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인 베니스 WINE IN VENICE 개막식 장면
와인 인 베니스 WINE IN VENICE 개막식 장면

곤돌라,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가면, 카니발, 카사노바, 한국인 최초의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겨준 베니스 국제 영화제는 베니스에 몰입하게 하는 문화 홀릭이다. 혹시나하고 열거되지 않은 것들을 들쳐 보면 그 어디에도 와인은 없다. 적어도 작년까지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 말 성황리에 개최됐던 와인 인 베니스 (WINE IN VENICE)행사를 통해 와인도 베니스 홀릭에 걸려들면 흡입력의 위력이 배가됨을 입증했다.

와인 인 베니스는 와이너리를 평가하는 데 지속가능성, 혁신, 윤리를 잣대로 심사 및 검증하는 대회다. 그래서 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일반 와인 품평회는 와인자체의 품질과 완성도에 집중하지만 본 행사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실체를 들여다본다. 와인제조 전체 프로세스에 입각해 각 단계별로 친환경 실천여부와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 점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면 상승의 위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베니스로서는 이러한 테마의 주최지로 가장 적합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와인 인 베니스는 개막일이 베니스 행사 칼렌다에서 1순위에 올라 이목을 끌었다. 1월 27일 개막하는 카니발보다 일주일이나 빨랐고 8월 말 팡파레를 울리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보다 7개월이나 앞당겨졌다. 더욱이 굵직한 이탈리안 프리미엄 레드와인의 새 빈티지 발표회인 안테프리마를 9일이나 추월했다. 와인 생태계의 그린환경 파악이 일 순위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와인 인 베니스 행사장과 이웃 동네 사이를 흐르는 운하에 걸쳐있는 돌다리. 베니스에 지어진 다리 중 유일하게 난간이 없다
와인 인 베니스 행사장과 이웃 동네 사이를 흐르는 운하에 걸쳐있는 돌다리. 베니스에 지어진 다리 중 유일하게 난간이 없다

행사를 유치한 장소는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미세리코르디아(Scuola Grande Della Misericordia) 조각 및 회화 복원센터다. 1월 20일 입상한 와이너리 수상식으로 막이 오른 행사는 22일 폐막식까지 각종 와인 토크쇼, 시음회, 마스터 클래스가 일정을 빡빡히 채웠다. 본 복원센터는 원래 베니스 본섬 내 자선목적으로 세워진 일곱 군데의 자선단체의 하나로 1310년에 설립된 이후 베니스만큼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었다. 14세기 역병이 창궐할 때 병원으로 사용했다가 17세기초 에는 실크 섬유 제조 조합이 들어섰다가 지금의 복원센터가 인수하기 전에는 극장도 유치했었다. 되도록 고치고 개조하여 재활용하면 탄소 감축에도 기여하므로 본 행사 정신과 딱 맞아떨어지는 장소다. 건물 좌측 광장은 베니스란 섬 퍼즐을 연결하는 430개도 넘는 다리 중 유일하게 난간이 달려있지 않는 다리가 걸쳐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수상식 장면. 필자와 사르데냐주 우승자 주제페 세딜레수 와이너리. 와인 인 베니스 주최자들
수상식 장면. 필자와 사르데냐주 우승자 주제페 세딜레수 와이너리. 와인 인 베니스 주최자들

1월 20일 열린 수상식은 마치 베니스 영화제를 방불케 했다. 19명으로 구성된 심사 패널들이 시상을 맡았는데 수상자를 호명하면 우승자는 무대와 관객석 통로를 붉게 물들인 레드 카핏을 걸어 나왔다. 그런 이유로 수상식을 레드 카핏 세리머니란 예칭을 부여했다. 베네치아 영화제는 사자상 트로피를 수여하지만 와인 인 베니스 우승자는 티펫토(Tipetto) 잔이 전달된다. 티펫토 잔은 대롱 끝에 매단 액체 유리를 입김으로 조각한 형형색색의 베니스 전통 와인잔이다. 무라노 섬에서 1859년 부터 유리 공방을 꾸려 온 살비에티 베네치아 장인 손끝에서 나왔다.

와인과 베니스는 무슨 상관?

이쯤이면 베니스와 와인의 상관성에 의문을 갖는 독자가 있을 것으로 안다. 그러니 각 마을마다 고유 와인 한 개 정도는 보유하는 이탈리아인들이 베니스를 향한 시선은 의심이 가득하다. 집 벽 너머에 바다가 찰싹거리는 도시를 아무리 잘 봐줘도 와인공급지보다는 수요지가 더 어울린다. 하지만 베니스가 갯벌로 존재하던 로마시대에도 와인에 적합한 포도가 자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증거로 베니스에서는 광장을 이탈리아 공통어인 피아짜라 하지 않고 캄포(Campo)라 부른다. 캄포는 들판이란 뜻으로 포도밭이 있거나 있던 장소다. 1966년에 역대급 홍수가 발생했을 때 수위가 194미터나 상승해 도시의 4분의 3이 침수되자 캄포를 차지했던 밭과 다수의 토착품종들이 짠물에 휩쓸려 가버렸다.

먼저 베니스 본섬이 품고 있는 캄포 중 최초 등장시기가 8세기로 추정되는 포도밭을 가보자. 산마르코 대성당이 있는 광장에서 북동쪽으로 1km 지점에 산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수도원 내에 있다. 수도원 내부는 담벼락에 의해 두 개의 회랑으로 분리되는 데 개별 회랑 중앙에 포도밭이 들어앉아 있다. 원래는 피에트로 지아니란 도제(베니스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의 사유재산이었다가 1253년 아들이 물려받았다. 아들은 이를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기증했고 여기에 수도원 건물이 들어선다. 수도회는 그들의 성지가 포도밭에 초석을 둔 것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성 프란체스코회의 포도밭이란 뜻의 산 프란체스코 델라 비냐라 지었다. 지금의 수도회 건물은 1534년에 팔라딘 건축양식으로 증축한 것이다. 수도회는 관리와 양조를 외부 기관에 위탁하고 있는데 2018년에 산타 마르게리타 와이너리가 위임받았다.

산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San Francesco Della Vigna수도원 내부 포도밭
산프란체스코 델라 비냐 San Francesco Della Vigna수도원 내부 포도밭

품종은 말바시아와 글레라가 선택되었다. 산타 마르게리타 와이너리 산하 포도밭 및 품종 전담팀이 수도원 고문서를 고증한 결과 빛을 본 토착 화이트 품종들이다. 묘목은 코넬리아노 품종 연구소가 제공한 것으로 해수와 고습도와 고온이 결합한 끈적거리는 갯벌환경에 잘 견디는 특성만 분리해 낸 것이다. 이미 첫 수확을 냈으며 배에 실려 40km를 보트여행한 포도는 육지에 상륙한 뒤 양조장으로 이송됐다. 여기서 샤마방식으로 프로그램된 압력탱크 안에서 가볍고 미네랄이 톡 튀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탄생했다. 첫 생산량은 750ml 사이즈 1천 병 정도로 마지막 공정인 병 안정 단계에 이르렀다.

잔루카 비솔과 도로나 와인. 본 와인은 Venusa Dorona Veneto IGT 란 이름으로 판매하며 연생산량은 3천5 백 병 정도
잔루카 비솔과 도로나 와인. 본 와인은 Venusa Dorona Veneto IGT 란 이름으로 판매하며 연생산량은 3천5 백 병 정도

극한의 베니스 와인 어드벤처는 베네스 본섬 동북방향 10km 떨어진 토르첼로 섬의 갯벌이 무대다. 2002년 우연히 이 섬에 왔다가 1966년 대홍수 물갈퀴로부터 살아남은 포도밭을 목격한 잔루카 비솔에 의해 비롯된다. 그는 좀 더 심오한 문서 추적과 포도농부의 증언을 바탕으로 88종의 토착품종이 생존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전멸위기 직전에 구출된 도로나(Dorona)란 화이트 품종의 존재도 알아낸다.

이어 비솔은 도로나 프로젝트를 기획 착수했는데 다음을 골자로 한다. 토르첼로 남서부 마쪼르보 섬에 14세기부터 연명해 온 1.2헥타르 밭 인수와 여기에 갯벌을 좋아하는 도로나를 번식 시켰다. 프로젝트 시행 10년 만에 첫 수확을 낸 밭을 드론이 촬영한 공중사진을 보면 삼면 경계를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부르고뉴 크뤼를 둘러싼 클로와 흡사하다. 해수 범람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지책이나 어쩐지 파도가 약간만 거세도 물이 담 넘기는 식은 죽 먹기처럼 보인다. 밭 해발이 1.2미터로 발 밑에서 바다가 찰랑거린다. 이는 포도가 1미터 두께의 땅 속에서 뿌리를 뻗고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얘기다.

도로네는 황금 포도란 뜻으로 잔루카 비솔는 ’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은 생존력’을 품종의 장점으로 꼽는다. 이에 착안해 두꺼운 과피를 시멘트 탱크 안에서 장기간 우려내 짙고 광택 나는 주홍빛이 영롱한 앰버 와인을 만들었다. 씹히는 듯한 느낌과 매끈한 질감이 입안에서 구르는 듯하다. 복숭아 구운 사과의 달콤한 향기와 해조류의 감칠맛, 미네랄의 쌉쌀한 향기가 어우러져 육지 품종과 차별되는 색다른 감성을 표출한다.

와인 인 베니스만의 독특한 채점방식

후보 심사는 개막 한 달 전에 이루어진다. 각계의 전문가 19명으로 구성된 심사패널은 1백여 명의 후보자가 제출한 증거 자료와 웹사이트를 대조하면서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다. 지속가능성 부문은 환경인증서 취득, 친환경 소재나 저탄소 배출 소재 사용, 알코올 발효 중 발산되는 CO2 저감 방안등 12개 항목을 심사한다. 혁신 부문은 저공해 및 탄소저감에 기여하는 대처 방안이나 최신 기술 도입 여부를 살핀다. 여기에는 해충 방제에 천연 에센스나 식물성 제품, 오수처리, 재생 에너지 설치, 경량병과 친환경 포장재, 소비자 소통에 혁신적인 툴이나 매체의 채택 여부등 16개 항목이 해당된다.

와인 인 베니스를 반짝이게 하는 별은 윤리다. 윤리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생산자의 마인드를 짚어본다. 직원 복지정책, 지역 사회에 기여, 장애인이나 이민자 고용 의사, 로컬기업과 네트워크 형성, 지역 관광 홍보에 대한 참여도가 심사 도마에 오른다. 탈농현상으로 방관된 포도밭을 재건했거나 멸종 위기의 품종을 회생시켜 상업화하거나 전통 포도재배 농법 보존등도 평가 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개별 심사원의 프로필도 화려하다. 이탈리아 1호 마스터 오브 가브리엘레 고렐리,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 편집국장, 브뤼셀 와인 품평회 PR 담당자, 이탈리아 최고 소믈리에 대회 2회 연속 우승자 겸 보르도 네고시앙, 포브스지가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이탈리안 100대 마케팅 전문가에 선정된 저널리스트 등이다.

우승한 와이너리. 주세페 세딜레수, 베니카&베니카, 루나에, 플라티넷티 귀도
우승한 와이너리. 주세페 세딜레수, 베니카&베니카, 루나에, 플라티넷티 귀도

우승한 와이너리 명단(주별로 알파벳순)
아브르조주-칸티나 톨로(Cantina Tollo) 와이너리. 바실리카타주-비티스 인 불트레(Vitis In Vulture). 칼라브리아-스탓티(Statti). 캄파니아주-비테맛타(Vitematta). 에밀리아 로마냐주- 로스키 (Az.Agr.Loschi Enrico).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주-베니카 & 베니카 (Venica & Venica). 라치오주-오미나(Omina). 리구리아-루나에(Lunae). 롬바르디아-폰테무라(Fontemura). 마르케-폰테조파(Fontezoppa). 몰리제-클라우디오 치프레시(Claudio Ciprsessi). 피에몬테주-플라티넷티 귀도(Platinetti Guido). 풀리아-테누타 빌리오네(Tenuta Viglione). 사르데냐-주세페 세딜레수(Giuseppe Sedilesu). 시칠리아-비냐 니카(Vigna Nica). 토스카나-테누타 스티차노(Tenuta Sticciano). 트렌티노 알토아디제-켓트마이어 (Kettmeir). 움브리아-칸티나 비오라티(Cantina Violati). 발레다오스타-라 수르스(La Source). 베네토-베니싸(Venissa)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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