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야끼는 훌륭했다. 양념이 살짝 달착한 느낌인 것은 일본 스타일도 있지만 한주의 입맛이 단 것을 덜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인 탓이 크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양념 냄새가 내장의 비리고 역한 냄새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냄새가 없다는 것. 비위 좋은 사람이라면 회로 먹어도 될 정도로 깔끔하다. 한주가 놀란 것은 그 점이었다.

서울이라도 마장동이나 지역 도축장에 직접 거래가 있는 정도의 가게가 아니면 이런 퀄리티의 소 내장을 구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야 쇠고기가 최고인 나라라서 도축량도 많고 다양한 부위를 먹는 역사가 오래전부터 있어서 공급체인이 갖춰져있다고 하지만 도쿄도 그런 것인가.  

하나의 먹거리가 최상의 상태로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요리사 이전에 생산자, 도축자, 가공자, 그리고 단계마다 이것을 운송하는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가능한 것이다. 도쿄가 파리보다 미슐랭 스타가 많은 이유는 좋은 요리사들 뿐 아니라 거래처가 최고의 식재료와 도구며 그릇을 쓸 수 있도록 매 단계에서 정성과 연구를 다 하는 프로들이 사슬을 이루고 있고, 그만큼 좋은 것이라면 제값을 내고 먹고 쓰겠다는 소비자, 아니 공동생산자(Co-Producer)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영규와 이것저것 사업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푸른 도깨비와 맥주를 한 잔씩 비웠다. 이젠 본격적인 음주 분위기다.

고점장이 내온 술은 ‘토라(虎) 막걸리’, 우리말로 번역하면 호랑이막걸리 정도 된다. 다부진 유리병에 멋진 글씨체로 호랑이 호자가 써있다. 그 밑으론 한글로 ‘막걸리’라고 뚜렷이 쓰여있다. 700미리리터라는 용량도 특이하다. 뒷면의 라벨을 읽어보니 한국식 누룩이 아니라 일본식으로 코지에 효모를 사용해서 발효시킨 술이다. 은박 별지로 '절대냉장'을 강조하는 것이 생막걸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우선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맑고 깨끗한 술이다.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에 대해서 테이스팅 노트를 쓰면서 ‘백지불경(白紙佛經)’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건 맑고 깨끗하기론 그 이상이다. 걸쭉하거나 텁텁하지 않고, 아니 막걸리 앙금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 맑은 느낌이 들다니. 사케를 만드는 기술과 마음으로 만든 막걸리다. 한국인으로선 발상도 떠오르지 않을 그런 막걸리. 술 자체는 너무 맑아서 매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반주로 마시기엔 또 이런 술이 훌륭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건 참 맑고 깨끗한 점이 특징이군. 사케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인가보지?”

“네, 후쿠시마의 사케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입니다. 토지는 순수 일본 사람이고요. 그렇게 깨끗한 점이 어필해서 은근히 판로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이런 요리집에서도 취급하는 곳이 여럿이고 개인도 그렇고요.”

“가격은 어느 정도지?”

“이곳에서 판매가가 2400엔이니까, 입고가는 자세히는 몰라도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한주는 다시 한 모금을 마시고 생각해 보았다. 후쿠시마산이라는 찜찜한 같은 것은 이 술을 마신 놀라움 앞에 자리도 없고, 구체적인 계산이 돌아간다.

‘사입가는 800~1000엔 사이 어디겠지. 만약에 그 가격에 한국에 들어온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어. 물론 그 가격엔 못 들어오고 아마 사입가로 15000~20000원은 책정해야겠지. 만만치는 않은 가격이지만 시도도 못해볼 가격도 아니겠네.’

그러다가 역시, 생산지가 후쿠시마라는 것에 이르러서는 김이 빠져나갔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후쿠시마’란 라벨을 붙이고 한국에서 음식료를 판매할 가능성은,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프리미엄 상품으론 없다고 봐야 한다.


용어해설 : 공동생산자(Co-Producer)


상품경제에서 생산은 소비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생산한다고 할 수도 있다. 지속가능성, 공정무역, 지역사회 보존 등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소비한다면 생산과 유통에서도 그런 가치가 반영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생산자라는 개념은 슬로우푸드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백웅재작가의 뉴스레터 구독 신청https://writerpaik.stibee.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