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화가 내게 묻다 표지 <사진=북라이프>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다가서게 되는 그림이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그림이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다. 그림은 ‘보는’ 것이지만 우린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치와 배경지식에 따라 상상하고 영감을 얻고 생각한다.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달 정해진 시간 내에 치열한 마감 전쟁을 치러야 했던 최혜진 저자는 감각과 사고가 무뎌진다 느껴질 때,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접해도 가슴 뛰지 않는 날이 계속 될 때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늘 미술관이었다. 그녀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에 늘 호기심을 가졌고, 그림 속 인물들에 주목하고 소통을 시도할수록 미술을 대하는 방식뿐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방식까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저자는 인생의 물음표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해왔다. 연재해온 글에 온라인상에서는 미처 풀어놓지 못했던 흥미로운 화가와 그림 이야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생각들을 더해 엮은 ‘명화가 내게 묻다’가 북라이프에서 출간되었다.

최혜진 저자가 풀어놓은 그림 속 인물들이 던져온 물음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들여다보고 곱씹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안한다. 살면서 한 번쯤 ‘왜?’라고 반문해봤던 것들 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화된 사고방식이어서 미처 문제인지조차 몰랐던 것들,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명화와 명화 속 인물을 빌려 말하고 있다.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북유럽 화가들의 작품과 저자의 남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글을 읽다보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림에서도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가 얀 하빅스 스테인의 <단장 중인 여인>에서는 그림 속 여인의 스타킹 자국을 통해 삶의 고단함에 주목하고 에드가 드가의 <거울 앞의 장토 부인>에서는 자신에게만 유독 냉정한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건 누구이며, 과연 그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짚어보게 한다.

삶이 익숙함을 넘어 무뎌진다 느껴질 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 조금 더 마음이 단단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 당장 낯선 도시의 미술관으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 이 책과 함께 잠시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소믈리에타임즈 최지혜 cozi@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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