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성의 400일간 세계와인기행] 지스카르 데스텡과 샤토 마고 Chateau Margaux

승인2020.12.05 10:18:29

오늘(2020.12.3) 프랑스의 前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텡(Valéry Giscard d'Estaing)의 부고가 신문에 났다.

▲ 진입구에서 바라본 실제 샤토 마고 건물, 뿌연안개로 흐리게 보인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으로 알려진 샤토 마고 (Chateau Margaux)는 미국인의 손으로 넘어갔을 터인 바, 프랑스가 처했던 70년대 경제난의 시기에 빛났던 그의 지혜와 용기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 시음주로 마셨던 샤또 마고 2004, 빠비용 루주 2004 빈티지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샤토 마고의 주인 Elie가 참수 당한 후 비로소 귀족에서 일반인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고, 1950년대에 Ginestet 가문이 새 주인이 되었으나 1973년 석유파동으로 닥친 보르도의 경제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매물로 내놓게 된다.

이때 미국 국적의 National Distillers & Chemical Corporation이 인수자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지스카르 데스텡은 샤토 마고는 프랑스의 ‘국보’ (National Treasure)기 때문에 외국인에 팔아서는 안된다고 거부권을 행사하여 거래가 무산된 것이다.

▲ 안개낀 샤토 마고의 진입로

우여곡절 끝에 곡물 무역과 금융업으로 갑부가 된 그리스 출신의 프랑스인 안드레 멘첼로풀로스 Andre Mentzelnopoulos 에게 1977년 마고의 경영권이 넘어가고 지금은 그의 딸 꼬린느 Mentzenopoulos Corinne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 와이너리의 뒷 마당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프랑스의 샤토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손꼽힌다. 19세기 초 건축가 루이 꽁브 Louis Combes에 의해 지어진 마고는 메독에서 가장 오래된 샤토 중 하나이며, 16세기 베네치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 Andrea Palladio의 디자인에서 파생된 유럽 스타일의 네오 팔라디언 Neo Palladian 양식의 희귀한 표본으로, 메독의 베르사이유라 불리기도 한다.

▲ 마고의 앞 마당

보르도를 방문하는 수많은 와인애호가들에게 샤토 마고는 언제나 위시 리스트의 톱에 오른다. 주말, 8월달, 그리고 수확기간을 피하면 구내를 잠시 걸어 볼 수는 있지만, 웅장하게 개조된 지하 의 레드 와인 셀러, 현대식 화이트와인 셀러, 그리고 와이너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오크통 제작소(Cooperage), 멋진 테이스팅 룸(Tasting Pavilion)은 오직 사전예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최소 3개월 전에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 샤또 마고의 안내 담당자가 와서 설명을 하는 모습

마고 포도밭의 토양은 지롱드 강변에 있어서 자갈이 많고, 흙은 푸석푸석 마른 편이라, 나무들은 수분을 찾아 땅속 7~8미터 아래로 뿌리를 내리기에 와인은 상당히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좋은 해에는 향의 복합미가 풍부해지고 우아하며 정교해진다. ‘벨벳 손장갑으로 싼 쇠주먹’으로 묘사될 만큼 파워풀 하면서도 섬세한 뉘앙스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경이다.

▲ 로비 공간에서 설명을 듣는 동료들

샤토의 지하 테이스팅 룸에서 마셨던 2004년 샤토 마고는 아직은 완전히 열리지 않은 느낌이었으나, 기분좋은 레드커런트, 산딸기, 연필의 흑심, 삼나무향이 특징적이었고 부싯돌 같은 미네랄 피니쉬를 남겼다. 약간 도드라진 산도는 발랄함과 긴장도를 이어가면서 전반적으로 구조감과 벨런스가 잘 갖추어진 와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최소 20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포텐셜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 마고의 양조장, 최신식 양조설비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보르도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와이너리 건물과 빼어난 향과 맛으로 옛날부터 유명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토마스 제퍼슨이 프랑스에서 미국대사로 머물 때에도 가장 즐겼던 와인이었고, 당시 프랑스에 파견되었던 미국 대사 토머스 제퍼슨은 1784년 빈티지를 시음한 후 “보르도 와인중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 대형 양조설비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딸이 “행복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샤토 마고 1848년 같은 거야”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부유한 형편으로 마르크스 가족에게 생계비를 대주며 와인도 사주었던 엥겔스는 샤토 마고의 진정한 맛을 알았고 특히 자신과 마르크스가 발표했던 공산당 선언의 해 였던 1848년 빈티지를 좋아했다.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역사는 계급 투쟁의 과정이며 프롤레타리아가 혁명 계급이라 설명하면서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금수저로 태어나 넉넉한 생활을 즐기며 고급 와인을 수시로 마셨던 그가 과연 노동자들의 고뇌와 궁핍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 샤또 마고의 와인 셀러

‘무기여 잘있거라’로 유명한 헤밍웨이도 샤토 마고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평생 마초 처럼 살기를 원했으나 점차 늙어가는 자신에 실망했고 옛날만큼 글도 써지지 않자 환갑을 갓 넘긴 ‘61년 엽총으로 자살하여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최근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헤밍웨이는 1940년대 KGB의 간첩으로 일했다고 전해진다. FBI가 이를 알아채고 계속해서 그를 미행하거나 모든 통화를 도청하기 시작하자 헤밍웨이는 감시와 도청 때문에 거의 정신분열증에 이르러 자살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지하 테이스팅룸에서 양조특성을 설명들으며 테이스팅하는 동료들

그의 손녀 마고 헤밍웨이는 할아버지와 같은 키의 183 센티 장신 미녀로 미국의 패션모델과 배우로 활약했고, Times, Vogue, Cosmopolitan 잡지 커버로도 자주 나왔다. 그녀는 장성한 뒤에 부모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되는데, 부모가 샤토 마고를 마신 날 밤에 자신을 임신했고 그래서 이름을 ‘마고’라 지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듣고 감동한 그녀는 미국식 이름으로 편하게 지은 ‘Margot’ 라는 이름을 불어식 ‘Margaux’로 개명하여 이름의 본 의미를 되살렸다. 3대에 이은 마고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42세에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할아버지에 이어 손녀마저도 정신적으로는 다소 불안정했나 보다

▲ 어두운 시음 공간에서 짙은 루비 빛을 발하는 샤또 마고 2004 빈티지.제대로 익으려면 아직도 10년 이상은 기다려야할 듯 싶다

샤토 마고 1787년산 한병은 1989년 무려 225천불(2억5천만원)이라는 최고가 기록을 남겼다. 당시 뉴욕의 와인 거상 William Sokolin이 토마스 제퍼슨의 collection중 하나로 갖고 있던 200년된 와인이었는데 뉴욕 포시즌스 호텔에서의 Margaux Dinner에 쓰기위해 가지고 나왔으나 술따르던 웨이터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맛도 못본 채 박살이 난 것이다.

원래 가치가 50만불(5억5천만원) 짜리였기에 난리가 났었지만 깨진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고액의 보험에 가입했던 덕에 보험금 225천불(2.5억)이 지급되었다. 맛도 못 본 와인이지만 병당 최고가 와인 중 하나로 기록된 것이다. 200년된 와인의 상태가 과연 온전했을까?

▲ 샤또 마고의 로비에 걸려있었던 그림,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더욱 웅장해 보인다

병이 깨져서 바닥에 흐르는 와인을 웨이터 중 한 사람이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에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보았는데, 완전한 식초 맛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차라리 깨진 것이 천만다행한 일이 아니었을까? 첫사랑의 연인은 나이 들어서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모습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빛나야 한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욱성 kimw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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