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 개의 와인밴드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사교를 하기 위해 가입한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와인문화의 민낯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공짜는 아니고, 엿보는 대신 가끔 허접한 글로 관람료를 내기는 합니다.

대부분 자잘한 와인정보나, 시음모임 후기들입니다. 동호회 모임은 대부분 고가의 와인들과, 레스토랑에서의 성찬 모습들입니다.

오래전 일입니다만, 처음 귀국해서 참석한 와인모임에서의 놀란 마음이 아직 그대로인데,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Petrus를 연도별로 수직시음을 하더군요, 나쁘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사실 유럽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광경이고, 흔한 것은 아닙니다. 와인시음은 대규모 와인페어나, 와인샾이나, 와이너리 시음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식당이나, 집에서도 식사와 와인을 곁들여 마시기는 하지요.

아직까지도 와인은 기호식품이나, 식사의 보조 역할로의 역할이 중시되는 유럽의 와인 문화와는 다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와인을 먹기 위해서 음식을 곁들이고, 그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와인을 마신다고나 할까요.

문화의 차이이거나, 와인문화의 과도기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진정한 와인애호가 란 어떤 사람들 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관광을 오면, 대부분 이름난 유명 관광지에서 우선 사진을 찍고, 다음 관광지로 떠납니다. 패키지 관광의 장점은 유럽 몇 개국을 비교적 경제적인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데 있습니다.

여행은 문화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여행을 할 수 없으니, 직접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문화의 정수는 외면에 있지 않고, 내면에 그 얼개를 숨기고 있습니다. 시간과 탐험이 필요합니다.  패키지 관광은 말 그대로 주-마-간-산, 이지요.

우리의 와인 동호회 모임이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자기만족을 얻는 패키지여행상품은 아닌지 연상되는 까닭입니다.

지리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한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 수단으로서 학문은 너무 딱딱하고 엄격하다. 세상에는 유연한 수단도 아주 많다. 그런 것들을 이해하려면 그 수단이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보다 먼저 그러한 수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Jean Giono (생명의 물 L' Eau Vive 중에서)

진정한 와인애호가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와인이건, 미술이건, 자동차건 그것들은 애호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요. 그 대상에 대한 품질의 차이를 판별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은 필요합니다. 진품과 모조품을 판별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일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품와인을 자주 마시고, 엄청난 와인을 섭렵했지만 진정한 애호가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며,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대개 자신의 선호도가 기준이 됩니다.

"~사토 라투르를 좋아하는데, 이 와인은 그것을 연상시키는군, 그러니 이건 좋은 와인이야~" 하는 식입니다.

일부 애호가들은 지나치게 강조되고 oversized, 진하고 rich, 편향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애호가는 "~이건 정말 뛰어난 와인이군요, 도저히 안 마실 수가 없겠군요~" 라고 할 것입니다.

진정한 애호가는 첫 잔을 마실 때 보다 마지막 잔을 건배할 때 더 즐거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과, 진정으로 좋은 와인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생각과 달리 그리 어렵지 않으며, 맛의 품질을 판단하는 이상적인 요소는 없어도, 그 기준은 존재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와인의 품질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복합성( Complexity )입니다.  마실 때마다 향과 맛에서 다른 특성과 매력을 주는 와인이 복합성이 좋은 와인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합성을 선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졌지요.

심지어 사람과 신경학적 구조가 비슷한 실험실의 쥐조차도 단순한 자극보다는 복합적인 자극을 선호합니다. 음악도 단순한 멜로디에서 복합적인 멜로디로 진화하지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불확실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이것을 혼란이나, Entropy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하더군요.

사물이 뒤섞일수록 더 많은 정보가 전달될 수 있습니다.

명품와인이 진정으로 만족감을 일으키려면, 일정한 패턴과 함께 불확실성(복합성)이 존재해야 하며, 우리를 계속 놀라게(예측불가성) 해야 합니다. 위대한 와인(작품)들은, 압도적으로 강렬한 느낌보다는 한계가 무한할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합니다.

데이트를 할 때도 몇 시간만 이야기해 보면, 딱 견적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몇 년을 만나도 이 사람의 한계는 어디일까? 하는 사람이 있지요?

진정한 애호가들은 여기에서 정보들을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진정한 애호가는 와인의 본질을 꿰뚫는 지성과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와인에 대한 찬사와 표현되는 언어는 껍데기 일수 있으며, 왜곡된 허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맛있네”라는 말을 내뱉으면, 대상을 느끼기 전에 "맛있다"라는 단어를 통해 그것이 맛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전문가들의 와인시음기에 영향을 받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애호가는 독창적인 개성을 가지고 신중하고 진중하게 와인을 표현합니다. 내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도 전에, ‘슬프다’라는 단어로 그 기분을 정의하면 그 순간 슬픔에 빠지게 되죠. 수많은 복잡다단한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펼쳐보면 단지 슬프다는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말이죠.

그것을 치밀하게 들여다보기 전에 우리는 늘 표면으로 상황에 정확하다고 여기는 언어로 그 기분을 정의해버리면서 단순화해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적게 느낀다.(We think too much and feel too little.)”

무성영화의 거인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이 언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와인애호가는 위대한 와인의 영역이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일부 포도밭에 한정되어 있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다른 와인들이 인정받으려면 명성을 얻은 와인들을 모방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좋은 와인과 좋아하는 와인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물했던 와인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일 일 것입니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 본관 정문을 열면, 칼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 11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여러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와인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와인을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권기훈 소믈리에 , 충분하게, 너무 급하지 않게,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아름다운 음으로 채우며 살아가라
  권기훈 소믈리에 , 충분하게, 너무 급하지 않게,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아름다운 음으로 채우며 살아가라

와인 별것 있나요?

항상 최고의 와인은 지금 내잔에 담겨 있는 와인이고 더 좋은 와인은 다음 잔에 채워질 와인 이란 진리를 믿습니다.


권기훈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의대를 다녔고, 와인의 매력에 빠져 오스트리아 국가공인 Dip.Sommelier자격을 취득하였다. 이후 영국 WSET, 프랑스 보르도 CAFA등 에서 공부하고 귀국. 마산대학교 교수, 국가인재원객원교수, 국제음료학회이사를 지냈으며, 청와대, 국립외교원, 기업, 방송 등에서 와인강좌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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