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커(RP) 90점 와인과 와인 스펙테이터(WS) 94점 와인이 눈 앞에 있다. 우리는 둘 중 어떤 와인을 고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94점의 와인을 고를 것이다. 점수의 출처가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점수의 일반화의 오류에 쉽게 빠진다. 높은 점수는 그만큼 우리의 판단 회로를 쉽게 점령한다. 하지만 과연 94점의 와인이 90점의 와인보다 실제로 더 맛있고 더 많은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 점수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와인 심사의 대표적인 인물과 기관의 평가 기준을 살펴보고 와인 점수의 면면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 로버트 파커의 웹사이트에는 그가 테이스팅한 모든 와인의 점수와 테이스팅 노트가 올라와있다. 다만 유료회원에게만 공개한다. <출처= www.robertparker.com>

첫 번째로, 로버트 파커. 전 세계적으로 안티 팬들을 포함하여 수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와인 평론계의 전설이다. 파커 포인트라고 불리는 이 점수 체계는 50점을 기본으로 시작하여 6구간으로 나뉜다.

96-100

품종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고 복합미가 굉장히 뛰어난, 보관 가치가 높은 와인

90-95

복합미가 뛰어나고 품종 특성을 잘 반영한 와인

80-89

평균이상의 품질을 보이고, 다양한 맛과 향을 찾을 수 있으며 결점이 없는 와인

70-79

평균 수준의 와인

60-69

평균 이하이며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와인

파커 포인트는 50점을 기본으로 하고 나머지 50점은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배점을 나눈다.

색깔

5점

표준적인 색깔

아로마 & 부케

15점

향의 강도와 복합미

맛 & 피니쉬

20점

맛의 강도, 균형, 깊이감과 피니쉬의 길이

발전 가능성

10점

숙성으로 인한 발전 가능성

사실 로버트 파커는 로버트 파커 와인 어드보케이트(Robert Parker Wine Advocate) 이라는 본인 웹 사이트를 통해 90점에서 100점 사이의 와인은 모두 매우 뛰어난 와인이라고 밝혔다. 물론 99점과 90점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둘 모두 가장 높은 점수대에 분포한 와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가된 점수에 “가격 대비 품질”은 포함되어 있을까? 정답은 ‘아니오’. 왜냐하면 모든 와인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서 점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생산자도, 가격도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고, 오직 와인 자체의 품질과 품종의 표현력만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블라인드로 평가하지 않는 몇 가지 경우가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와인샵에서,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파커 포인트 90점짜리 와인은 적어도 로버트 파커의 기준에서는 객관적으로 평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94점의 와인과 위 네4개 평가 기준에서 고작 1점씩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노마에 위치한 코스타 브라운(Kosta Browne) 와이너리의 코스타 브라운 피노누아 러시안 리버밸리 2013은 RP 93점을 받았다. 가격은 대략 $85 - $130 사이. 반면 미국 최대 규모의 회사 중 하나인 켄달잭슨사의 켄달잭슨 피노누아 잭슨 에스테이트 소노마 코스트 2015는 RP 91점에 약 $30 로 가격이 형성 되어있다. 와이너리마다 추구하는 와인 메이킹 철학과 방법이 다르고, 맛과 향이 모두 다르겠지만, 일반 대중 입장에서 점수 2점에 가격이 1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엔 가벼운 마음으로 캔달잭슨을 바구니에 담으면 된다.

눈 앞에 다른 지역이지만 같은 품종의 와인 중 90점과 94점의 와인이 있고 많은 가격 차이가 난다면, 이제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90점 이상의 와인들 중에서 점수가 다른 것은 복합미와 숙성을 통한 발전 가능성에서 1~2점씩 차이가 나는 것에서 기인한다. 한 마디로 와인의 색깔, 품종의 표현력, 구조와 균형은 잘 갖춰진 와인이라는 것이다.

▲ 와인 스펙테이터 Top 100 wines of 2015 <사진= www.winespectator.com>

두 번째로 ‘Wine Spectator’(WS). WS 역시 로버트 파커와 마찬가지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한100점 만점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WS는 점수 부여에 그치지 않고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매년 TOP 100와인 리스트를 발표한다. 2015년 TOP 100 리스트의 경우, 5700개의 와인들 중에서 선정되었다.

1. 90점 이상의 와인
2. 가격 대비 가치
3. 생산량의 접근가능성 (극소량만 생산하는 와인은 배제함을 의미)

WS의 100점 점수 체계는 다음과 같다.

95-100

Classic

위대한 와인

90-94

Outstanding

뛰어난 와인

85-89

Very good

훌륭한 품질의 와인

80-84

Good

잘 만들어진 와인

75-79

Mediocre

큰 결함 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

50-74

Not Recommended

추천하지 않음

WS는 RP와 비교했을 때 두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첫째, WS의 점수는 미래 잠재력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 와인이 최상의 상태(Optimum State)에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를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가격은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TOP 100리스트는 가성비를 고려한다. TOP 100리스트를 살펴보면, 매년 평균 가격은 $50 미만이고, 고가와 저가의 와인이 섞여있다. 가격대비 가치가 평가 기준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RP 97점 와인의 경우, 점수가 메겨진 후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우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유통된다. RP 100점의 와인은 수 백 수 천불에 이미 와인 수집가들이 쓸어담아서 구할 수 조차 없다. 따라서 대중을 위한 와인 평가 체계는 RP보다는 WS가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Top 100 와인 리스트는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이를 참고하여 와인을 구매한다면 더욱 쉽고 편하게 좋은 와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RP 90점과 WS 94점의 와인, 둘 중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이다. RP와 WS는 각자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이 다르다. 같은 와인이지만 여러 개의 다른 점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90점이라는 숫자는 그 어떤 평론가와 기관을 막론하고 가장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출발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와인들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점수를 부여한 평론가 혹은 기관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와인들 중, 가격을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그것이 귀찮다면, 와인샵의 직원에게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과 가격대를 말해주고, 90점 이상의 와인들 중 고르면 된다. 무엇이 더 맛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둘 다 맛있기 때문이다. RP 89점의 와인은 어떨까? 매우 우수한 와인이지만 90점을 주기엔 복합미와 숙성 가능성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할 것이다.

와인에 부여된 점수는 구매의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이 힘이 가격을 이기기도 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알 권리가 있고, 현명한 소비를 할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점수에 따라 소비를 했다면, 이제는 점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를 할 때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최태현 칼럼니스트 cth9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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