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주 2회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일본에 온 뒤, 도시락 문화가 보편적인 이곳에서 지내며 도시락을 만들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큰 염려는 없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도시락 만드는 일은 비 일상의 특별함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약간의 기대감도 품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에 부담이 얹힌 것은 잘못된 소문을 들은 뒤였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이곳에서 도시락이 안 예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웃어넘기기에는 아이의 첫 외국 생활에 따른 걱정이 컸다. 현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주 3회는 급식, 주 2회는 도시락 체제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린이 도시락 만들기 관련 책을 구입하고, 인터넷으로 예쁜 도시락을 검색해 만드는 법을 분석하며 준비에 나섰다.

앙증맞은 도시락 통에 담으면 일단 예뻐 보인다.
앙증맞은 도시락 통에 담으면 일단 예뻐 보인다.

당연하게도 도시락에 관련된 잘못된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잠시 유치원을 방문했다가 아이들의 도시락을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평범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평소 집에서 먹는 밥을 도시락 통에 옮긴 듯한 지극히 평범한 형태의 도시락들을 보며 ‘질(質)’에 대한 의무감과 부담은 덜었지만 가능하면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낯선 타국에서 홀로 외국인으로 지낼 아이가 엄마의 마음이 담긴 예쁜 도시락을 먹으며 힘을 얻었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예쁜 도시락’을 만드는 그 자체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도시락을 만드는 날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해 본 도시락 만들기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도시락에 특화된 나라 일본에는 예쁜 도시락통과, 도시락 만들기를 도와주는 보조 기구들과, 각종 캐릭터 식재료(캐릭터 어묵, 정교하게 세공된 김, 식용 스티커 등)들이 다양해 도구의 힘을 빌려 실력보다 예쁜 도시락을 만들 수 있었다.

도시락 제작을 도와주는 다양한 보조 기구들
도시락 제작을 도와주는 다양한 보조 기구들

만드는 원리는 간단했다. 그날그날 선정된 재료들(계란, 어묵, 채소, 돈가스 등)을 익혀서 계절과일과 함께 먹기 좋은 크기로 도시락통에 예쁘게 담아준 뒤, 모양픽을 꽂아주는 게 전부인데 늘 기대보다 예쁜 도시락이 만들어졌다. 나의 경우 도시락은 1. 주메뉴(계란, 어묵, 돈가스 등이나 볶음밥, 주먹밥 같은 일품요리)와 맛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2. 사이드 메뉴(파스타, 떡볶이, 만두, 빵 등의 부식)와 3. 과일의 구성으로 꾸몄다.

몇 가지 형태의 도시락을 만들어본 이후 아이디어 고갈을 염려했지만, 실제 만들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비슷한 메뉴를 일정 주기로 반복해도, 그날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의 도시락이 만들어지므로 반복은 피할 수 있었다. 또, ‘센스는 사랑에서 나온다.’고 즐거워할 아이를 생각하며 만들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었고, 머릿속에 떠오른 구상처럼 근사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도 어떻게든 다듬다 보면 그런대로 멀쩡해 보이는 도시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시락 만들기'는 일단 시작하면, 당장 들려 보내야 하니 어떻게든 끝을 볼 수 있는 장르여서 매력적이었다. 필요한 것은 그저 '약간의 센스(많이도 필요치 않다)와 만들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먹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도시락을 만들며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이 일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고요한 아침 차분하게 나만의 리듬으로 도시락을 만들며 평온했다. 채소를 다지고, 계란을 말고, 주먹밥을 뭉치고, 볶음밥을 볶고, 떡볶이를 만들고, 파스타를 삶고, 식빵을 돌돌 말아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자르고.. 아무 말도 않은 채 고요하게 그날그날 마음이 끌리는 대로 나만의 세계에서 도시락을 만들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순간만큼은 그저 ‘도시락을 만드는 나’만 존재했다.

(왼쪽부터) 신칸센(新幹線) 도시락, 닥터 옐로(Dr.Yellow) & 호빵맨 도시락. 호빵맨은 어묵의 한 종류인 ‘한펜(はんぺん)’
(왼쪽부터) 신칸센(新幹線) 도시락, 닥터 옐로(Dr.Yellow) & 호빵맨 도시락. 호빵맨은 어묵의 한 종류인 ‘한펜(はんぺん)’

그렇게 도시락을 만들며 익힌 원리(재료를 선정하고 익혀서 계절과일과 함께 먹기 좋은 크기로 도시락통에 예쁘게 담아준 뒤, 모양픽을 꽂아주는 일)에 따라 도시락을 만들며 느꼈다. 도시락을 만드는 행위는 어쩌면 ‘기술(技術,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 직’에 가깝겠다고.

도시락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시한부(時限附)의 비 일상(非日常)에서 기인한다. 유치원 방침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만 지속될 시한부 비일상의 행위. 도시락 만들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에 있을 것이다.

아이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것이 비 일상이기에 즐겁게 임하는 반면, 아이는 그것을 일상의 영역으로 데려와 주 2회가 아닌 주 5회 매일 도시락을 먹기를 소망한다.

도시락에 관한 우리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꼭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은 말할 수 없지만, 때로는 비 일상으로 일상은 더욱 아름다워지므로. 나에게는 비일상의 이벤트인 도시락 만들기가 즐겁고, 아이에게는 비 일상인 엄마의 ‘작품(도시락)’을 열어보는 기쁨이 있을 테니.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그 특별함이 반감되지 않도록, 언제까지 이 일은 빛나는 비 일상의 영역에 머물러도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아이가 아름다운 도시락을 열어보며 그곳에 담긴 사랑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오늘도 작품(作品)을 빚는다.

오늘도 아름답게 작품(作品)을 빚는다
오늘도 아름답게 작품(作品)을 빚는다

수진 칼럼니스트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삶이 머무는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현재 일본 후쿠오카에 거주하며, 만나는 일상의 요리에 관해 '요리의 말들'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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