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가 이중섭과 8명의 포도동자 그리고 우리의 와인

▲ 김도영 소믈리에

때론 누군가의 흔적이 또 다른 누군가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런 흔적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떨림과 영감을 준다거나,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숫자 8과 관련한 우리 술의 흔적에 관한 이야깁니다.

여행을 통해 우린 누군가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주 서귀포시에는 화가 이중섭의 기억들로 하나의 거리가 완성됩니다. 서귀포에서 마주친 이중섭 미술관. 6.25동란기등 암울한 시기를 거치며, 일상적 삶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해 보여준 40살에 요절한 천재적 화가. 그의 작품에는 따뜻한 인간미와 익숙하고 단순해 보이는 그의 그림을 통해 동화적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중섭 거리를 따라 그의 작품을 그려놓은 벽화와 그의 그림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의 흔적이 도시하나를 풍요롭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흔적이 또 다른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과 함께 문득 그 의 작품 속의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들의 모습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습니다.

이름이 좀 긴데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자 상감 동화 포도 동자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와 받침> 입니다. 특히 시선이 가는 것은 외부에 새겨진 포도넝쿨과 그 사이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1908년 8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수집 보존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설립하고 일반에 공개하게 됩니다. 순종은 꾸준히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구입물품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인으로부터 구입한 고려시대의 포도무늬주자는 상감비법의 비취색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산화된 구리를 이용해 붉은 색을 나타내는 특징을 가진 작품입니다. 11세기말에서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화가 이중섭은 새겨진 포도와 그 사이에서 뛰노는 8명의 아이들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박물관에 들러 이것을 감상했다고 합니다. 화가 이중섭의 작품 속의 뛰노는 아이들이 모티브가 되었듯, 오늘 술과 관련해 포도에 시선이 모아집니다. 또한 대상이 술이나 물을 담았을 주전자 용도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포도재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중엽쯤입니다. 포도와 포도주를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이 보이는데, 포도는 다산과 풍요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거란, 여진, 몽고등의 침략으로 약탈과 살육으로 인해,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포도무늬의 상징적 의미는 이후에도 이어지게 됩니다. 한반도에 포도가 들어온 시기는 삼국시대쯤으로 추정되는데, 신라시대의 기와의 포도 문양에서도 확인됩니다. 또한, 고려시대의 여러 문헌에도 포도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서는 적어도 포도가 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재배 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한무제 때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에서 들여온 포도는, 이후 한반도에 유입되고 재배된 것은 보이는데, 다만 포도를 이용한 술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포도주와 관련해서 지봉유설(1613), 산림경제(1715), 증보산림경제(1766), 임원십육지(1827), 양주방(1837)에 포도주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문헌을 포함해 18개 문헌에 30가지 포도주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임원십육지의 경우 포도주를 만드는 몇 가지 방법을 설명합니다. 크게 소주로 만든 것과 일반적 양조방법 2가지 입니다. 포도즙에 누룩을 더하고 기타 술을 첨가하여 만드는 것과 포도를 오랫동안 저장하면 그냥 술이 되는 형태로 자연발효를 통한 술을 얻는 방법이며, 나머지 하나는 포도즙에 누룩을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면 자연히 술이 되는 방법입니다. 누룩이 효모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서양의 와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수운잡방’이라는 조리서에도 포도주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특이한 점은 포도와 누룩에 우리의 주식인 쌀을 더 하는 방식입니다.

찹쌀로 죽을 만들어 누룩과 함께 빚는 방법인데, 흔히 와인생산에 있어서 환경적 요소인 떼루아(환경, 기후, 토양, 일조량, 강우량등)가 서양과 달라 특히 강우량이 많아 당도가 낮아서 국내에서 와인생산이 어렵다는 설명을 합니다. 유럽의 양조용포도보다 당분이 적어 국내의 자생적 포도는 술을 빚기 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인데, <수운잡방>의 방식이라면 쌀을 죽의 형태로 더해 충분한 당분을 보완해, 알코올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술이라는 것이 세계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빚는 방식과 재료에 있어서는 지역의 특수한 환경을 함께 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흥미로운 이야기와 그 흔적들은 맛을 더하게 됩니다.

하나의 흔적은 상상 그리고 재발견과 재해석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8명의 포도밭의 아이들은 우리 와인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재이며, 이중섭화가가 그림으로 재탄생 시켜 놓았듯, 우리술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소믈리에타임즈 칼럼니스트 김도영 beerstorm@paran.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