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와인

Benjamina, Artesano Vintners 2018 화이트(펫낫)
Parellatxa, Artesano Vintners 2018 로사토

라일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라일락은 첫사랑을 상징합니다. 그토록 강한 향기는 쉽게 잊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삶이 느려지고 고독해질 때 라일락 향기는 과거의 시간을 환기시켜줍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단호합니다.

“저는 당신이 저에 대한 기억에 붙들려 있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것이 제가 제 자신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이유입니다.”(모리스 블랑쇼, ‘기다림의 망각’)

하지만 첫사랑은 불변의 아픔을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라일락 향기가 흩날리는 봄날이 되면, 제프 버클리의 노래 ‘라일락 와인’이 듣고 싶어집니다. 차라리 노래라기보다는 혼자 중얼거리는 천재 뮤지션의 가슴 밑바닥에서 고갈되지 않는 기다림의 고통이 죽음처럼 드리워짐을 느낍니다.

주량을 훨씬 넘긴 채
와인을 들이키고 있네, 술에 취하면
당신에게 돌아가고 있을 테니까
라일락 와인은 달콤하고
나를 흥분시키네, 내 사랑처럼
내 말을 들어 봐요
내 눈은 흐려지고 있네요
여기 곁으로 오는 사람이 그녀인가요
라일락 와인은 달콤하고 나를 흥분시켜요
내 사랑은 어디 있나요
라일락 와인은 나를 불안하게 해요
내 사랑은 어디 있나요
 

▲ Lilac Wine이 수록 된
  Jeff Buckley의 'Grace'

어느 날 강물에 휩쓸려 의문처럼 요절한 그의 노래는 단 한 장의 유작 앨범으로만 남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그에게 열광했습니다.

그 절절한 고독과 우울과 슬픔으로 가득 찬 라이브로 담겨진 이 노래, ‘라일락 와인’ 앞에서는 누구나 무심함을 가장할 수 없습니다.

슬픔에 이끌리듯 사랑을 찾아나선 소년처럼 오늘 마실 와인을 골라봅니다.

내 첫사랑 닮은 와인은 어디 있나요?

저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마실 와인을 찾습니다. 

노래 가사의 전문을 보면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라일락 와인을 만든다고 했지만 라일락 와인은 실재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혹 있다하더라도 상업적으로 유통되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첫사랑의 키워드가 순수함이라 할 때 그런 와인을 찾으면 되겠네요.

스페인 카탈루냐에 와이너리를 두고 있는 아르테사노 빈트너스의 벤자미나(Benjamina) 펫낫과 빠레야차 (Parellatxa) 로사토 와인을 골랐습니다. 이 두 와인은 소위 내추럴 와인입니다.

내추럴 와인은 가장 ‘순수한 자연’을 지향하는 와인입니다. 순수함은 첫사랑의 키워드만이 아니라 내추럴 와인의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 아르테사노 빈트너스(Artesano Vintners)의 벤자미나(Benjamina) 펫낫과 빠레야차 (Parellatxa) 로사토 와인

최소한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기르고 발효시 자연 효모만을 사용하고 양조할 때 아무 것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잘 보살피고 보호하여 생산된 와인이 존재합니다. 이런 와인이 내추럴 와인으로 정의됩니다.

와인 저널리스트 엘린 멕코이는 “내추럴 와인은 21세기 와인 세계의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도 내추럴 와인이 미래의 와인 시장의 새로운 활기를 열어줄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내추럴 와인은 곧 생명에 대한 찬미입니다.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보여주는 이런 철학적 믿음 때문에 내추럴 와인이 오늘날 존재합니다.

자본의 힘에 의한 현대화 추세에 편승하여 포도 재배의 증대와 개입주의적인 와인 양조가 대세를 이룰 때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내추럴 와인 운동은 80년대에 처음 등장했지만 이제는 그 네트워크가 급성장했습니다.

“내추럴 와인 양조는 정밀함을 요구합니다. 그건 일종의 체인과 같아서, 가장 약한 부분이 끊어지면 전부 못쓰게 되어버리죠. 그러므로 엄격해야 하고 시간적 여유를 두어야 해요.” 내추럴 와인의 거장 부르고뉴 자크 네오포흐의 이 말의 의미는 내추럴 와인은 애정과 보살핌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토록 느리고 그토록 확실하고 그토록 신중하게 나아가는 방식보다 아름다운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아무것도 제거하지 않는’ 와인을 만드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제적 생산성을 우선에 두지 않고 능숙한 기술과 철학적 의식과 극도의 세심함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와인을 우리 입맛에 맞추려고 개입주의적인 와인양조에 사용되는 첨가물(물, 설탕, 주석산에서부터 타닌 분말, 인산염, 디메틸 디카보네이트, 아세트알데히드, 과산화수소 등)은 모두 약 200여 종이라고 하니 내추럴 와인이 왜 시대의 새로운 흐름인지 이해할만 합니다.

아르테사노 빈트너스 와인은 소박한 농부가 만든 순수한 형태의 내추럴 와인입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밭에서 포도를 기르고 손수확하여 와인을 만듭니다. 발효시 자연 효모만을 사용하고 이산화황을 비롯한 어떠한 화학 첨가물도 넣지 않습니다. 여과와 청징 과정도 거치지 않아 부유물을 육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벤자미나’ 펫낫 와인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Pet-Nat’은 페티앙 나튀렐의 줄인 말로 자연적으로 기포가 있는 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샴페인만큼 기포가 과도하지 않으며, 약간의 당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통통 튀는 매력을 지녀 봄의 와인으로 제격입니다. 아주 편안하고 마시기에 좋은 펫낫은 내추럴 와인계에 등장한 가장 흥미로운 와인에 속합니다. 마시는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훌륭한 가치를 지닌 와인입니다.

‘벤자미나'는 와인메이커 마이클 셰퍼드와 친한 어떤 가족의 딸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그 이름처럼 예쁘고 발랄한 소녀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세미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아르테사노 빈트너스가 만든 또 다른 ‘빠레야차’ 역시 순수한 형태의 내추럴 와인입니다. 메인 블렌딩으로 사용된 빠레야다와 가르나차 품종을 합성한 이름을 와인명으로 삼았습니다.

화이트 품종인 빠레야다의 아로마가 레드 품종인 가르나차의 바디감과 탄닌으로 조화를 이루는 와인입니다. 화이트 품종과 레드 품종이 결합된 독특한 이 와인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진 듯 장밋빛을 띠고 있습니다. ‘로사토’는 장밋빛을 지닌 로제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약간 추운 봄날 따뜻한 불빛 앞에서 차갑게 칠링된 이 와인을 마시면서 사랑을 나누기에 제격입니다.

하지만 빠레야차는 단 855병만 생산되었을 뿐입니다.

제프 버클리의 음울하게 슬픈 노래 때문에 오늘은 주량을 훨씬 넘기며 와인을 마십니다. 그리고 오래 전 그녀가 내게 남긴 말이 떠오릅니다. ‘이 라일락 나뭇잎을 씹어보세요. 이게 첫사랑의 맛이랍니다’

아, 무심코 씹게 된 그 쓰디쓴 라일락 나뭇잎이여, 나는 그때 하나의 사랑을 잃고 더듬거렸네.

내 사랑은 어디 있나요.

글쓴이 마숙현은 헤이리 예술마을 건설의 싱크탱크 핵심멤버로 참여했으며, 지금도 헤이리 마을을 지키면서 <식물감각>을 운영하고 있다. 와인, 커피, 그림, 식물, 오래 달리기는 그의 인문학이 되어 세계와 소통하기를 꿈꾼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마숙현 meehania@hanmail.net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