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앙투안 샤프탈(Jean-Antoine Chaptal, 1756 - 1832) (사진=Wikimedia)
장앙투안 샤프탈(Jean-Antoine Chaptal, 1756 - 1832) (사진=Wikimedia)

당도가 낮은 머스트에 설탕 등을 첨가하여 당도를 높이는 작업을 “샤프탈라이세이션/샤프탈리사시옹(chaptalization)"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그의 논문 <와인양조의 관리와 완성을 위한 실무적 기술(L'Art de faire, gouverner et de perfectionner le vin, 1801)>에서 당도를 높이면 발효 후에 알코올농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밝혀, 그의 이름 '샤프탈(Chaptal)'에서 따 온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샤프탈은 나폴레옹과 부르봉 왕조시대에 프랑스 초기 산업화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라부아지에, 게이뤼삭 등 뛰어난 과학자들이 활약을 하고 있을 때였고, 대부분 학자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고난을 겪었지만, 그는 공화정 시절이든 왕정 시대에서나 중요한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 이는 그가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화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에서 최초로 화학공장을 차려서 황산, 질산, 염산 등을 생산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과학 이론을 도자기 제조, 와인 양조, 치즈 제조, 염색 산업, 제병공업, 페인트, 화약 제조 등에 적용하여 다방면에 걸쳐 프랑스의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이윽고 나폴레옹은 그를 내무부장관으로 임명(1800)하기에 이른다.

1802년에 그는 루아르의 투렌(Touraine)에 있는 샤토 드 샹텔루(Château de Chanteloup)와 넓은 부지를 구입하여, 메리노 양을 키웠고 말년에는 사탕무 재배를 위한 시범 농장에서 실험을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나폴레옹은 1808년 그를 제국의 샤프탈 백작으로 임명하였고, 1810년에는 샹텔루 백작(1810)이란 직위까지 내렸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1819년에 루이 18세까지도 그를 귀족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라부아지에가 개발한 신규 화학 명명법으로 "질소"라는 용어를 처음 명명할 정도로 이론 화학에도 강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는 프랑스 혁명부터 시작된 엄청난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프랑스 산업에 기여하였기에, 구스타브 에펠은 그가 세운 에펠탑에 ‘프랑스를 빛낸 과학자 72명’ 중 사람으로 그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동 대학원 발효화학전공(농학석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Freesno) 와인양조학과를 수료했다. 수석농산 와인메이커이자 현재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한국와인협회 회장으로 각종 주류 품평회 심사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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