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에서 진행된 샤토 팔머(Chateau Palmer) 와인메이커 시음 행사
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에서 진행된 샤토 팔머(Chateau Palmer) 와인메이커 시음 행사

지난 1월 17일, 와인 수입사 나라셀라에서 운영하는 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에서 '샤토 팔머(Chateau Palmer)'의 와인메이커 시음 행사가 진행되었다.

샤토 팔머의 CEO이자 와인메이커인 토마 뒤루(Thomas Duroux)와 수출담당 이사 세바스티앙 므뉘(Sebastien Menut)가 진행하고 나라셀라 와인문화연구소 신성호 이사의 통역으로 약 두 시간 진행된 이번 시음 행사는 샤토 팔머의 역사와 양조 철학, 떼루아의 특징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과 더불어 샤토 팔머 2000 빈티지 등 4종 와인에 대한 비교 시음과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이번 시음회에서는 샤토 팔머 2000, 2012, 2017 빈티지와 Alter Ego 2017 등 4종의 팔머 와인이 시음되었다.

시음회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샤토 팔머 2000 빈티지
시음회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샤토 팔머 2000 빈티지

이번 시음회에서는 샤토 팔머 2000 빈티지가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23년 정도의 오랜 숙성으로 가장자리에 가넷 색조를 띤 루비 레드 색상을 보였고, 블랙베리, 버섯, 구운 육류, 숲속 바닥, 농장 마당, 토바코, 삼나무, 향신료의 풍미가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풍미와 미네랄의 뉘앙스를 보여준 미디엄 바디의 와인이었다. 벨벳 같은 질감의 타닌과 라운드한 구조감은 상쾌한 산미와 잘 익은 과일향과 함께 훌륭한 밸런스를 보여주었는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의 궁극의 피네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00빈은 메를로 47%, 카베르네 소비뇽 53%의 블랜딩으로, 로버트 파커 96점을 받은 바 있다.

샤토 팔머에서 표현되는 떼루아의 느낌은 복잡성으로, 과일, 꽃, 향신료의 풍성한 향과 강렬한 타닌, 숙성을 통해 발전되는 밸런스와 타닌의 부드러움은 긴 피니쉬와 함께 완성된다.

샤토 팔머(Château Palmer)
샤토 팔머(Château Palmer)

샤토 팔머(Château Palmer)는 마고(Margaux) AOC에서 그랑 크뤼 3등급이긴 하지만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와 경쟁할 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토 팔머의 역사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영국군 장성 출신인 찰스 팔머(Charles Palmer)가 1814년 샤토를 사들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1938년에 4명의 보르도 네고시앙 가문이 이 부지를 매입했으며, 그중 Sichel과 Mähler-Besse 두 가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토스카나 오르넬라이아(Ornellaia)에서 4년간 와인메이커로 활약했던 프랑스인 토마 뒤루(Thomas Duroux)가 CEO로 스카우트되어 2004년부터 와이너리의 경영은 물론 양조를 총괄하고 있다.

토마는 포도 반입 구역과 발효조, 배럴 저장고를 현대화하고 양조장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완료했고, 포도 재배 방식을 개선하여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적용하는 등 오늘날 샤토 팔머는 보르도에서 가장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998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Alter Ego는 포도원의 특정 구획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하며 샤토 팔머와는 다른 방식으로 블랜딩되기 때문에 세컨드 와인이 아닌, 별개의 퀴베라 할 수 있다. 연간 생산량으로는 Chateau Palmer가 8~10만 병, Alter Ego가 12~14만 병 정도 나온다.

Palmer는 Margaux 마을 바로 외곽의 깡뜨냑(Cantenac)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롱드(Gironde)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고원 위에 자갈, 모래, 점토 토양의 포도밭 66헥타르에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고, 식재 구성은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이 각각 47%, 쁘띠 베르도가 6%로 분포되어 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40년 정도지만 일부는 70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메를로의 비율과 세심하게 잘 관리되는 바이오디나미 관행의 이점이 함께 작용하여 와인에 풍부함과 복잡성을 더한다.

지롱드강의 좌안에 있는 마고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볼 때 1.7백만년전과 1.2백만년전 두 번의 빙하기 때 상류에서 밀려온 자갈토로 뒤덮여 있는데, 가론강의 발원지인 피레네 산맥과 도르도뉴강의 발원지인 프랑스 중부 마시프 상트랄 산맥에서 빙하와 함께 쓸려 내려온 자갈들이 지롱드강의 하류 지역에 쌓이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빙하기 때에 돌들이 지하에 깔리면서 자갈 테라스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샤토 팔머는 18개의 다른 자갈토양 구성을 보이지만 크게 2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모래가 섞인 gravel soil로, 클래식한 마고 와인이 나오는 Alter Ego의 포도밭이고, 두 번째는 점토가 많이 섞인 자갈 토양으로 샤토 팔머를 생산하는 포도밭으로, 마고에서도 아주 독특한 와인이 생산된다고 한다. 메독 지역에서도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이 블랜딩의 주종을 이루는데 반해, 샤토 팔머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거의 동일한 비율로 사용하는데, 점토 성분이 많은 테루아의 특성 때문이다. 지금도 샤토 팔머 최고의 포도밭 블록에는 아주 오래된 메를로가 식재되어 있다.

시음에서 소개된 샤토 팔머 와인 4종
시음에서 소개된 샤토 팔머 와인 4종

샤토 팔머는 특이하게도 매 빈티지마다 앙프리메르(숙성 직전 선매제도)에서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판매하고 나머지 와인은 시음 적기에 이른 10년 뒤에 내놓는다고 한다. 이는 현대 양조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르도 대학 에밀 페노 교수의 지론에 따른 것인데, 에밀 페노 교수에 의하면 보르도 와인은 최소 10년은 묵혀야 시음 적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10년을 참고 기다렸다가 내놓는 샤토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하겠다.

발효는 다양한 크기의 원뿔형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이루어지므로 품종, 밭 단위별로 선택되어 별도로 발효되고 이후 블랜딩된다. 그랑 뱅인 샤토 팔머는 배럴에서 20~22개월간의 숙성을 거치는데, 새 오크 비율은 50% 미만이다. 바이오디나믹 농법으로 생산된 건강한 과일 덕분에 샤토 팔머는 양조 시 첨가되는 이산화황의 양을 많이 줄였고, 덕분에 보다 신선하고 순수한 맛을 지닌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다. Alter Ego의 경우는 뉴 오크의 비율과 숙성 기간을 약간 줄여서 과일의 신선함과 아삭아삭함, 어릴 때 마셔도 좋은 풍미 등으로 차별화하고 있다.

포도원에서는 2008년부터 시험적으로 일부 구획에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여 2013년부터는 100%로 전환했으며 포도원을 둘러싼 부지에는 보완 작물과 수많은 동식물군들이 서식하며 거대한 공생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총체적(Holistic) 접근법이라 한다. 포도원의 홀리스틱 접근은 포도를 재배하는 환경 요소를 포괄하는 통합적인 방식이다.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것을 넘어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토양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며 야생 동식물, 토양 생물,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며 물, 토양, 그리고 기타 자연 자원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강조하고, 유기농의 적용, 퇴비 사용, 녹비 작물 재배 등을 통해 토양의 비옥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총체적인 개념으로, 최고의 포도밭들은 점차 이런 지속가능한 접근 방법을 적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샤토 팔머는 원래는 Chateau d'Issan 포도밭의 일부였으나 1748년 Foix-Candale 가족의 상속으로 인해 50헥타르의 땅이 분할되어 가스크(Gascq) 가족의 소유가 되었다. 와인은 'Château de Gascq' 이름으로 판매되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으며 루이 15세 치하의 베르사유 궁정에도 공급되었다.

1814년, 가스크家의 마지막 상속자였던 마담 마리 부메 드 페리에르(Madame Marie Bumet de Ferrière)는 10만 프랑에 영국인 장성 출신 찰스 파머(Charles Palmer)에게 소유권을 넘겼다. 군에서 은퇴한 파머는 그다음 몇 년 동안 포도원에 투자하여 추가적인 포도밭과 양조설비를 갖추게 된다. 1831년에 이르러 163헥타르의 부지에 82 헥타르의 포도밭을 확보하게 되었고, 샤토 마고와 샤토 베이슈빌과 같은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샤토 팔머는 1840년대 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어 투자대비 큰 손실을 보고 1843년 마담 프랑수아즈-마리 베르제라크(Madame Françoise-Marie Bergerac)에게 소유권을 넘기게 되는데, 이런 변동은 10여 년 뒤 1855년 그랑크뤼 등급 지정 시 큰 불이익으로 작용하게 되어 3등급이란 낮은 등급 처분을 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보르도에 백색 곰팡이 병인 오이디움이 창궐하기 시작한 1844년부터 10년간 프랑스 농업 모기지 회사에 의해 관리되다가 1853년 은행가였던 페레르 형제에게 팔렸다. 형제들은 토지를 크게 개선했지만 오이듐의 어려운 시기에 직면하여 1858년까지 포도밭 전체 나무를 뽑고 다시 심어야 했다. 건축가 부르게는 1857-1860년에 샤토 건물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1870년까지 토지는 177 헥타르 이상으로 확장되었고, 109 헥타르에 포도나무가 심어졌다. 이후 소유권의 변동을 겪으며 포도밭 규모가 줄어 들었고, 토지의 최종 매각은 1938년에 이뤄졌다. 시첼, 지네스테, 미알헤, 말러-베세 가문의 연합이 새 주인이 되었고, 오늘날 사첼과 말러-베세 가문이 주요 주주로 남아 있다

(왼쪽부터)샤토 팔머의 CEO이자 와인메이커인 토마 뒤루(Thomas Duroux) 와 김욱성 박사 
(왼쪽부터)샤토 팔머의 CEO이자 와인메이커인 토마 뒤루(Thomas Duroux) 와 김욱성 박사 

이번 시음행사가 진행된 곳은 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구성되어 지난해 말 오픈한 도운 빌딩이었다. 나라셀라가 운영하는 복합 와인문화 공간인 도운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1층에는 개방형의 넓은 로비가 있는 카페가 있고, 지하 1층은 나라셀라에서 직영하는 ‘리저브’급 와인 샵으로 나라셀라에서 수입하는 다양한 주류들을 판매하고 있으며, 지하 2층은 VIP 고객들의 와인을 보관해 주는 ‘도운 프라이빗 셀러’ 공간이다.

2층은 교육공간으로, 최대 40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와인 교육은 물론, 각종 시음회와 세미나에 최적합한 공간으로 대관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한다. 3층은 실무 공간으로, 나라셀라가 운영하는 스마트 오더 플랫폼 ‘1KM와인’의 사무실로 쓰인다.

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
와인 복합문화공간 '도운'

4층과 5층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코리(KORII)가 운영되고 있는데, 코리아(KOREA)와 이노베이티브(Innovative)의 합성어로, 국내산 식재료를 이용한 창의적 모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탁 트인 오픈형 주방을 지나면 고급 레스토랑의 느낌이 나는 홀이 나온다. 6층은 프라이빗 와인&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대여공간으로, 쿠킹 스튜디오를 활용해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미식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12명 정도 들어간다. 가장 위층인 7층은 ‘나이트 캡’으로, 취침 전 마시는 술 한 잔을 의미하는 이곳은 아래층에서 다양한 행사를 즐기고 올라와 마지막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우아한 쉼터 공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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