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르 아르디의 수출 매니저 '패트릭 파이낸스(Patrick Finance)'
필립 르 아르디의 수출 매니저 '패트릭 파이낸스(Patrick Finance)'

프랑스 부르고뉴 남부,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의 남쪽 끝에 자리한 상트네(Santenay)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와인 마을이다. 이곳에 위치한 도멘 필립 르 아르디(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는 9세기부터 이어져 온 성채를 중심으로, 부르고뉴의 유산과 현대적인 양조 철학을 조화시켜온 생산자로 잘 알려져 있다.

와이너리 이름은 14세기 부르고뉴 공작이자 ‘피노 누아의 수호자’로 불리는 필립 르 아르디(Philippe le Hardi)에서 유래했다. 그는 1395년, 부르고뉴 지역에서 ‘가메(Gamay)’ 품종의 재배를 금지하고 ‘피노 누아(Pinot Noir)’를 중심으로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도록 명령한 인물이다. 이 결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부르고뉴의 정체성과 품종 구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약 100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한 도멘은 북쪽의 제브리-샹베르탱(Gevrey-Chambertin)부터 남쪽의 메르퀴레이(Mercurey)까지 폭넓은 테루아를 아우르며, 각 지역의 개성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마스터클래스를 위해 방한한 필립 르 아르디의 수출 매니저 패트릭 파이낸스(Patrick Finance)는 소믈리에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와이너리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오뜨 쿠튀르(Haute Couture) 와인 재배’라 불리는 섬세한 양조 접근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는 매년 다른 기후와 토양의 변화를 존중하며, 각 빈티지에 가장 어울리는 ‘맞춤형 와인’을 빚는 것이 도멘의 핵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Q1. 바쁘신 와중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믈리에타임즈 독자분들께 도멘 필립 르 아르디(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필립 르 아르디는 부르고뉴의 상트네(Santenay)에 위치해 있습니다.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남쪽, 메르소(Meursault)와 샤샤뉴-몽라쉐(Chassagne-Montrachet) 인근에 자리하고 있죠. 샤토 건물은 9세기에 처음 세워졌고, 12세기와 13세기에 추가된 첨탑형 지붕의 건물, 그리고 17세기에 증축된 건물까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와이너리는 상트네 포도밭 한가운데에 있으며, 재배부터 양조까지 모든 과정이 그 공간 안에서 이뤄집니다. 부르고뉴 내 100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입니다.

도멘은 외부에서 포도를 들여오지 않습니다. 오직 자체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듭니다. 특히 메르퀴레이(Mercurey) 지역의 16헥타르 포도밭은 이 지역 전체의 약 10%에 해당하며, 최근 샤르도네(Chardonnay)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효자 밭’으로 불릴 만큼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코트 드 본 지역에 약 30헥타르의 포도밭을 포함해 쌍소네(Savigny-lès-Beaune), 생토방(Saint-Aubin) 등 다양한 밭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의 제브리-샹베르탱(Gevrey-Chambertin)과 포마르(Pommard)에서도 훌륭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멘은 꼬뜨 드 뉘, 꼬뜨 드 본, 샬로네(Chalonnaise)까지 아우르며, 총 35개의 아펠라시옹(Appellation)과 17개 구획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필립 르 아르디의 포도밭 중 일부 전경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필립 르 아르디의 포도밭 중 일부 전경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Q2. 이 와이너리를 이해하려면 ‘필립 르 아르디(Philippe le Hardi)’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도멘이 그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와, 부르고뉴 역사 속에서 필립 공이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이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필립 르 아르디는 부르고뉴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작 중 한 명으로, 현재의 도멘이 위치한 영지를 실제로 소유했던 인물입니다. 와이너리 이름 또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죠.

그는 1395년, 부르고뉴의 포도 품종에 관한 중대한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널리 재배되던 가메(Gamay)를 금지하고, 오직 피노 누아(Pinot Noir)만 재배하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오늘날 부르고뉴가 ‘피노 누아의 고향’으로 불리는 배경이 바로 그 결정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치적·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이 컸던 그는 한때 벨기에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와이너리는 2019년까지 ‘샤토 상트네(Château de Santenay)’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역사적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도멘 필립 르 아르디(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Q3. 현재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필립 르 아르디 와인에는 어떤 제품들이 있나요?

(왼쪽부터) 부즈롱 ‘레 루에르’ (Bouzeron ‘Les Louères’) 2022, 생토방 ‘엉 베보’ (Saint-Aubin ‘En Vesveau’) 2022, 메르퀴레 ‘레 부아 드 랄리에’ 블랑 (Mercurey ‘Les Bois de Lalier’ Blanc) 2020
(왼쪽부터) 부즈롱 ‘레 루에르’ (Bouzeron ‘Les Louères’) 2022, 생토방 ‘엉 베보’ (Saint-Aubin ‘En Vesveau’) 2022, 메르퀴레 ‘레 부아 드 랄리에’ 블랑 (Mercurey ‘Les Bois de Lalier’ Blanc) 2020

다음은 저희가 타이거인터내셔날을 통 통해 소개하고 있는 주요 와인들입니다.

부즈롱 ‘레 루에르’ (Bouzeron ‘Les Louères’) 2022

Aligote 100%

알리고테 품종으로 만든 이 와인은 과거에는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이 많았지만, 최근 기후 변화 덕분에 풍성함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부즈롱은 ‘알리고테의 롤스로이스’로 불릴 만큼 그 품질이 높게 평가되며, 이 제품 역시 오가닉 인증을 받은 포도를 사용했고 오크 숙성의 균형감도 우수합니다. 복숭아, 살구, 파인애플, 오렌지필, 플로럴 노트와 허브, 마카다미아, 빵 반죽 아로마가 조화를 이루며, 적당한 유질감과 크리스피한 산도가 돋보입니다.

생토방 ‘엉 베보’ (Saint-Aubin ‘En Vesveau’) 2022

Chardonnay 100%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의 미래로 주목받는 지역 중 하나인 생토방에서 나온 이 와인은 메르소(Meursault)와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볼륨감이 있고 라운드한 느낌이 있으며, 옛날 메르소 스타일의 프루티함과 산뜻함을 함께 지녔습니다. 아카시아, 배, 복숭아, 버터, 토스트 등의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느껴지며 밀도가 촘촘하고 크리스피한 산미가 와인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메르퀴레 ‘레 부아 드 랄리에’ 블랑 (Mercurey ‘Les Bois de Lalier’ Blanc) 2020

Chardonnay 100%

이 와인은 ‘우거진 숲(The Woods of Lalier)’이라는 뜻의 네이밍처럼 풍성한 과실미와 미네랄리티를 특징으로 합니다. 따뜻했던 겨울 덕분에 개화가 빨랐던 이 해에 잘 익은 과실감이 돋보였고, 백악질 토양이 주는 짭조름한 미네랄 느낌이 여운을 남깁니다. 레몬 제스트, 백도, 아카시아 향이 뒤따르고 헤이즐넛과 바닐라의 여운이 포인트입니다. 선선한 고도(약 200-300 m)의 밭에서 재배되어 오크 사용도 과하지 않아 ‘크리스피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화이트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이 와인은 프랑스의 여러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서빙된 바 있으며, 세계적으로 화이트 와인 수요가 올라가는 시점에 좋은 선택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메르퀴레 ‘레 부아 드 랄리에’ 루즈 (Mercurey ‘Les Bois de Lalier’ Rouge) 2020

Pinot Noir 100%

저희의 레드 와인 라인업 중 하나로, 메르퀴레 내에서도 우아한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쪽을 바라보는 ‘르 슈누(Le Cheneaux)’ 밭과 위치가 가깝지만, 스타일적으로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감초, 블랙체리, 크랜베리, 진저브레드, 스위트 스파이시 아로마, 야생베리와 풀향, 약하게 오크 터치가 뒤따르며 미디엄 바디감과 신선한 산도,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입니다.

제브리-샹베르탱 (Gevrey-Chambertin) 2019

Pinot Noir 100%

여러 작은 포도밭들이 모여 하나의 아펠라시옹을 구성하는 이 지역에서 나온 와인입니다. 2019 빈티지는 클래식 부르고뉴 스타일로 평가받으며 ‘너무 리치하지 않고, 너무 파워풀하지 않으며, 적정한 수준의 힘과 균형’을 갖춘 빈티지였습니다. 블랙체리, 사워체리, 트러플, 모카, 흙내음과 짠 느낌의 흙 기운이 잘 표현된 와인입니다.

샹볼-뮈지니 (Chambolle-Musigny) 2021

Pinot Noir 100%

우아하고 섬세하며 동시에 존재감이 있는 스타일이 특징입니다. 2021년 코트 드 뉘(Côte de Nuits)에서 일부 평이 좋았던 해 중 하나로, 이 와인은 부드럽고 실키한 질감, 여운이 긴 과실 향, 붉은 꽃잎향(라즈베리, 딸기, 바이올렛, 장미)과 화려한 레드 과실감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Q4. 도멘은 북쪽 제브-샹베르탱(Gevrey-Chambertin)부터 남쪽 메르퀴레이(Mercurey)까지 약 98헥타르의 포도밭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테루아를 아우르는 구조가 도멘의 와인 스타일에 어떤 폭과 균형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시나요?

메르퀴레이 지역에서는 부드럽고 마시기 편한 와인을 만들고자 합니다. 타닌과 질감을 부드럽게 다듬고, 포도의 신선한 과실미를 살리기 위해 홀 번치(whole bunch) 양조를 활용합니다.

반면 제브리-샹베르탱은 보다 구조감 있고 볼륨감이 풍부한 와인을 보여줍니다.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더라도 이 지역의 포도는 장기 숙성에 적합할 만큼 탄탄한 스트럭처를 형성합니다.

즉, 북쪽 제브리-샹베르탱은 힘 있고 견고한 스타일, 남쪽 메르퀴레이는 부드럽고 우아한 스타일을 대표하며, 중간의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이 이 두 스타일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와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매년 기후와 포도의 상태에 따라 침용 기간이나 오크 숙성 비율을 달리하며, 자연이 주는 조건에 맞춰 최선의 결정을 내립니다. 해마다 다른 테루아의 이야기를 와인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Q6. 바로 다음 질문과도 이어질 것 같아요. 도멘에 대해 ‘오뜨 쿠튀르(Haute Couture) 와인 재배’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패션의 맞춤복처럼 와인을 빚는다는 이 철학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우리는 각 밭의 특성을 세밀하게 이해하고, 그 해의 기후와 토양 조건에 맞게 와인을 만듭니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반영해 양조 방식을 조정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오뜨 쿠튀르 와인’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랄리에(Lallier) 밭은 백악질 석회암 토양 덕분에 미네랄감과 산미, 우아함이 조화된 와인이 나오지만, 바로 옆의 쉐노(Cheneaux) 밭은 같은 메르퀴레이 지역임에도 훨씬 강건하고 익은 과실 풍미가 특징인 와인을 만듭니다.

불과 몇 미터 차이지만 토양의 성질이 달라 완전히 다른 개성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테루아마다 개성이 다르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부르고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이거인터내셔날의 이공화 소믈리에와 필립 르 아르디의 수출 매니저 패트릭 파이낸스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타이거인터내셔날의 이공화 소믈리에와 필립 르 아르디의 수출 매니저 패트릭 파이낸스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Q7. 이번 마스터클래스에서 소개될 와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조합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화이트 와인 중에서는 생토방(Saint-Aubin)을 가장 좋아합니다. 2022 빈티지로, 풍성하면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오크 숙성이 잘 녹아 있어 질감이 부드럽고 향이 우아하게 피어오르죠. 크림 소스를 곁들인 가금류 요리와 특히 잘 어울립니다. 오크의 미묘한 뉘앙스가 부드러운 질감과 조화를 이루며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줍니다.

레드 와인으로는 샹볼-뮈지니(Chambolle-Musigny)를 꼽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로, 부드러운 질감과 세련된 과실 향, 조화로운 밸런스가 돋보입니다. 2021 빈티지는 신선함과 숙성미가 균형을 이루며, 전형적인 부르고뉴의 우아함을 잘 보여줍니다. 송아지 요리(Veal)와 함께 즐기면 와인의 섬세한 구조감이 한층 더 빛납니다.

Q8. 필립 르 아르디가 생각하는 ‘좋은 와인’이란 어떤 와인인가요? 와인을 통해 한국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좋은 와인이란, 첫 잔을 마신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잔이 생각나는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좋은 와인이란, 첫 잔을 마신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잔이 생각나는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Domaine du Château Philippe le Hardi

좋은 와인이란, 첫 잔을 마신 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잔이 생각나는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잔을 마시며 느끼는 기쁨이 다음 잔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그 즐거움이 바로 와인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국가나 문화에 따라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한 잔의 와인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모두에게 통하는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와인을 만들며 무엇보다 자연을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건강한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유기농 재배로 전환을 시작했고, 현재는 모든 포도밭이 100% 오가닉 인증을 받았습니다.

좋은 와인은 오랜 시간 숙성해야만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열어도 맛있고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마셔도, 내일 다시 마셔도 미소가 지어지는 와인.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와인’의 모습입니다.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