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3년간 단절된 세월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는데 운남성 보이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차상들이 운남성의 보이차산을 갈 수 없었고, 3년간 운남성 보이차산에 가뭄과 냉해로 생산량이 줄어들었고, 쇄청모차 가격도 2019년 춘차(春茶) 가격대로 거의 유지되었다.

역사적으로 청나라 황실의 총애와 중국 내전의 참화, 문화혁명의 세례를 받은 만송(曼松) 보이차는 그 자체가 전설이었다. 만송 보이차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었던 진귀한 보이차였지만, 가짜 만송 보이차 소동으로 품격이 떨어졌다. 와인의 신주(神酒)가 프랑스 부르고뉴 로마네 콩티라면, 차(茶) 중에 청나라 황제가 마셨던 중국 운남성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만송 왕자산의 보이차가 로마네 콩티를 대적할 수 있다. 2022년 봄(春) 고수차의 쇄청모차가 1kg에 1,000만 원이 호가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중국의 4대 보이차는 맹랍차구(勐臘茶區)내 이무차산(易武茶山)의 만송(曼松), 맹해차구(勐海茶區)의 노반장(老班章), 임창차구(临沧茶區)의 빙도(氷島), 석귀(昔归) 보이차이며, 그중에 최고는 만송 왕자산 보이차이다. 만송 왕자산의 차산은 독특한 암석질 토양을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소엽종 차나무 덕분에 부드럽고 고유한 높은 난향과 섬세하고 은은한 단맛이 지속하므로 한번 시음하면 다른 보이차를 마실 수가 없다.

2022년 봄(春), 만송 마을의 일부 청년들이 만송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만계산(蔓桂山)의 고수차를 만송 고수차로 둔갑시켜 수십 톤씩 거래하다가 적발되어 만송 고수차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졌다. 만계산은 의방(倚邦)에 속한 한 마을로 의방에서 6km 떨어져 있다. 만계산 보이차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의방 보이차로 판매되고 있다. 만계산 마을은 37가구 185명이 살며, 주업은 보이차 재배이다.

사건 이후에 중국의 차상들은 가짜 만송 왕자산의 고수차 대신에 품질이 좋은 의방(倚邦) 고수차로 발길을 돌렸다. 만송 왕자산 마을에서도 양심적으로 만송 고수차를 거래했던 농부까지 불이익을 받았다. 똑같은 사건이 2021년 임창차구(临沧茶區)의 석귀(昔归) 차산에서 일어났다. 석귀 마을의 농부 중 물욕에 눈이 먼 일부가 외부의 찻잎을 몰래 들여와 석귀 고수 보이차로 둔갑시켰다가 적발되자 찻잎을 모두 불태웠다. 석귀 고수차의 이미지가 실추되면서 2022년 봄에 석귀로 찾아오는 차상들이 외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만송의 가짜 고수차 사건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만송 왕자산 마을에 6차례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운남성 보이차산 중에 가장 가난하게 사는 만송 왕자산 마을의 농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매년 만송 봄(春) 고수차의 연간 생산량은 30kg 정도에 불과하므로 매우 고가이지만, 팔 수 있는 많은 양의 고수차가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혜택이 없었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비양심적인 몇몇 만송 마을 사람들이 만송 봄(春) 고수차를 가짜로 둔갑시켜 경제적 이익을 챙겼지만, 구하기 힘든 만송 왕자산의 고수차는 추락했다.

만송 보이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17세기 청나라 때부터 황실에 진상했던 황가다원(皇家茶園)은 왕자산(王子山)이며, 왕자산의 찻잎이 부족할 때는 배음산(背阴山), 그리고 만랍 근처의 다원의 찻잎을 보충했다. 현재의 만송 고수차는 왕자산에서 채집한 찻잎으로 만든 것이 청나라 황제가 마셨던 고수차로 인정받고 있으며, 엄격히 말해 만송 배음산의 고수차는 아니다. 그 당시 왕자산의 만송 노채는 의방(倚邦)에 소속되어 관리받았으며, 회족(回族)과 향당족(香堂族) 100가구가 거주하면서 5t 정도를 황실의 공차로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56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면서 의방에 개인 차창이 없어지고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만송 노채의 왕자산 차산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보이차산의 농부들은 대대로 조상들의 차나무를 지키며 살아왔지만, 만송 마을의 농부들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수령 100년 이상의 고차수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바나나, 고무나무 등 다른 작물로 대체하면서 황폐해졌다.

2003년 판납문사자료선집(版納文史資料選輯: 운남 민족출판사)에 청나라 황제가 가장 즐겨 마셨던 보이차가 만송 노채의 왕자산 차산이라고 기술해 유명해졌다. 청나라 황제만이 즐길 수 있고 외국 사신에게 선물로 제공되는 프리미엄 보이차였다. 청나라 시대에 ‘만송 노채’는 해발 1,300m에 있었으며,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은 풍족한 삶을 영위했지만, 1984년 원인 모를 식수 고갈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정부의 도움으로 현재 마을로 이주를 해왔으며, ‘만송 노채’대신 ‘만송 왕자산’으로 불리게 되었고, 현재 32가구 165명 정도가 살고 있다.

2007년 칙도차업유한공사(則道茶業有限公司)가 만송 지역에 대규모 차산을 개발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때 심은 차나무의 나이가 25년 정도이므로 소수차이며, 개발 당시 100년 이상 된 고차수 200그루를 확보하여 번호표를 달았다. 현재 만송 마을 농부들은 왕자산에 수령 100년이 넘은 고차수 300그루를 공동으로 채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차나무 수령 100년 이상 된 1그루에서 20g 정도 찻잎을 채집한다. 고수차는 만송 마을의 농부들이 관리하는 왕자산 300그루에 30kg이 생산되므로 가구당 1kg 정도 채집이 가능하며, 칙도차업유한공사에서 200그루에 20kg, 연간 총 50kg 정도 생산된다. 그리고 소수차는 연간 400kg 정도 생산하고 있다. 만송 마을의 양심 있는 농부에게 직접 만송 왕자산 고수차를 직구(直購)하여 소장하고 있는 보이차 애호가라면 천운을 가졌다. 필자는 오랜 시간 동안 만났던 만송 왕자산의 농부가 1년에 팔 수 있는 춘(春) 고수차는 1kg이라면서 미안해하는 양심적인 농부를 아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많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만송 왕자산의 고수차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최근 만송 왕자산의 소수차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고 가격도 점차 올라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구할 수도 없고 고가인 만송 왕자산 고수차의 대용으로 소수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필자가 오랫동안 만났던 양심 있는 만송 왕자산의 농부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상적인 거래가 빨리 오길 기원해본다.

※ 주
고수차(고수차)는 차나무의 수령이 100년 이상 된 찻잎으로 만든 것이며, 소수차는 차나무 수령 100년 이하 된 찻잎으로 만든 것이다.


다정(茶丼) 고재윤
다정(茶丼) 고재윤 교수

고재윤박사는 현재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고황명예교수이다. 2010년 프랑스 보르도 쥐라드 드 생떼밀리옹 기사작위, 2012년 프랑스 부르고뉴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 기사작위, 2014년 포르투칼 형제애 기사작위를 수상하였고, 저서로는 와인 커뮤니케이션(2010), 워터 커뮤니케이션(2013), 티 커뮤니케이션(2015), 보이차 커뮤니케이션(2015), 내가사랑하는 와인(2014) 외 다수가 있으며, 논문 210여편을 발표하였다. 2001년 한국의 워터 소믈리에를 처음 도입하여 워터 소믈리에를 양성하여 '워터 소믈리에의 대부'고 부른다. 2000년부터 보이차에 빠져 운남성 보이차산을 구석구석 20회 이상 다니면서 보이차의 진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와인, 한국의 먹는 샘물, 한국 차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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