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도 성정(性情, 성질과 심성. 타고난 본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성정을 따라 누구나 자신을 닮은 음식을 좋아하리라는 호기심에, 지인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았다. 결과를 보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느낌과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주는 느낌이 비슷했다. 유행을 빠르게 섭렵하고 매사 열정이 가득한 친구는 이국적이고 강렬한 멕시코의 ‘타코(taco)’와 ‘화이타(fajita)’를 꼽았고, 주변 사람을 잘 품어주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친구는 ‘닭’을 주재료로 만든 닭죽, 치킨, 닭볶음탕 등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닭 요리’를, 겉치레보다는 진실성을 추구하고 뚝심 있는 친구는 소금만 곁들여 본연의 맛을 즐기는 ‘한우구이’를, 깊고 다정하고 센스 있는 성격의 친구는 고소한 리코타 치즈를 올린 발사믹 소스의 ‘산뜻한 샐러드’를, 모나지 않고 다정한 성품을 가진 친구는 ‘옥수수와 감자’를 꼽는 식이었다.

개인적 음식 해석이지만 그 사실에 흥미를 느낀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물을 때가 있다. 어떠한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대략적으로 그 사람에 관해 그려졌고 이미 알던 사람의 경우 ‘역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렇게 각각의 음식이 품고 있을 성정을 떠올리며, 후쿠오카에 와서 나와 부쩍 가까워진 음식인 ‘오차즈케(お茶漬)’의 성정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오차즈케(お茶漬, 녹차에 밥을 말아먹는 일본요리)’라는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책을 통해서였다. 녹차(茶)를 우린 물에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듣고 문화적 이질감이 상당했다. 흔히 통용되는 티백 녹차를 생각하자 상상이 되지 않았고, 이질감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보편적인 녹차 티백을 활용해 만들어 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본 본연의 ‘오차즈케’와는 다를 것 같았고, 티백 녹차는 차로 마신다는 고정관념이 강해 그것을 우린 물에 밥을 막아 먹는 일은 내키지 않아 시도하지 않았다.

생소한 ‘오차즈케’의 이질감을 줄여준 것은 누군가의 곁들임 설명을 본 뒤였다. 우리나라에서 보릿 찻물에 밥을 말아먹는 개념처럼 이해하면 될 것 같다는 비유를 듣자 조금 이해가 되었다. 어릴 적 보리차에 몇 차례 밥을 말아 먹어본 경험으로, 그것이 의외의 맛을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상 속의 ‘오차즈케’를 마침내 만난 것은 일본의 한 마트였다. 일본 여행 중 방문한 마트에서 ‘오차즈케’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보고 바로 구입했다. 마시는 용도가 아닌 ‘오차즈케’ 요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제품이니 맛이 보장되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판 오차즈케
시판 오차즈케

한 끼 용으로 소분되어 8팩이 들어 있었는데, 가격도 한국 돈 몇천 원 정도로 비싸지 않았다. 바로 시식에 들어갔다. 포장에 적힌 조리법대로 밥 한 공기 위에 시판 ‘오차즈케’ 가루를 뿌리고 뜨거운 물을 밥알이 모두 잠기도록 넉넉히 부었다. 물을 부음과 동시에 요리는 완성되었다. 옅은 녹색으로 변한 국물 먼저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보았다. 모르고 먹는다면 녹차임을 모를 순한 국물은 깔끔하고 담백했으며, 약간의 짠맛도 가미되어 있어 심심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다. 한 그릇의 단순한 요리였지만 단순하지 않은 맛에 마지막까지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운 것이 ‘오차즈케’의 첫 기억이었다.

호기심에 한번 맛본 오차즈케를 일상에서 자주 먹게 된 것은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이사 온 뒤였다.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나, 귀찮지만 라면은 내키지 않는 날 ‘오차즈케’만큼 적당한 음식은 드물었다. 밥+오차즈케 가루+물의 구성으로 내가 아는 가장 간단한 조리법의 그 요리는 물리지 않았으며, 녹차(綠茶) 가 주는 건강한 이미지에 기대어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다.

‘오차즈케’ 조리법은 찬물과 따뜻한 물 모두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따뜻한 물을 부은 쪽을 편애(偏愛) 했고 그러다 보니 오차즈케는 내게는 ‘따뜻한 요리’라는 이미지가 있다. 곁들임 반찬 없이 한 그릇 요리로도 만족스럽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김, 낫토, 명란, 구운 두부, 계란프라이 처럼 최소한의 조리만 가한 요리를 곁들이면 충분했다. 어느덧 ‘오차즈케’는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한 존재감으로 나의 후쿠오카 생활의 베프가 되었다.

직접 우린 찻물로 끓인 오차즈케 정식
직접 우린 찻물로 끓인 오차즈케 정식

지난여름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카타(博多) 시내에 나갔다가 우리나라 같은 찜질방 시설이 있는 온천 사우나에 다녀왔다. 찜질방을 이용하니 배가 고파졌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찜질방 내부 식당으로 향했다. 다양한 메뉴 가운데 눈에 들어온 것은 직접 우린 차로 끓인 ‘오차즈케 정식’이었다. 후쿠오카(福岡)가 속한 규슈(九州) 지역의 유명한 녹차 브랜드인 ‘팔 녀(八女)’차를 직접 우린 찻물로 만든 ‘오차즈케’라는 설명을 본 뒤 기대감에 주문을 결정했다.

요리의 차림새는 ‘오차즈케’ 단품처럼 정갈했다. 잎차를 직접 우려 만든 ‘오차즈케’는 평소 먹던 ‘인스턴트 오차즈케’와 모양이 흡사했지만, 국물에 간은 되어 있지 않았고 맛은 깊고 담백했다. 곁들임 찬으로 나온 생선 타다키와 우메보시(매실 절임), 다시마조림, 오이 절임 등 오차즈케의 맛을 보완해 줄 반찬과의 조화도 적절했다. 사우나를 즐긴 뒤, 따뜻하고 담백한 오차즈케를 먹으며 생각했다. 일본에 나의 소울푸드가 있다면 그것은 ‘오차즈케’라고.

‘오차즈케’가 품고 있는 성정에 관해 생각해 본다. 조용하고 많은 것을 품어주며, 주변과 이질감 없이 어울리지만 자신만의 고유함을 가진 음식. 다른 음식들과 잘 어우러지지만, 홀로도 존재감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음식. 그것이 ‘오차즈케’의 성정이리라 생각해 본다.

문득 ‘오차즈케’는 나의 후쿠오카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하고 잔잔한 나의 후쿠오카의 삶과 그 삶에서 즐겨 찾는 요리 ‘오차즈케’와의 조화의 적절함을 떠올려본다.

‘오차즈케’에 애정을 느끼는 이유가 나의 후쿠오카의 삶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지금 머무는 나의 삶이 흐르는 방향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나만의 고유성을 따라 흐르고 있는 지금의 이 삶이.

염도가 낮고, 캐릭터 어묵이 들어있는 어린이용 오차즈케
염도가 낮고, 캐릭터 어묵이 들어있는 어린이용 오차즈케

수진 칼럼니스트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삶이 머무는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현재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며, 만나는 일상의 요리에 관해 '요리의 말들'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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