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손님

남쪽에 멋진 물고기 있어
무리 지어 꼬리를 살랑살랑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즐거운 잔치 벌이지

남쪽에 멋진 물고기 있어
무리 지어 물결 따라 헤엄치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신나는 잔치 벌이지

남쪽에 아래로 굽은 나무 있어
조롱박 덩굴이 휘감고 있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평안한 잔치 벌이지

훨훨 나는 산비둘기
무리 지어 찾아오네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술 권하며 잔치 벌이지
 

南有嘉魚, 烝然罩罩.
君子有酒, 嘉賓式燕以樂.

南有嘉魚, 烝然汕汕.
君子有酒, 嘉賓式燕以衎.

南有樛木, 甘瓠纍之.
君子有酒, 嘉賓式燕綏之.

翩翩者鵻, 烝然來思.
君子有酒, 嘉賓式燕又思.

이것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들어 있는 〈남쪽의 멋진 물고기[南有嘉魚]〉로서 흔히 주공(周公)과 성왕(成王)이 다스리던 태평성대에 재야에 있는 어질고 현명한 이들을 찾아 적합한 직위를 주어 모두 정성을 다하게 함으로써 그 즐거움을 함께 하기 위해 잔치를 벌인다는 것을 주제로 한 노래라고 풀이한다. 물속의 물고기와 뭍의 조롱박, 하늘의 비둘기를 이용하여 점점 고조되는 잔치의 분위기를 비유한 수법도 예사롭지 않다. 아래로 굽은 나무[樛木]가 조롱박 덩굴이 타고 오르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어진 인재를 자연스럽게 구하는 군주의 모습을 비유한 것도 재치가 넘친다. 또한 노래 가사답게 박자를 맞추기 위해 각 절[章]의 마지막 구절에 ‘식(式)’, ‘이(以)’, ‘지(之)’, ‘사(思)’와 같이 뜻이 없는 글자[虛詞]를 안배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고대와 현대의 논자에 따라서 본문의 해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위 번역은 ‘증연(烝然)’, ‘조조(罩罩)’, ‘산산(汕汕)’ 등을 부사나 의태어로 번역한 경우인데, 《모시주소(毛詩注疏)》와 같은 옛 문헌에서는 ‘증연’의 뜻도 ‘오래[久如]’라고 풀이하고 ‘조조’는 ‘(고기 잡는) 발[篧]’을 쓰는 동작으로, ‘산산’은 ‘(물고기를 떠 올리는) 그물[樔]’을 쓰는 동작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추(鵻)’도 산비둘기가 아니라 ‘둥지를 틀고 자는 나무에 대해 오롯이 변함없는 마음을 지닌 새[壹宿之鳥]’라고 풀이하고, ‘우(又)’도 술을 권한다[侑]는 뜻이 아니라 잔치를 ‘다시[復]’ 연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위 노래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도 있다.

남쪽에 멋진 물고기 있어
오래도록 통발로 잡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즐거운 잔치 벌이지

남쪽에 멋진 물고기 있어
오래도록 그물로 떠 올리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신나는 잔치 벌이지

남쪽에 아래로 굽은 나무 있어
조롱박 덩굴이 휘감고 올라가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과 평안한 잔치 벌이지

훨훨 날아 쉴 가지 찾는 새
오래도록 찾아오길 고대했지
그분께 술이 있어
멋진 손님께 다시 잔치 벌여 접대하지

‘멋진 손님’은 백성을 다스리는 ‘그분[君子]’이 아래로 휜 나무처럼 몸소 몸을 숙여 정중하게 초빙하고 즐거운 잔치로 융숭하게 대접해주는 존재이다. 옛날의 주석이나 현대 연구자들의 설명에서 공통적으로 그 ‘손님’들은 현명한 군주의 조정에서 능력에 적합한 직위에 임명되어 태평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이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또 신하는 군주를 어버이처럼 섬기고, 군주는 신하와 백성을 자식처럼 아껴야 한다는 유가의 ‘충효(忠孝)’ 관념이 형성되기 전에 군주와 신하 사이의 모습을 설명해준다. ‘손님’은 바라는 바가 있어서 찾아오고, 주인이 내치지 않더라도 자신이 바람을 다 이루고 나면 떠나는 존재이다. 그런데 주인이 바라는 바가 있어서 모셔온 손님이라면 떠나지 말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주인과 손님 사이는 믿음과 배려, 존중과 공경을 바탕으로 베풀고 보답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핏줄’이라는 더없이 가까운,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해당하는 관계를 강요하는 ‘충효’ 관념에 의한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혈연은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제도화된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에 의해 소속과 서열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부장제(家父長制)라는 특수한 가족제도와 결합되었을 때에는 권위에 의한 강제의 기제가 첨가되며, 서열과 남녀의 차별이 수반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가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한나라 이후의 중국식 왕조는 근세 유럽의 왕정과 외형은 비슷해보여도 실질이 다르다. 근세 유럽의 왕들이 신권과 왕권을 동일시하여 절대왕정을 추구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은 어쨌든 백성들에게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외부의 물리적인 압력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그런 체제 하의 백성들은 수동적으로 굴복하고, 물리적인 압력이 느슨해지면 언제든지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속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전무한 중국의 왕조에서 백성들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복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요당한다. 그들에게 국가는 확대된 가정이고, 왕은 아버지의 다른 이름이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권력 체제를 이처럼 교묘하게 변형하여 주입시킨 결과 신하와 백성은 심지어 하늘의 권위까지 함께 얹은 ‘천자(天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다. 남송(南宋)이 망할 무렵, 명(明)나락 망할 무렵 수많은 선비들이 ‘순국(殉國)’──삶의 희망을 잃고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택한 극한적인 ‘자살’의 다른 이름인──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저 유가 윤리가 주입한 이데올로기가 이루어놓은 놀라운 비극이었다. 이렇듯 맹목적인 ‘충효절의(忠孝節義)’를 합리적이라는 명분으로 “배우고 때에 맞춰 익혀야[學而時習之]” 했다니!

그런 이데올로기의 왜곡이 일어나기 전에 신하와 군주는 ‘훨훨 나는 새’와 ‘나뭇가지’의 관계였다. 안전하고 아늑한 쉼터로서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적극성을 지닌 군주라 할지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저 오롯한 마음으로 그를 아끼고 지켜줄 새들이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그런 관계에서 군주의 실패는 분명히 신하들에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주겠지만, 그들이 군주를 따라 죽는 극단적인 선택할 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극히 미약하다. 그보다 그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나뭇가지’를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습 또한 처량하고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순국’이라는 겉모양만 그럴 듯한 자멸적인 선택이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강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나라 이후 유가 왕조의 신하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나라 이후 유가 왕조에서, 특히 ‘과거제(科擧制)’가 확립된 당나라 이후의 왕조에서 조상으로 풍족한 가산[家産]을 물려받지 못한 ‘유생[儒生]’ 또는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들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자 ‘생계 수단’이 ‘벼슬살이[出仕]’를 통해 ‘봉록’을 받는 것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왕조의 멸망이 그들에게 더 충격적인 절망을 안겨주었을 것이라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자.)

이런 상황을 알고 나서 〈남쪽의 멋진 물고기〉를 다시 읽어보면 소박한 노래 안에 담긴 풍부한 ‘자유’를, 신분에 관계없이 나라 안의 모두가 존중을 받는 아름다운 ‘인도주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 가치가 가득 담긴 즐거움을 표현한 잔치에서 마시는 술은 얼마나 향기롭겠는가! 그런 자리라면 술이라는 것이 슬픔을 고조시키기도 (그래서 결국 씻어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수의 즐거움을 고조시키는 데에 더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는 태평성대를 위해 백성을 다스리는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법과 권위에 의한 규제와 강제보다 즐거움을 공유하는 매개로서 ‘술’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거의 2,500년 이상 옛날의 노래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경》에는 술과 관련된 노래들이 적지 않다. 《시경》의 첫 편인 〈주남(周南)〉에는 사랑하는 이를 멀리 떠나보낸 여인이 슬픔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묘사한 〈도꼬마리[卷耳]〉가 수록되어 있다. 또 〈소아〉에 수록된 음주와 관련된 노래들 가운데는 풍성한 안주와 더불어 주연을 벌이는 주인과 손님을 묘사한 〈물고기 떼[魚麗]〉와 군주의 덕을 칭송하며 장수를 기원하는 주연의 모습을 묘사한 〈남산의 누대[南山有臺]〉가 〈남쪽의 멋진 물고기〉를 사이에 두고 마치 3편의 연작처럼 연결되기도 한다. 〈소아〉에서는 제일 첫 노래인 〈사슴이 우네[鹿鳴]〉에서부터 주연(酒宴)을 벌이는 장면──이것이 화목한 군신(君臣) 관계를 칭송한 노래인지 통치계층의 사치를 풍자한 노래인지에 관한 논쟁은 일단 논외로 치고──이 언급되고 있으며, 하급 관리가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는 내용을 담은 〈작은 새[小宛]〉에도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의 술 마시는 모습의 차이를 묘사하고 있다. 한편 음란한 노래가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정풍(鄭風)〉에는 새벽 잠자리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를 노래한 〈닭이 울어요[女曰鷄鳴〉에도 오리와 기러기 잡아 안주 만들어 함께 술 마시며 해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 백운재 교수

[칼럼니스트 소개] 백운재(필명)교수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1999)를 취득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하늘을 나는 수레(2003),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2010), 전통시기 중국의 서사론(2004)등의 저서와 두보, 이하 등의 중국 시와 베이징(1997), 서유기(2004), 홍루몽(2012), 유림외사(2009), 양주화방록(2010)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칼럼관련문의 :  peking0074@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