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백운재] 중국에서 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개중에는 원숭이들이 무심코 모아놓은 과일들이 자연적으로 발효되어 술이 만들어졌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고, 하(夏)나라 때──혹은 그보다 이전인 황제(黃帝) 시대──의 인물로 알려진 두강(杜康)이 처음 ‘발명’했다는 설도 있다. 《여씨춘추(呂氏春秋)》나 《박물지(博物志)》 등에 따르면 이보다 훨씬 뒤인 동주(東周) 때에도 술을 잘 빚었던 같은 이름의 인물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서주(西周)의 노래로 알려진 《시경(詩經)》의 몇몇 작품들에서 술이 언급되고 있으니, 적어도 동주 때의 두강은 ‘발명자’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리고 청나라 건륭(乾隆) 17년(1752)에 편찬된 《백수현지(白水縣志)》에 따르면 한(漢)나라 때에도 술을 잘 빚은 두강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그의 자(字)가 중녕(仲寧)이었다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민간 전설에서 전해지는 두강이 술을 만들게 된 과정이다. 어느 날 꿈에서 하얀 수염의 노인이 나타나 두강에게 우물을 하나 내려주며 9일 이내에 산속에서 서로 다른 세 사람에게서 얻은 피 세 방울을 우물에 떨어뜨리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료를 얻게 될 거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대문 앞에 정말로 우물이 하나 생겨난 것을 발견한 두강은 즉시 산으로 들어가 피를 얻을 사람을 찾았는데 사흘째 되는 날부터 각기 사흘의 간격을 두고 세 사람을 만나 피를 얻게 된다. 그 세 사람은 순서대로 시를 읊조리는 문인과 대범한 무사, 그리고 토한 음식물로 온 몸이 지저분해진 채 나무 아래에서 잠든 바보였다.

그리고 그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얻은 음료에 ‘술[酒]’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고 하니, 대단히 풍자적인 전설이 아닐 수 없다. 두강이 만나 피를 얻은 사람의 순서는 곧 술을 마시는 사람의 행태를 설명한다. 즉 처음에는 고상하게 말도 잘 하며 술을 마시다가 어느 정도 취하면 말수가 줄어들면서 “건배!”를 외치며 단숨에 잔을 비우게 되고, 더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면 땅바닥에 엎어져 토하거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 쓰러져 눕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동진(東晉) 시기 유명한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하나인 유령(劉伶: 221?~300)은 〈주덕송(酒德頌)〉을 썼고, 또 항상 술을 지니고 다니며 며칠 동안 마시면서 하인에게 삽을 들고 따라다니다가 자신이 취해 죽거든 바로 묻어버리라고 했을 정도로 애주가──정확히 말하자면 중독자──였는데, 이 때문에 그와 두강을 엮어서 만들어진 전설이 오래 전부터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두강이 백수(白水) 땅에서 술집을 냈는데 유령이 찾아가 보니 대문 양쪽 기둥에 다음과 같이 세로로 쓴 대련이 걸려 있었다.

맹호도 한 잔 마시면 산중에서 취하고
교룡도 두 잔 마시면 바다 밑에서 잠든다.
猛虎一杯山中醉, 蛟龍兩盅海底眠.

그리고 그 위쪽에는 “이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으면 3년 동안 술값을 받지 않겠다.[不醉三年不要錢]”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 주량이 세기로 유명한 유령은 그것을 보고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결국 석 잔을 마시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취해버렸고,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놓은 그가 겨우 집에 돌아가 쓰러져버리자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러 묻어버렸다. 그런데 3년 후에 두강이 외상값을 받으러 가자 유령의 아내는 화를 내며 그를 무덤으로 안내했고, 무덤을 파 보니 유령이 술이 깨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술 좋다! 향기가 끝내주는구먼!”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른바 “술 단지를 열면 향이 10리에 퍼지고, 벽 너머 이웃집 셋이 취한다.[開壜香十里, 隔壁醉三家]”라는 두강주의 명성을 더 높이려고 꾸며낸 이야기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그런데 주인공 유령이 ‘문인’이면서 무사처럼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결국 취해서 ‘바보’처럼 쓰러진 인물이라는 점이 두강이 술을 만들게 된 전설과 교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한편, ‘발명가’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역시 하나라 우(禹)임금 때의 의적(儀狄)이라는 인물도 술을 잘 빚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설에는 의적이 ‘막걸리[酒醪]’를 만들고 두강이 ‘고량주[秫酒]’를 만들었다고도 하지만, 이것들은 이미 진위나 선후를 판별한다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기도 하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편찬했다는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옛날에 우임금의 딸이 의적에게 술을 만들게 했는데 맛이 좋아서 우임금에게 바쳤다. 그런데 우임금이 마셔보고 난 후에 의적을 멀리하면서, “후세에 틀림없이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이가 있을 게야!”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동한(東漢) 허신(許愼: 58?~147?)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주(酒)” 항목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만들어지거나 전승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술이 만들어진 역사가 거의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어느 시대이든 간에 나름대로 개인의 삶과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술은 대단히 달콤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유혹을 지니고 있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소심한 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고, 명사(名士)의 기행(奇行)에 얽힌 미담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색한 사교의 자리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등의 긍정적인 작용도 한다.

하지만, 유명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술이란 지나치면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를 망칠 정도의 폐해를 야기하기도 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교훈도 들어 있다.

고대 중국에서 시가(詩歌)는 중국 최초의 노래 모음집인 《시경》이 유가(儒家)의 대표적인 경전 가운데 하나가 되기 훨씬 전에 공자(孔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져 중시되었다. 그것은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와 교육, 개인의 인격 수양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용도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동한(東漢) 말엽부터 본격적인 ‘시인(詩人, poet)’이 등장하게 되면서 형식과 수사법, 제재(題材), 주제 등의 전 분야에 걸쳐서 광범한 모색과 시험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배출한 성당(盛唐) 무렵에 이르면 완숙하고 정제된 형식을 갖춘 근체시(近體詩)가 성립되면서 중국문학사의 가장 화려한 시대 가운데 하나를 장식했다.

더욱이 최초의 ‘창작된’ 시는 조조(曹操)를 중심으로 한 문인들의 연회에서 낭송하는 형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것은 노래와 술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또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를 거치면서 문인들 사이에 유행한 ‘풍류’ 문화는 개인들의 기행에 가까운 개성을 촉발하고 장려했으며, 그 과정에서 술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아 서둘러 자료를 준비하여 시작된 이 글은 기본적으로 고대 중국에서 술과 한시(漢詩) 사이의 관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 필자는 상고시대부터 청나라 말엽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에서 술과 관련된 시가(詩歌)──송(宋)나라 문학을 대표하는 ‘사(詞)’를 포함해서──들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필자의 단상들을 풀어볼 예정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순서는 개략적으로 고대로부터 근대로 내려오는 시대 순서에 따라 나타난 대표적인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이 되겠지만, 통일된 주제나 형식을 미리 정하지는 않고, 심지어 목차도 미리 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글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거의 즉흥적으로 선택할 것인데, 때로는 하나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한 시인의 여러 작품들을 아울러 살펴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창작된 다양한 시대의 여러 작품들이나 유사한 주제를 담은 여러 시인의 작품들을 아울러 살펴보는 등등으로 다양하게 제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끝마치게 될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밝혀둘 사항이 있다. 본래 문학 작품이란, 특히 ‘고전’으로 꼽힐 수 있는 명작이란 독자의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물론 한때 창작과 관련된 작자와 작품 사이의 어떤 ‘필연적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도 있었을 정도로 그 부분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감성으로 작품을 보고 이해한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그저 좀 더 잡다한 지식을 찾아낼 줄 아는 일반 독자의 관점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어떤 시인과 시가 작품에 대한 필자의 설명이나 평가는 당연히 전문가의 관점에서, 혹은 또 다른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얼마든지 다른 방식의 설명이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은 충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필자의 글을 읽어줄 고마운 독자들과 능동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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