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와 세월을 간직한 황악산 직지사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장승국
천년의 역사와 세월을 간직한 황악산 직지사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장승국

황악산 동남쪽 산자수명한 곳에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해있다.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선현의 지혜와 자비를 심어논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418) 야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직지'라는 명칭은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가 중수하였으며 경순왕 4년(930) 천묵대사가 2차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태조 19년(936) 능여조사가 중창하여 큰스님들을 많이 배출하고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었다.

조선 정종 원년(1399)에 중건이 있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중수하여 조선 8대 사찰 가운데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시켰다. 이곳은 많은 국사, 왕사가 수도 정진하던 곳으로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출가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 정심선사가 조선조의 법난때 이 곳에 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선조 29년(1596) 왜적의 방화로 모든 전각 당우가 소실 된 것을 선조 35년(1602)부터 중창하기 시작하여 약 60년만인 현종 3년(1662)에야 완전히 복구하였다. 근세에 들어서는 고종 년간에 일부 중수가 되었으며 1663년 부터 30여년간에 걸쳐 현재의 전각과 당우를 중창, 중수 하였다. 

직지사 대웅전 전경, 대웅전앞 삼층석탑  @장승국
직지사 대웅전 전경, 대웅전앞 삼층석탑  @장승국

사찰 내에는 대웅전(보물 제319호) , 대웅전삼존불탱화(보물 제670호),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대웅전앞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 606호), 비로전앞 삼층석탑(보물 제607호),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물 제1186호) 등의 중요 문화제와 많은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불교의 나눔을 상징하는 스님 '포대화상' @장승국
불교의 나눔을 상징하는 스님 '포대화상' @장승국

포대화상은 불교의 나눔을 상징하는 스님이다. 중국 명주 태생의 선승으로 이름은 계차, 사람들에게 기부받은 물건을 담은 포대를 메고 거리를 배회해 포대화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대화상은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걸식하는 고아, 굶주린 이들을 위해 종일 탁발하고 그것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워 주었다. 그에게 물건을 얻은 가난한 이들은 그때부터 재복이 일어 가난을 면하고 음식을 얻어 먹은 이들은 먹을 복이 생겨 굶주리는 일이 없어졌다 한다. 포대화상이 빛나고 사랑받는 것은 재물을 쌓아두지않고 어려운 이들과 나누어야 복되다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떄문이다. 

직지사에 모셔진  박정희 대통령 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 @장승국
직지사에 모셔진  박정희 대통령 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 @장승국

직지사는 사명대사와의 인연이 특별한 곳이다.

유정 사명대사는 14세때 모친을 여의고 15세때 부친마저 돌아가시자 정신적 방황을 하던 중에 직지사에 왔다가 은행나무 그늘 아래 널찍한 바위를 발견하고 바위에서 낮잠을 잤다.  당시 주지 신묵화상이 벽안당에서 참선하던 중 사천문앞에 황룡이 승천하는 환영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나가보니 한 아이가 바위 위에서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신묵대사는 이 아이가 자신이 꿈에서 본 황룡임을 직감하고 거두어 제자로 삼았으니 그가 사명대사이다. 16세 되던 해에 1560년(명종 15년) 직지사에서 출가한 사명대사는 17세에 승과의 선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이후 사명대사는 1573년(30세)에 직지사 주지로 임명되었다.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사명각 @장승국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는 사명각 @장승국

사명각은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여 대사의 자취를 기리는 건물로서 조선 정조 11년(1787)에 창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으로 중창한 것이다.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사명 유정은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병장으로 알려져 있다. 사명대사의 법명은 유정(惟政), 법호는 사명(四溟) 또는 송운(松雲)이고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명종 15년(1560) 이곳 직지사에서 신묵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출가후에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를 찾아가 참선, 수행하며 진리를 탐구하였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전쟁후에는 강화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잡혀간 포로 3,500여명을 귀환시키는 등 호국애민을 몸소 실천하였다. 광해군 2년(1610) 67세를 일기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산사의 맑은 공기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장승국
산사의 맑은 공기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장승국

직지사는 2002년 주한 외국인 대사들을 초청 전국 최초로 템플스테이를 공식 개최한 이래 명실상부한 템플스테이 대표사찰로 성장해 왔다.

직지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체험형 '내마음 깊이 살펴보기' 와 휴식형 '내 마음의 작은 쉼표' 2가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사의 맑은 공기로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천불의 미소처럼 본래의 밝은 자기를 되찾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천년의 향기, 천불의 미소 그윽한 직지사에서 분별하는 마음 내려놓는 참 마음을 만나보시길 추천한다.

관련 자세한 사항은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02 2031 2000) 혹은 직지사 (054 429 1716,  jikjisa@templestay.com)로 연락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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