두로 한 기독교 함대가 일대 격전을 치렀던 역사적인 레판토 해전에 참여해서는 평생 왼손을 제대로 못 쓰는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레판도의 외팔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지요.

1575년 9월에 귀국할 때는 탄 배가 태풍에 휩쓸리고 터키 해적의 습격까지 받아 포로가 됩니다. 노예 신분으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풀려나게 되지요. 

돈키호테를 쓴 것은 1603년, 만 56세의 나이였으니 저하고 비슷할 때였습니다. 1605년 돈키호테를 집필한 곳도 감옥에서였습니다. 평생 불운이 떠나지 않았던 이 작가는 아무 죄도 짓지 않았지만 무고하게 감방에 갇혀야만 했고,

그를 위안하는 유일한 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흔히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정신 나간 기사의 터무니없는 무용담’ 정도로 기억되는 이 소설. 그러나 서양 문학에서는 가장 뾰족한 봉우리로 평가받습니다.

흔히들 웃으며 시작했다가 울면서 책장을 덮는다고 하지요. 유럽사람들은 피레네 남쪽은 유럽이 아니다고들 합니다. 르네상스도 피레네산맥은 넘지 못했지요.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의 남쪽입니다. 스페인은 아주 독톡한 문화와 기후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형적으로 지중해와 지브롤테 해협이 함께 맞닿아 있고 아프라카와는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요.

이베리아인, 켈트인, 페니키아인, 아랍인, 유대인 등 굉장히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복합체 입니다. 저는 유럽은 다양한 가치를 서로 존중해주는 문화가 인상적이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그 전형적인 나라가 바로 스페인입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피카소, 가우디, 미로, 달리 같은 걸출한 예술가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공통점은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다른 형식의 예술을 제시한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공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냉정하고 논리적인 서유럽인들에 비해 스페인사람들은 감성적이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이며 고정된 규범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천재 예술가들을 키워낸 예술적 자궁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여러 나라들의 돈키호테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페인사람들의 정서적 DNA의 원조가 돈키호테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카소나 달리에게 돈키호테가 오버랩 되는건 저 만의 느낌일까요?

▲ Gustave Doré - Miguel de Cervantes's Don Quixote <사진=Wikimedia Commons>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돈키호테 취급을 받았습니다. 현실감각 없는 허무맹랑한 존재로 비쳤던 돈키호테는 현대 산업 시대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쿠바의 혁명가 체게바라가 그랬고,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의 스티브잡스가 그랬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새로운 것에 지속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우직하게 살자)

누가 미친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 돈키호테 中

1616년 4월 22일 새벽 미구엘 세르반테스가 숨을 거뒀을 때 임종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혼자였습니다. 바로 다음 날 영국의 셰익스피어도 숨졌습니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 돈키호테 中

오늘 밤, 저는 라만차의 사나이를 꿈꿉니다.
사족으로는 돈키호테라는 와인도 있답니다.

▲ 돈 키호테 와인(Homenaje a Don Quijote) <사진=Union Campesina Iniestense>

특히 2016년 빈티지는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400년이 된 해입니다. 라 만차 지역에 속하지만 1982년부터 독자적인 DO를 갖게 된 만추엘라(Manchuela)에서 생산된 와인이며, 오크통(미국산)에서 3개월 숙성. 품종은 템프라니요 70%, 쉬라30%가 블렌딩.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권기훈 a90049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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