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생김치가 익으면 맛있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와인도 맛없는 영 와인이 숙성을 통해서 맛이 좋아지지 않는다. 영 와인 때 맛을 보고 “야! 몇 년 뒤에 마시면 아주 좋겠는데~”라는 감탄사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위대한 와인을 ‘기다림이 미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평범한 와인은 와인메이커가 가장 맛이 좋을 때 병에 넣으니까 나오는 즉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와인은 오래 두면 맛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한다.

와인을 알기 시작하면 무조건 오래 보관하면 좋아진다는 믿음으로, 싼 와인이라도 우리 애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같이 마시겠노라고 고이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값싼 와인은 오래 두면 맛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 있지 않아 맛이 변하게 된다. 즉 겉절이를 아무리 오래 두어도 묵은 김치가 될 수 없는 원리나 마찬가지다.

묵은 김치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짜고 진하게 담그고, 온도가 일정한 땅속에 저장한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는 와인은 장기간 숙성에 적합한 품종을 선택하고, 레드와인의 경우 껍질과 함께 침지 시키는 시간(SCT)을 길게 하여 껍질과 씨에서 우러나오는 타닌 성분을 증가시키고 아울러 색소도 많이 추출되도록 배려한다. 그래야 오래 두어도 맛이나 향이 변질되지 않고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준철 winespiri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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