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에도 고점장이 술을 가져다준 몇 테이블에서 반응은 호평 일색에 예의 휘둥그레진 눈이었다. 시음한 사람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곳의 가격을 생각하면 젊은 사람들이 주류고객은 아닌 것 같지만, 어쩌면 고성무 점장을 보고 오는 단골손님들 위주라 그런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반응이 좋다는 것이 고무적이었고, 비교시음이라지만 요시노가와 극상은 그냥 한주와 영규가 같이 마셨다. 굳이 비교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지금 요시노가와를 권한다면 사람들의 흥만 깰 뿐이다. 그리고 십칠주는 개봉도 안 하고 남겨둔 상태다. 

“2차 가자.” 

업장 전체에 출렁이는 기쁨을 느끼며 한주가 영규에게 말했다. 당연히 한주도 흥이 많이 오른 상태다. 

“네, 2차는 이 근처에, 교포가 운영하는 소바집입니다.” 
“응, 그래 가자.” 

그런데 좀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소바집이라면 한국에서는 그다지 술을 마시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는 일본이고 영규가 알아서 잘 안배했겠지 싶어서 말없이 일어나서 술값을 치르고 가려는데 고점장이 소맷깃을 붙잡는다. 

“저 죄송하지만 같이 사진이라도 찍고 가시면 어떨까요? 한국에서 최고 술 전문가라고 들었는데 같이 사진 한 번 찍으면 영광이겠습니다. 영규 형님이 형님이라고 하시는데, 저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 그래요. 뜻하지 않게 좋은 동생도 생기고 아주 좋은 날이네요. 최고 술전문가란 건 세상에 없는 타이틀이긴 하지만 말이죠. 사진은 같이 한 장 찍읍시다.” 

한주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날은 흥이 나서 어깨를 얼싸안았다. 서빙하는 자세나 스태프들을 지휘하는 모습, 갑작스런 시음회를 도와주는 모습에서 고성무 점장의 프로로서의 역량을 느끼고 존중심이 생긴 것도 있고, 일본사회에서도 한국사회에서도 완벽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자이니치(在日)’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애닲음도 있다. 사진을 찍고, 그것을 전해준다는 핑계로 페이스북 친구도 되고, 제법 인연을 맺었다. 다음에 도쿄에 올 때면 또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걸어가니 그 소바집이 나왔다. 영규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하니 인상 좋고 건장한 중년 남자가 

“아 오랜만이네” 
하며 맞아준다. 영규가 한주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소바집이라지만 여러 가지를 파는 것 같군.” 

“네. 이자카야 같은 분위기지요? 그런데 여기 소바가 유명해서 낮에 식사 손님도 많고 저녁에도 장사가 잘 됩니다.” 

“그건 특이한 식당인 게 맞군. 그래 영규가 좀 알아서 주문을 해줘,” 

그때 인상 좋은 사장님이 테이블로 왔다. 
“형님 이 술 좀 마셔도 되겠지요? 형님도 한 잔 드시고요.” 

“어 그래 물론이지. 나도 한 잔 주고, 우리집 막걸리도 마시러 온 거지?” 

“네, 그것도 한 잔씩 주십시오. 그리고 술안주로는 소바튀김 샐러드 하고 고등어구이로 주세요.”

한주가 십칠주 병을 열어서 우선 한 잔을 사장에게 따랐다. 사장은 작은 잔에 한 잔을 마시더니 복잡한 표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주는 슬며시 긴장감이 생기면서 사장의 입을 쳐다본다. 어떤 평이 나올 것인가? 

“이거라면 고등어보단 가라아게가 좋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가라아게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맛은 어떠십니까?”

한주가 약간 조바심을 비치며 물었다.

“좋아요. 아주 묵직한 것이 인상적인데요? 신맛도 강하고, 일본에는 없는 맛이군요. 조금 어려운 면도 있지만 술을 아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좋아할 것 같습니다. 일단 안주를 내오고 저희 가게 막걸리도 한 잔 올려드리겠습니다.”

이곳의 막걸리는 또 어떤 술일까? 무슨 막걸리라고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 이곳, 이 가게의 막걸리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용어해설 : 자이니치(在日)


재일교포의 일본어식 표현.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 또는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들로 한국, 일본 양쪽에서 다 완전한 국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일상생활의 불편과 정체성의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백웅재작가의 뉴스레터 구독 신청https://writerpaik.stibee.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