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의 샴페인 여행] <14> 목은 뜨겁지만 맛은 상쾌하다, 필리포나

승인2018.04.16 09:24:49

필리포나(Philipponnat)는 샴페인 여행을 계획하다가 알게 된 곳이다. 한 번도 마셔보지 않아 하우스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았는데, 이 하우스는 리처드 줄린으로부터 별 4개를 받았으며, 최고급 샴페인인 '클로 드 고아스(Clos des Goisses)'는 『죽기 전에 꼭 마셔봐야 할 와인 1001』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 필리포나 하우스 전경 <사진= 김지선>

말이 나온 김에 이 와인부터 이야기해볼까? 사실 필리포나를 소개하기 가장 좋은 것도 이 샴페인이다. 클로 드 고아스는 필리포나가 소유한 밭이자 와인 이름이다. 클로(Clos)는 프랑스어로 '벽'을, 고아스(Goisse)는 샹파뉴 지역의 옛 방언으로 '가파른 경사'를 뜻한다. 즉, 이 와인의 이름은 '벽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경사의 포도밭'을 의미한다. 작은 강줄기를 바라보는 언덕의 경사는 무려 45도나 된다. 그덕에 이곳의 포도로 만든 샴페인은 샹파뉴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13도의 알코올 도수를 자랑한다. 한 모금만 삼켜도 여타 샴페인과는 달리 목이 뜨끈해짐을 느낄 수 있고, 잘 익었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복숭아 등 과일 향이 가득하다.  

▲ 클로 드 고아스 포도밭의 중턱만 올라가도 집들의 지붕과 작은 강이 보인다. <사진= 김지선>

안개가 살짝 끼어 더 묘한 분위기를 내는 에메랄드빛 강을 지나 필리포나 하우스에 도착했다. 건물은 아담하고 내부는 역사가 묻어나는 장식품 없이 꾸며져 있어서 외관만 본다면 얼마 전에 생긴 샴페인 하우스처럼 보였다. 실제로 '샴페인 하우스'로 시작한 때는 1910년이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포도와 관련한 필리포나 가문의 역사는 1522년부터 시작되었다. 스파클링 형태의 샴페인이 자리잡을 무렵의 인물인 돔 페리뇽이 1600년대에 태어났으니, 그 전에 세워진 필리포나는 포도농장이나 스틸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였다. 설립 초창기에는 가문이 디지(Dizy)와 아이(Aÿ) 사이에 위치한 르 레옹(Le León)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판매했다고 한다. 재정 문제로 1997년에 샴페인 그룹 랑송-BCC(Lanson Boizel Chanoine Champagne)에 인수되었으나, 가문의 16대손인 찰스 필리포나(Charles Philipponnat)가 2000년부터 운영을 맡고 있다.

▲ 가문이 포도 관련 사업을 시작한 해를 기념하여 '1522'샴페인도 생산한다. <사진= 김지선>

피노 누아의 힘을 표현하는 샴페인, 필리포나

현재 필리포나는 아이 지역을 포함하여 아이 옆에  있는 마레일-쉬르-아이(Mareuil-Sur-Aÿ), 아브네(Avenay)에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포도밭 17헥타르를 소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포도는 필리포나의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만 차지한다. 나머지 3분의 2는 다른 포도원에서 사와서 샴페인을 만든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도 품종은 피노 누아인데, 그래서 샴페인 대부분이 향이 강하고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포나가 위치한 아이 쪽은 피노 누아가 잘 자라서, 필리포나 뿐 아니라 유명 샴페인 하우스인 볼랭저도 피노 누아를 주로 사용한다.

▲ 필리포나 카브 <사진= 김지선>

참고로 필리포나 하우스는 포도를 처음 압착했을 때에 나온 포도즙 퀴베만 사용한다. 두 번째 압착 포도즙인 타이를 포함한 나머지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니콜레타씨는 다른 생산자에게 판매한다고 대답했다. 대개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나 자신의 이름을 샴페인 이름으로 내건 개인 생산자는 높은 품질의 샴페인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만, 일부 협동조합이나, 대규모 유통 업체, 레스토랑 등은 낮은 가격대의 자체 브랜드 샴페인을 만드는 데 더 집중한다. 필리포나가 남은 포도즙을 판매하는 곳은 랑송-BCC에 소속된 하우스 아벨 르피트르(Abel Lepitre)다. 이렇게 판매하는 나머지 포도즙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다는 거지, 절대적으로 낮다고 보기는 힘들다. 

▲ 필리포나 하우스 앞에 매달려 있는 포도들 <사진= 김지선>

수확철이 한참 지났는데도 하우스 앞의 작은 텃밭에는 까만 포도 몇 송이가 잎이 떨어진 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 포도들은 필리포나가 피노 누아의 샴페인 하우스라는 메시지를 한눈에 전해주었다. 안내를 맡은 니콜레타 드 니콜로(Nicoletta de Nicolo)씨를 따라 와이너리로 향했다.

다양한 오크통 사용법

▲ 필리포나는 솔레라 방식으로 리저브 와인을 숙성한다. <사진= 김지선>

양조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지런히 정리된 크고 작은 오크통들이 보였다. 여기서 오크통은 2가지의 용도로 나뉘어 사용된다. 첫 번째는 와인의 1차 발효 때고, 두 번째는 리저브 와인이 숙성할 때다. 발효용 오크통은 포도밭마다 와인을 따로 보관하기 때문에 크기가 작고, 나무의 향을 빼고자 부르고뉴에서 이미 쓰인 것만 사용된다. 이 오크통에서 포도즙은 2주간 발효하여 와인이 된다.

그러나 필리포나의 모든 포도즙이 오크통에서만 발효하지는 않는다. 셀라 마스터(또는 와인메이커라고도 부른다)는 매년 작황 정도에 따라 오크통 또는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 넣을 포도의 비율을 결정한다. 스테인리스 통에서 발효된 와인은 추가로 유산 발효를 거치며 날카로운 산미가 부드럽게 변한다.

▲ 발효할 때는 부르고뉴에서 사용된 오크통을 가져와 쓴다. <사진= 김지선>

오크통의 2번째 용도인 리저브 와인 숙성 때는 서로 다른 품종과 빈티지, 포도밭의 와인이 큰 오크통에 섞여 함께 숙성된다. 필리포나는 이 솔레라 방식을 오랫동안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 샹파뉴에서 여러 리저브 와인을 오크통에 혼합하여 숙성하는 솔레라 방식은 자크 셀로스가 유행을 일으킨 1980년대보다 훨씬 전부터 사용되었다. 현재 필리포나 하우스도 계속 이 방법으로 리저브 와인을 보관하고 있다.

리저브 와인 중 일부는 1월부터 3월 사이에 셀라 마스터의 시음을 통해 넌빈티지 샴페인에 얼만큼 사용될지 결정되고, 5월과 6월 사이에 샴페인 병으로 들어간다. 병에 들어간 후에는 다시 발효와 숙성을 거치며 탄산과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낸다. 필리포나 하우스의 숙성 기간은 넌빈티지의 경우 3년, 빈티지는 6년에서 10년이다. 이렇게 만든 전체 생산량은 매년 60만 병 정도다.

가파른 경사에서 만들어진 샴페인, 클로 드 고아스

▲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클로 드 고아스' 포도밭이 있다. <사진= 김지선>

이 포도밭은 필리포나 하우스에서 걸어서 3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포도밭 이름은 '클로 드 고아스' 하나지만 밭을 세부적으로 나누는 구역(plot)은 14개나 된다. 전체 넓이는 5.5헥타르며, 3분의 2는 피노 누아, 3분의 1은 샤르도네가 심어져 있다. 각 하우스의 최고급 샴페인은 몇 년에 한 번씩만 출시되지만, 다행히 필리포나의 최고급 샴페인인 클로 드 고아스는 90년대부터 매년 생산된다. 이는 비교적 포도밭이 넓고, 45도에 이르는 급경사로 인해 햇빛 공급이 충분한 덕이다. 포도즙의 발효는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스틸 통이 모두 사용되며, 스틸 통에서 발효를 거칠때는 유산발효가 생략된다. 다른 밭보다 포도가 더 많이 익어서 유산발효까지 거치면 산도가 낮아져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포나를 떠나며

피노 누아의 힘을 내세우는 하우스지만, 필리포나의 샴페인들, 특히 클로 드 고아스는 섬세함과 신선한 과일 향을 잘 보여준다. 요란하지 않지만 뒤돌면 계속 떠오르게 하는 맛은 하우스 앞을 흐르던 잔잔한 에메랄드색 강을 닮았다. 앞으로 필리포나 샴페인을 마실 때면 한적한 마을의 안개 낀 강이 떠오를 것 같다.

김지선 칼럼니스트는 영국 와인 전문가 교육 WSET Advanced 과정을 수료후 WSET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마셔도 끝이 없는 와인의 세계에 빠져 와인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으며, 전 국민이 와인의 참맛을 아는 날이 오도록 힘쓰고 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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