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끔씩 내게 묻습니다. 왜 와인을 좋아하는지. 그러면 나는 짧게 말합니다.

“맛있으니까요. 게다가 맛이 아주 다양해요.”
사실은 다른 이유들도 있지요. 이제 그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술 마시며 인텔리전트해지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휴 존슨(Hugh Johnson)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Wine lovers are looking good, intelligent, sexy and healthy!”

잘 생기거나 섹시한 것은 솔직히 이번 인생에서는 포기했습니다. 몸에 칼 대기도 싫고, 견적도 안 나옵니다. 와인 마시기 시작한 지가 제법 오래되었지만 외모가 나아지지 않았어요. 섹시함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조금은 지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지적인 호기심도 많이 생겼고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건강은요? 프렌치 패러독스나 다른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나는 와인의 넋을 믿지요.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시 ‘와인의 넋(L’âme du Vin)’에서 이렇게 노래했어요.

“나는 아노라, 내 생명을 낳고 내게 넋을 넣어주기 위해
불타오르는 언덕 위에서 얼마나 많은 노고와 땀과
따가운 태양이 필요한가를,
그런데 나 어찌 그 은혜 잊고 심술궂게 굴리오!”

하지만 은혜를 갚으려는 와인을 남용하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적당히 즐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와인이 오히려 심술을 부릴 수 있어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았지요.

“와인도 모든 귀중한 재능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다. 사랑하고 구하고 이해해야 하며, 공을 들여 얻어야 하는 것이다.”

헤세는 이런 글을 남기고 평생 위대한 와인 애호가로 살았습니다.

최근 위스키도 좋아하는지 내게 물어보는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사실 나는 술이 약해서 독주를 좋아하지 않아요. 위스키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드라이한 맛의 주정강화와인을 선호하죠. 하이볼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차라리 주정강화와인으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 게 나아요. 마데이라 와인협회가 내게 그 레시피를 알려줬어요. 혼자만 알기 아까워서 이 레시피에 대해서 글을 쓴 적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아주 여러 해 전에 무라카미 류가 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와인밖에 마시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센 알코올을 마셨지만 지금은 전혀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센 알코올은 몸을 안쪽에서부터 억지로 바꿔가는 것 같아서 싫답니다. 목과 위가 뜨거워져 그곳만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지금은 왠지 무섭습니다.

물론 목이나 위가 뜨거워지는 게 무서운 건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아닌 듯이 느껴지는 부위가 몸속에 생겨나는 것이 싫어진 겁니다. 그래서 당신도 잘 알듯이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죠. 와인은 절대 목과 위를 뜨겁게 흐트러 놓지 않거든요. 꽃이 핀 고원의 얕은 여울처럼 몸속에 한쪽으로 녹아들 뿐이죠.”

무라카미 류는 내가 위스키를 마시며 느꼈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멋지게 적었어요. 역시 문학가는 다르네요. 보들레르의 경우에는 그가 구사하는 언어도 매력적이지만 ‘와인의 넋’을 노래하는 발상이 정말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나는 보들레르의 팬입니다. 그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와인을 접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또 있어요. 위대한 괴테(Goethe)가 와인을 마시지 못하면 사랑도 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술 마실 수 없다면
사랑도 하지 말라.
이러한 나의 의견이
과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대들 술 마시는 이들이여,
우쭐대지는 말게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술 마실 자격도 없는 것이니.”

나는 괴테의 말에 거역할 수 없어요. 여러분들 알잖아요. 그가 얼마나 위대하고 박식했는지. 그의 발자취를 찾아다닌 시간들은 너무나 행복했지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바이마르, 라이프치히, 하이델베르크, 베츨라, 와인산지 모젤과 라인가우와 프랑켄, 프랑스의 슈트라스부르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아그리젠토, 체코의 마리안스케 라즈네, 카를로비 바리, 테플리체... 나는 확인했어요. 괴테가 얼마나 와인을 즐겨 마셨는지, 그리고 그가 베츨라에서, 하이델베르크에서, 바이마르에서, 그리고 마리안스케 라즈네에서 와인을 마시며 사랑했던 것을.

체코의 마리안스케 라즈네에 있는 괴테 동상을 찾아간 필자.
체코의 마리안스케 라즈네에 있는 괴테 동상을 찾아간 필자.

끝으로 내가 와인을 좋아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 하나만 더 얘기해 볼게요. 와인은 내 촉수를 발달시켜요. 와인을 마시기 전에는 술 마시며 냄새를 예민하게 맡는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와인을 마시며 달라지더라고요. 와인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 하니 와인이 내 감각의 문을 두드려요. 그래서 내 몸이 ‘깨어 있는 몸’으로 변했어요.

덤으로 사소한 것에서도 울림을 얻게 되고,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박찬준 대표 
㈜디렉스인터내셔날 대표이사
Break Events의 한국 대표
와인 강사, 와인 컨설턴트
아시아와인트로피 아시아 디렉터
아시아와인컨퍼런스 디렉터
동유럽와인연구원 원장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국제협력)
다수의 국제와인품평회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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