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원재 작가의 ‘물빛의 향연’

수천 년에 걸쳐 영욕의 시대를 지켜보며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는 역사의 관찰자인 한강.

자전거로 6000㎞를 달리며 한강대교의 교각 밑 시선으로 한강을 기록한 고원재의 사진전 ‘아리수 아리랑’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5월 23일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고원재는 서울의 마천루인 롯데타워를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63빌딩, 절두산 성지 등 서울의 랜드마크를 다리 교각 사이 사이에 배치하며 독특한 시선과 앵글로 담아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오브제인 나팔은 목소리가 되고 작가 자신이 직접 사진 속 모델이 되어 한강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늘 보아오던 서울 곳곳의 일상은 한강의 다리 아래에서 새로운 모습과 물의 선율로 떠오른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며 수많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다리 밑 음지의 공간에서는 물결의 섬세한 출렁거림 마저도 산란하는 빛의 표정으로 긴 세월을 묵묵히 전하는 듯하다.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우리의 역사와 함께하며 오늘도 세월의 흐름속에서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있다. 고원재의 아리수아리랑은 2020년 제7회를 맞이한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의 뷰 파인더 오브 KIPF의 전시 섹션 중 하나로 진행됐다.

▲ 고원재 작가의 ‘위태로운 균형’

태백산맥의 윗자락에서 발원한 한강은 산산, 골골과 평야를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흘러간 한강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주변의 인간 삶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파행(跛行)과 질곡(桎梏)의 한반도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도 한강은 아리랑 리듬을 타고 도도히 흐른다.

새벽에 눈을 뜨면 오늘의 선물이 나를 마중한다. 일과 자전거다. 나를 기다리는 일과 나를 달리게 하는 자전거는 일상의 기쁨이고 축복이다. 한때 손에서 사진을 놓은 적이 있지만,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다시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사진은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사진을 잊고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에 대한 욕구와 열정은 내 가슴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나에게 끈질긴 인연이었다. 인연은 내 의지와 이성으로 끊을 수 없었다.

축지법을 쓰듯 자전거로 한강의 남북을 넘나들며 다리 밑 교각 사이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무심코 스치고 지나가던 풍경들 가운데 문득 내 뇌리를 때리는 이미지가 있어 되돌아가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서서히 의미 있는 피사체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 ‘아리수 아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고원재 작가의 ‘황홀한 무게

한강의 다리들은 건설된 지 1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 통로지만 각각 나름의 사연을 담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강교들은 현재 겉으로는 서울의 발전상을 현란하게 보여주지만 그 다리들의 밑에서 바라본 교각과 강변 주위의 정경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교각과 강물 그리고 강 건너 도시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공간은 ‘한강’과 ‘서울’의 낯설지만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했다. 그 새로운 공간 속에 나 ‘고원재’를 앉혀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현대판 판도라의 상자인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하는 마천루 롯데월드 타워를 어두운 교각 사이에서 바라본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어둠과 슬픔이 빠질 수 없는 인간세계의 실상을 다리 아래의 어둠과 물빛과 낙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마우지 떼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교각 밑 그늘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듯 한바탕 자기들만의 잔치를 펼친다.

잠두봉 선착장은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점심을 즐기는 곳이다. 내가 선글라스를 낀 채 오래되어 빛바랜 트럼펫을 들고 교각의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는 모습이 이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다. 누군가 소리쳐 묻는다. “소리가 고장 났어요?” 세상이 고장 난 걸 그들도 아는 것 같다. 구경꾼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내 작업에만 몰두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짧은 하루에 아쉬움을 달래며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강의 교각들 곳곳을 탐색한다. 자전거는 나에게 건강과 사진을 선사했다. 하루에 한강 변을 짧게는 30㎞, 길게는 100㎞ 이상을 자전거로 달리다 보니 그 사이 총 6000㎞를 넘겼다. 이번 전시에는 카메라 못지않게 자전거가 크게 기여했다.

소믈리에타임즈 유성호 기자 ujlle0201@sommelier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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