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복숭아와 레몬이 섞인 향. 마시면 톡 쏘는 미네랄과 짭조름한 맛이 감돈다. 맛만으로는 이 와인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몇 년 전에 마신 북부 이탈리아의 생산자 이나마(Inama)의 소비뇽 블랑 와인이 떠올랐다. 향도, 바디감도 전혀 소비뇽 블랑의 것이 아니었었다. 혹시 이 와인도 어떤 생산자가 독특하게 만든 소비뇽 블랑일까? 높은 산미와 과일의 청량감, 무엇보다 혀를 톡 쏘는 질감이 소비뇽 블랑을 닮았다.

▲ 보데가 자라테(Bodega Zarate)의 파고 트라 다 비냐(Pago Tras da viña) <사진= 김지선>

그러나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이 알쏭달쏭한 화이트 와인의 정체는 스페인 해안가에서 자란 알바리뇨(Albariño) 품종 와인이었다. 스페인을 4번 다녀와서 알바리뇨를 실컷 마셔봤다는 지인도 이 와인을 마시고는 놀랐다. 현지에서 알바리뇨 와인 대부분은 그저그런 품질로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스페인의 포도, 알바리뇨. 알바리뇨는 리아스 바이사스, 그 안에서도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포도 껍질이 두꺼워 바닷가의 습기를 잘 견디는데, 그덕에 곰팡이가 잘 안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알코올과 산미, 과일의 풍미가 잘 보존된다. 리아스 바이사스의 포도밭 중 90%에 알바리뇨가 심어져 있을 만큼 현지에서 인기 좋은 품종이다. 레몬, 자몽, 귤, 레몬 껍질, 오렌지 껍질처럼 상큼하면서도 씁쓸한 감귤류 향이 두드러지고, 사과나 복숭아, 파파야 등의 핵과류 향도 난다. 해안가쪽에서 자라는 만큼 테루아의 영향을 받아 짭짤한 맛, 미네랄 느낌이 더해져 있다. 알바리뇨 대부분이 스페인에서 자라지만 이웃나라인 포르투갈에서도 꽤 많은 양이 자란다. 이곳에서는 약간 탄산이 있는 채로 만들어진다. 이외에 아주 극소량이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보통 와인은 포도의 풍미를 살린 청량한 스타일이지만, 오크 숙성을 거치고 나서 몇 년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추가로 시간을 보내면 스페인의 어떤 화이트 와인보다도 뛰어난 숙성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바디감이 가볍고 향긋해서 향신료가 강한 타이, 인도 요리와 잘 어울린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지선 j.kim@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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