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를 품은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보온병에 항시 따뜻한 물을 담아두고,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를 내린다. 생강과 대추를 넣은 차를 끓여 감기에 대비하고, 무릎에는 온열 마사지를 위한 팩을 데워 올린 뒤 담요를 덮는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뜨거운 ‘오뎅(おでん)’으로 정점(頂点)을 찍는다.

일본은 몇몇 특정 식재료가 특화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어묵’이다. 바다 위 섬나라이기 때문일까. 찬바람 불기 시작한 뒤 마트에 가면 냉장식품 코너 한쪽 면에 온갖 종류의 어묵이 가득하다.

마트 냉장 식품 코너에 온갖 종류의 어묵이 가득하다.
마트 냉장 식품 코너에 온갖 종류의 어묵이 가득하다.

그 종류는 직접 헤아릴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우엉 어묵(ごぼう天), 튀긴 두부 어묵(厚揚げ), 표고버섯 어묵, 치즈 어묵, 구멍 뚫린 어묵(ちくわ), 일반적으로 어묵 하면 떠올리는 보통 어묵조차 모양에 따라 둥근 어묵(丸天)과 사각어묵(かく天)으로 나뉜다. 오뎅에 넣고 함께 끓일 곤약, 유부의 종류 또한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 밖에 스지(すじ, 소 힘줄), 유부 떡 주머니(お餅の巾着), 삶은 달걀, 말린 표고, 소시지 등의 재료까지 따져보면 오뎅의 세계는 무한하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오뎅’이나 ‘어묵’은 식재료이며, 오뎅을 넣고 끓인 탕을 ‘어묵탕’ 혹은 ‘오뎅탕’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 '오뎅(おでん)'이라하면 오뎅을 넣고 끓인 '오뎅탕' 자체를 뜻한다.

다양한 곤약과 유부 제품들
다양한 곤약과 유부 제품들

일본 ‘오뎅’의 신세계를 처음 맛본 것은 일본에 사시는 어머님을 통해서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집에 방문하셨던 어머님의 캐리어에는 각종 먹을거리와 다양한 오뎅재료가 가득 들어있었다. 어머님은 짐을 푸신 뒤 곧 오뎅을 끓이셨다. ‘무’를 통으로 두껍게 자르고, 유부 안에 일본 찹쌀떡(切り餅)을 넣어 실로 묶고, 계란을 삶아 곁들이고, 무가 끓을 동안 다양한 어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국물에 우동스프를 풀어 맛을 더하고... 어떤 일을 오랜 시간 하셔서 자신만의 완벽한 리듬이 몸에 밴 분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워, 어머님의 오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빠져들었다.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차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정에 이를 즈음 오뎅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뎅을 맛본 뒤 ‘오뎅은 오뎅일뿐’ 이라고 경험에 의해 짐작한 것은 나의 짧은 식견이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이 가득 담긴 요리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때 맛본 오뎅은 내가 그날까지 경험했던 오뎅 그 이상이었다.

종류별 어묵은 소포장 단위로 판매하며, 어묵 포장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있다.
종류별 어묵은 소포장 단위로 판매하며, 어묵 포장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남편의 직장을 계기로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사는 곳을 옮기게 되었고, 기억에 각인되어 있던 일본 오뎅은 종종 끓여먹는 우리 집의 별식이 되었다. 어떤 음식은 만드는 법을 알아도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먹는 쪽이 더 좋은 음식이 있다. 어머님의 마음이 들어간 오뎅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일까. 내게는 오뎅이 그랬다. 만드는 방법은 알지만, 오뎅은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먹는 쪽이 더 좋았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남편은 가끔 오뎅재료를 종류별로 잔뜩 사 와 오뎅을 끓이는 날이 있다.

오뎅 재료 준비
오뎅 재료 준비

집에서 가장 큰 전골냄비를 꺼낸다. ‘무’를 두께 3-5cm 정도 통으로 자른다. 무의 형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두껍게 잘라준다. 전골냄비에 물을 받아 통으로 자른 무를 여러 개 넣고, 무가 충분히 잠길 정도로 넉넉하게 물을 붓고 우동스프를 하나 풀어준다. 대파도 넣어주면 좋다. 끓이기 시작한다. 무가 다 익어 투명해질 때까지 30분가량 중약 불로 끓여준다. 무가 익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오뎅재료를 손질한다.

(좌) 국물 맛을 더해주는 조미료 '우동스프' / (우) 무와 파를 넣고 한참 동안 끓인다.
(좌) 국물 맛을 더해주는 조미료 '우동스프' / (우) 무와 파를 넣고 한참 동안 끓인다.

어느덧 통으로 썰어놓은 무는 투명하고 부드러워지고, 우동스프의 도움까지 받아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차 있다. 먹기 좋은 크기로 미리 손질해둔 오뎅 재료를 모두 냄비에 투하하고 그것이 끓을 동안, 남편은 오뎅에 곁들일 양파 무침을 만든다. 한 입 크기로 자른 양파를 고춧가루와 간장과 식초를 1:1:1의 비율로 넣고 버무린 양파 무침을 오뎅의 곁들임 요리로 만드는 센스를 잊지 않는다.

금세 익는 오뎅은 이제 터질 듯이 오동통해져 있고, 뜨거운 오뎅을 냄비째 식탁으로 옮긴다.

(좌) 재료들이 터질 듯이 오동통해지면 완성 / (우) 센스가 담긴 곁들임 요리. 양파 무침
(좌) 재료들이 터질 듯이 오동통해지면 완성 / (우) 센스가 담긴 곁들임 요리. 양파 무침

우리 가족은 함께 식탁에 앉아 다양한 종류의 오뎅을 각자의 기호에 따라 먹는다. 탱글탱글한 곤약과, 유부 속에 쫀득한 떡이 들어 있는 유부 떡 주머니(お餅の巾着)와, 우엉과 표고가 들어있어 건강을 챙겨 줄 것 같은 우엉 어묵(ごぼう天)과 표고 어묵, 두부의 담백한 고소함이 담긴 튀긴 두부 어묵(厚揚げ)과, 치즈가 한없이 늘어나는 치즈 어묵, 생선 살이 듬뿍 들어 있는 일반 어묵(丸天, かく天), 쫄깃한 구멍 뚫린 어묵(ちくわ), 그리고 부 재료인 소시지, 계란, 스지(소 힘줄)와 통으로 썰어 넣은 부드럽고 달콤한 ‘겨울 무’까지 끝없는 오뎅 재료들을 건져 먹으며 맛의 다양함을 즐기다 보면 오뎅은 한 냄비의 요리지만 한 냄비가 아닌 요리가 된다. 먹는 중간중간 아삭하고 상큼한 양파 무침을 더해가며, 한 식탁 위에서 각자의 기호를 반영한 저마다의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다.

달콤하고 영양이 풍부한 겨울 무를 현명하게 활용하기에는 오뎅이 제격이다.
달콤하고 영양이 풍부한 겨울 무를 현명하게 활용하기에는 오뎅이 제격이다.

겨울의 시간을 아직 한창 지나고 있다. 긴 추위가 지루할 즈음 가족들과 따뜻한 오뎅을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온기를 충전한다. 어느덧 몸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확신한다. 이번 겨울도 오뎅의 온기를 빌려 건강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수진 칼럼니스트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삶이 머무는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현재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며, 만나는 일상의 요리에 관해 '요리의 말들'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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