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각 잡곡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내가 원하는 잡곡만으로 직접 블렌딩해서 밥을 지어 먹어 보면 어떨까?

그게 귀찮다면 시판용 혼합 잡곡 상품도 많다. 하지만, 마트나 슈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혼합 잡곡은 대부분 숫자만 앞세운 9곡, 11곡, 16곡, 21곡 이런 상품이 일반적이었다. 일부 30곡이 넘는 상품도 있었다. 그런데 숫자만 있을 뿐 콘셉트는 하나도 없다.

너무 많은 잡곡이 섞여 있는 혼합 곡을 보면 오히려 개성이나 특징이 없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다양하고 많은 잡곡을 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명확한 이유도 없고 그냥 이것저것 넣으니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아무리 맛있다는 짬뽕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해산물을 넣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난 농민들 대부분이 먹고 싶은 잡곡만 사서 밥을 지어 먹으라고 한다. 혼합 잡곡은 많은 곡물이 한데 섞여 있다 보니 각각의 곡물의 상태를 보기가 어렵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상품은 손쉽게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발아시키거나, 쪄서 누르거나, 작게 파쇄하거나 효소나 유산균액에 침지해서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게 해준다.

발아를 시키면 많은 유용한 성분들이 증가해서 좋고, 가공한 것은 미리 불리지 않고 바로 밥을 할 수 있기에 편리해서 좋다.

한국과 일본의 혼합 잡곡 상품은 외관만 보면 비슷하다. 하지만 다양한 콘셉트와 스토리가 담긴 상품이 많다. 다양한 콘셉트의 혼합 잡곡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제품을 보면서 더욱더 다양하고 맛있는 잡곡밥 상품들이 나오길 바란다.

1) 우리 집의 맛있는 16 잡곡미 (일본)

▲ 잡곡미 16 <사진=베스트 아메니티>

1990년 일본 최초의 잡곡 브랜드를 출시한 베스트 아메니티라는 회사의 상품이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 가격만 맞추기 위해 저렴한 곡물을 혼합한 것과는 다르다. 잡곡밥이지만 오히려 더 찰지고, 향기 구수한 밥을 지을 수 있도록 블렌딩 된 잡곡미다.

2~3인분에 소포장 된 제품 하나만 넣으면 된다. 블렌딩 된 잡곡 종류는 많지만 원래 흰 밥맛에 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더 맛있는 밥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 제품을 무려 30년 전에 만들었으니 쌀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뭐야 그 흔한 16곡 잡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상품은 혼합잡곡으로써 ‘몽드셀렉션’에서 3년 연속 금상을 차지했다. 몽드셀렉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마케팅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많은 잡곡 상품들이 있는데, 유독 16곡이 많다. 16차도 있고, 한국에서는 그걸 벤치마킹해서 17차를 만들었지만, 왜 그런 숫자가 된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숫자를 상품과 접목하려면 왜 그 숫자가 된 건지 설명이 필요하다. 16이란 숫자가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는 동양건강사상이 들어있다.

우리가 흔히 인체의 장기를 ‘5장 6부’라고 부르지만, 한의학에서는 ‘6장 6부(六臟六腑)라고 한다. 여기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4가지 맛, 이것을 합치면 6+6+4=16 이 된다. 이렇게 해서 16이라는 숫자가 선호된 것이다.

2) 쁘띠 곡(일본)

▲ 쁘띠 곡 <사진=박성환>

한참 시장 조사하러 다니던 오랜만에 ‘메이디야’라는 슈퍼에 들렀다. 독자적인 HMR 상품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오랜만에 가보니 재미있는 잡곡 상품을 팔고 있었다. 1인분씩 소포장한 것은 기본이고, ‘항상 밥에 칼슘, 칼슘 브랜드’, ‘항상 밥에 철분, 철분 브랜드’, ‘항상 밥에 식이섬유, 식이섬유 브랜드’ 란 콘셉트로 파는 잡곡 상품이 있었다.

하나하나 다 귀엽고, 20g 한 끼용 중량이라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한 번쯤 사 먹어 보고 싶게끔 만든다. 필자가 예전 칼럼에서 밥맛을 좋게 하기 위해 육수 사용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잡곡 안에 다시마 조각이 들어있다. 더 밥맛을 좋게 하기 위한 블렌딩일 것이다. 하나의 명확한 콘셉트가 있기에 이것저것 많이 섞지 않았다. 굳이 20곡, 30곡씩 섞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20g 정도의 소포장 제품이 매우 많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먹어볼 수 가 있어 좋다. 그렇게 해서 내 입맛에 맞는 걸 찾게 되면 이제 그 잡곡으로만 골라서 사면된다.

3) 화장품 회사가 만든 미용과 건강을 위한 '디톡스 곡'(일본)

▲ 디톡스 곡 <사진=일본 잡곡 협회>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다. 단순한 잡곡이 아니다. 화장품 회사가 ‘피부를 위해 몸속에서부터 디톡스를 하자’라고 만든 잡곡이다.

제품 콘셉트도 ‘소화흡수를 생각한 베이직’, ‘비타민, 미네랄, 폴리페놀이 함유된 아름다움’, ‘백미보다 칼슘이 32배 풍부한 칼슘곡’, 이런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 냈다.

화장품 회사가 만드니 왠지 모르게 정말 디톡스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지 폴리페놀이 많이 든 곡물을 모아 블렌딩 한 것이라고 하면 업체 담당자가 발끈하겠지만, 그런 콘셉트를 적용한 것이 대단하다. 게다가 잡곡 크리에이터라는 전문가가 블렌딩을 했다. 잡곡 크리에이터가 무엇인지는 다음에 따로 설명하겠다.

4) 프리미엄 잡곡, '미곡(美穀)' (일본)

▲ 프리미엄 잡곡, 미곡 <사진=jobikai>

늘 먹던 밥이 아니다. 잡곡으로 샐러드를 만들었고, 그래서 잡곡과 몸에 좋은 올리브유 상품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게다가 몸이 아름다워지니 여러 곡물이 섞인 잡곡(雜穀)이 아니라, 몸이 아름다워지는 미곡(美穀)이라 표현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잡곡이란 단어의 어감이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저것 섞인 곡물과 아름다운 곡물, 어떤 것이 느낌이 더 좋은 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6) 라이스 풀 110 (한국)

▲ 라이스 풀 110 <사진=박성환>

어떤 잡곡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고객에게 매우 신뢰감을 주는 제품이다.

모두 다 후면 표기 사항에 어떤 잡곡이 들어있는지 표기되어 있지만, 얼마나 들어있는지 표기하는 제품은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도 다 섞여 있으니 실제 얼마만큼 들어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낱알도 하나하나 상태를 보기가 어렵다. 한 종류라도 상태가 좋지 못한 곡물을 사용하면 전체가 다 나빠진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혼합된 잡곡보다 따로따로 사서 섞어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 지어 포장하면 고객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불 수 있다. 고객의 시선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 인분의 중량을 110g으로 했다. 철저하게 젊은 여성층을 타켓으로 한 상품이다.

자주 말하지만,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각 지닌 특성에 맞춰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7) 저당지수 혼합잡곡 (한국)

GI 지수가 60 이하인 잡곡만 사용해서 혼합 잡곡을 만들었다. 사실 잡곡 중에서 GI가 60을 넘는 것은 없다. 쌀도 백미일 때는 84 정도지만, 현미일 때는 5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왕이면 GI 값을 측정해서 그 값을 표기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GI의 측정은 영양성분 분석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쉽지 않다. 일본 제품들은 혼합 잡곡의 영양성분을 분석해서 그 값을 표기한 상품도 있다. 이왕 하려 했다면 그렇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었다는 거다.

* 몽드 셀렉션 (MONDE SELECTION) – 196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창립된 품질 평가 기관으로 주류, 식품, 음료, 화장품, 다이어트 및 건강 제품, 와인에 대한 품질을 검증하고 상을 수여한다. 매년 70여 명의 국제적인 전문가(미슐랭 스타쉐프, 소믈리에, 대학교수, 영양학자 등)들이 출품된 제품들을 시식 또는 시음하고 테스트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품질상이 수여되어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품질을 보증한다. 특히 일본의 소비자들은 몽드 셀렉션에 대한 신뢰도가 크다. 식품업계의 노벨상, 올림픽이라고도 불리지만, 일본 기업에 지나치게 치우친 비율, 너무나 쉽게 수상을 하는 것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하이트 맥주가 처음으로 마케팅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 GI(Glycemic Index, 당지수, 혈당지수)- 혈당지수란 일정한 양의 시료 탄수화물 식품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표준 탄수화물 식품(포도당이 100)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와 비교한 값을 말한다. 이에 따라 혈당 지수가 높은 식품과 낮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한계점과 문제점이 대두되어 GI와 함께 GL(Glycemic Load)을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GL은 탄수화물의 소화 속도와 섭취량을 함께 고려하는 수치다.

소믈리에타임즈 박성환 칼럼니스트 honeyrice@sommeliertimes.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