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름이면 즐겨먹는 포도 MBA(Muscat Bailey A)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일본 니가타현(新潟県)의 가와카미 젠베에(川上善兵衛)에 의한 품종개량으로 탄생한 포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어온 샤인 머스캣(Shine Muscat) 또한 1988년 일본의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에서 아키츠-21(安芸津, Akitsu-21)과 하쿠난(白南, Hakunan; V. vinifera)을 하이브리드 교배하여 개발한 일본의 포도 품종이다.
일본은 1891년부터 포도의 품종개량을 통해 일본 기후 풍토에 맞는 포도를 육성하고자 끊임없이 힘써 왔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일본와인의 맛과 품질 향상에 오랫동안 축적된 포도의 교배·개량 기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1월, 일본와인의 개량 포도 품종 야마사치(山幸)는 국제 포도·와인 기구(OIV; International Organisation of Vine and Wine)의 품종 등록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은 2010년 고슈(甲州) 품종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MBA 품종을 그리고 야마사치(山幸) 포도를 세 번째로 등록하게 됨으로써,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본와인의 포도 품종은 공식적으로 세 개가 인증된 셈이다.

야마사치(山幸)의 탄생
야마사치는 홋카이도 이케다쵸(池田町)에서 탄생한 양조용 적포도 품종이다. 마을이 위치한 도카치(十勝)는 2월경에 영하 20도에 이르는 혹한의 땅으로 일반적인 포도가 월동을 하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한성과 수확량 확보를 목적으로 프렌치 하이브리드 세이벨 13053 품종을 클론 선발했고 1969년 양조용 적포도 품종 키요미(清見)가 탄생했다.
1978년 키요미(清見)에 일본 토착품종인 야마부도(山ブドウ)를 교배하여 품종 개발에 착수했고, 야마사치(山幸)는 그 중 선발된 품종이다. 내한성·내동성이 뛰어나 영하 31도까지 견딜 수 있어 동절기 고사 위험성이 없어 재배 농가에 도움이 되고, 야마부도의 특징을 이어받아 색상이 짙고 타닌이 풍부한데다 바디감이 좋아 와인을 양조하기에 적합하여 품질좋은 와인 생산이 가능하다.

야마사치(山幸)는 와인뿐 아니라 케이크와 젤리, 카레 등 다양한 식품에도 활용이 가능해 높은 범용성에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야마사치 포도의 효모를 사용하면 더욱 풍미 좋고 폭신한 빵을 제조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와 야마사치 와인과 야마사치 효모 빵의 페어링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품종 야마사치가 세계의 야마사치로
일본의 주류종합연구소(酒類総合研究所)는 2017년부터 이 품종을 OIV에 등록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2020년 11월 9일 OIV의 ‘국제 포도 품종과 동의어 리스트, 세계 포도 품종에 대한 기술’에 「Yamasachi」라는 이름으로 게재 및 품종 등록에 성공하였다.
OIV 등록의 가장 큰 장점은 EU 지역에서 일본와인을 판매할 경우 ‘일본산 레드와인’이 아닌 품종명 ‘야마사치(Yamasachi)’를 라벨에 표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와인 시장에서 야마사치 품종의 OIV 등록의 가치는 단순히 일본의 품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표면적 이슈에 그치지 않고 일본와인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점에 있다.
포도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독자 노선이었던 품종이 국제 등록 품종이 됨으로써, 재배하는 사람들이 국제 품종을 다루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좋은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다. 일본와인 생산자들 또한 일본와인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소비자 역시 세계시장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일본와인을 마시는 것에 자긍심을 갖게 된다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슈(甲州), MBA 두 개 품종의 국제화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개발하고 도전하며 일본와인에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모습이 일본와인에는 계속적인 미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대감이 상승된다. 이 다음으로 OIV에 등록될 네 번째 포도로는 또 어떠한 일본와인 품종이 등장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니스트 정영경 (現,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