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는 와인 업계 역사의 중요한 족적을 남긴 수많은 전설들이 별이 되었다. 소믈리에타임즈는 그들의 일생 동안 와인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해왔던 노고를 기린다.


이탈리아 바롤로 와인 업계의 거장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

바롤로 와인 업계의 전설,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 (사진=Sandrone Luciano Barolo)
바롤로 와인 업계의 전설,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 (사진=Sandrone Luciano Barolo)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탈리아 바롤로에서 와인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헌신했던 빈트너 ‘루치아노 산드로네(Luciano Sandrone)’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지난 1월 5일,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깐누비(Cannubi)에 위치한 2.5 에이커의 작은 파르셀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한 산드로네는 바롤로에서 세라룽가 달바 그리고 이웃한 로에로에 이르는 67 에이커로 발전시켰고 현재 3대의 걸쳐 가업을 감독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목수 가정에서 태어나 와인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산드로네는 10대 때부터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는 1978년 아내 마리우치아(Mariuccia)와 함께 와인 양조에 헌신하기로 결심하며 루치아노 산드로네 와이너리를 탄생시켰으며, 1981년 Vinitaly에서 만난 바이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그가 첫 생산한 바롤로 와인 1978 빈티지 1,500병을 모두 팔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과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깐누비 보스키스(Cannubi Bosquis) 1990 빈티지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에게 100점을 받았는데, 이는 바롤로 중 첫 사례였다.


나파밸리 와이너리 루이 M. 마티니의 前 와인메이커 ‘마이클 마티니(Michael Martini)’

나파밸리의 역사적인 와이너리 루이 M. 마티니에서 40년간 와인메이커로 일한 '마이클 마티니(Michael Martini) (사진=Louis M.Martini)
나파밸리의 역사적인 와이너리 루이 M. 마티니에서 40년간 와인메이커로 일한 '마이클 마티니(Michael Martini) (사진=Louis M.Martini)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파밸리의 역사적인 와이너리 중 한 곳인 루이 M. 마티니(Louis M. Martini)에서 와인메이커로 40년을 일한 마이클 마티니(Michael Martini)가 폐암 투병 끝에 지난 1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1899년 마이클의 할아버지 루이 M. 마티니(Louis M. Martini)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10대의 젊은 나이에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버지와 함께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루이에게 와인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아버지는 그를 이탈리아로 돌려보내 와인 양조학을 배우게 했고, 1911년 루이는 미국으로 돌아와 플레젠튼에 위치한 포도원을 임대하여 첫 번째 마티니 와인을 생산했다. 그리고 1933년 미국의 금주법이 철폐되자 루이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같은 드라이 와인이 산업의 미래라고 믿으며 나파밸리 세인트 헬레나 지역에 와이너리를 짓는 모험을 선택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마이클 마티니는 루이 M. 마티니의 아들인 루이 P. 마티니(Louis P. Martini)의 아들로, UC Davis에서 발효 과학 학위를 취득한 뒤 1977년부터 아버지에게 와이너리를 물려받았다. 와인메이커 활동 기간 동안 그는 과일과 미묘함을 강조하는 우아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파밸리 와인 업계 전설 '도날드 헤스(Donald Hess)'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 도널드 헤스(Donald Hess) (사진=The Hess Collection)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 도널드 헤스(Donald Hess) (사진=The Hess Collection)

나파밸리의 상징적인 생산자인 도널드 헤스(Donald Hess)가 지난 1월 30일,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헤스는 아버지로부터 베른 지역과 인접한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그는 바이에른에서 견습생으로 양조를 배웠으며, 무알콜 맥주를 생산하는 성공적인 새로운 방법을 개척했다. 그 뒤 양조장을 매각한 그는 성공적인 생수 회사 ‘발서(Valser)’를 설립했고 1978년 나파밸리의 현재 마운틴 비더(Mt. Veeder) AVA에 위치한 700에이커의 포도원을 구입하며 본격적으로 와인 산업에 뛰어들었다.

원래 포도만 팔려고 했던 헤스는 1983년부터 와인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3년 후 그는 1930년대에 원래 크리스천 브라더스(Christian Brothers) 와이너리를 위해 지어졌던 건물을 복원하여 ‘헤스 컬렉션 와이너리(Hess Collection Winery)’를 열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는 마운트 비더 AVA(미국포도재배지역)가 지정되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또한, 아르헨티나에 위치한 보데가 꼴로메(Bodega Colomé)를 인수하면서 당시 덜 알려진 살타(Salta)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2002년에는 헤스 컬렉션 회장직에서 물러나 의붓딸과 그의 남편에게 와인 회사를 물려준 뒤 2000년대 중반까지 꼴로메에서 1년에 최대 11개월을 보냈다.


르네뒤뱅 와인 아로마키트 제작자, ‘장 르누아르(Jean Lenoir)’

르네뒤뱅 와인 아로마키트 제작자 ‘장 르누아르(Jean Lenoir)’ (사진=Le Nez du Vin)
르네뒤뱅 와인 아로마키트 제작자 ‘장 르누아르(Jean Lenoir)’ (사진=Le Nez du Vin)

와인 아로마 키트 ‘르네뒤뱅(Le Nez du Vin)’을 만든 프랑스 와인 전문가 장 르누아르(Jean Lenoir)가 지난 2월 23일,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르네뒤뱅은 와인의 아로마를 공부하는데 널리 쓰이는 키트로 전 세계의 수천 명의 와인애호가, 소믈리에, 무역전문가들이 지난 40년 동안 대표적인 교육 도구 중 하나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메이커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샬롱쉬르손에 위치한 Maison de la Culture에서 경력을 쌓았다. 와인에 대한 열정을 계속해서 키워나가던 르누아르는 유명 소믈리에 조르쥬 페트튀제(Georges Pertuiset)와 협력하여 프랑스와 국제 와인을 전시하며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향과 맛의 뉘앙스에 대해 교육했다.

그리고 1979년, 그는 디종 대학에서 와인양조학 직업학위를 받았으며, 와인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120가지의 아로마가 담긴 케이스를 사용하여 프랑스 전역에서 입문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위스 예술가 다니엘 스페리(Daniel Spoerri)가 해당 케이스를 책으로 바꾸도록 제안하며 르네뒤뱅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또한, 우리에게도 친숙한 록시땅(L’Occitane)의 창업자 올리비에 보송(Olivier Baussan)이 아로마 키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초기 단계를 도와주었으며, 르네뒤뱅은 1981년 정식 출시되어 와인 전문가와 초보자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다.


나파밸리 와인 업계 전설, ‘토니 페주(Tony Peju)’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 토니 페주(Tony Peju) (사진=Peju Winery)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 토니 페주(Tony Peju) (사진=Peju Winery)

나파밸리 와인 업계의 전설이자 페주 와이너리(Peju Winery) 설립자 ‘토니 페주(Tony Peju)’가 지난 6월 10일 85세 나이로 사망했다.

1937년에 태어난 토니는 195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며, 부인 헤르타 페주(Herta Peju)과 함께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성공적인 꽃집과 농원을 운영한 후 포도재배로 전향했다.

그는 1981년, 페주 브랜드를 위한 로고를 디자인했으며, 건축가 캘빈 스트롭(Calvin Straub)과 협력하여 와이너리에 건설할 높은 타워의 시안을 완성했다. 1983년 페주 부부는 루더포드(Rutherford) 지역의 30에이커의 부지를 구입하고, 두 딸을 키우기 위해 나파 밸리와 이사를 했으며, 그들의 창고에서 와인을 제조하고 판매했다.

2003년, 토니 페주는 자신이 20년 전에 상상한 타워를 완성시켰으며, 당시 나파 카운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2023년에는 그가 계획한 원래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를 감독하고 있었으며, 최종 탑의 공개는 2024년에 예정되어 있다.

올해로 와이너리 설립 40년을 맞이한 페주는 지금까지 다섯 개의 포도밭을 구입했으며, 현재 나파 밸리 지역 전체에서 600에이커 이상의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보르도 와인 업계 전설, 샤토 린쉬-바쥬 前 오너 '장-미셸 카즈(Jean-Michel Cazes)'

보르도 와인 업계의 전설 '장-미셸 카즈' (사진=Château Lynch-Bages)
보르도 와인 업계의 전설 '장-미셸 카즈' (사진=Château Lynch-Bages)

샤토 린쉬-바쥬(Château Lynch-Bages)의 前 소유주이자 프랑스 와인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장-미셸 카즈(Jean-Michel Cazes)’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5년 뽀이약에서 태어난 카즈는 아버지가 시장을 지내던 곳에서 자랐으며, 와인 업계에 뛰어들기 전 공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1958년 파리국립광업학교에서 공학 학위를 취득한 후 텍사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그 후에는 잠시 동안 프랑스 공군에 복무한 뒤 IBM와 STAD(Empain-Schneider Group)에서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1973년 카즈는 아버지 안드레와 함께 작업하기 위해 뽀이약으로 돌아왔으며, 그곳이 바로 1930년 처음으로 임대한 이후 1938년부터 소유한 샤토 린쉬-바쥬(Château Lynch-Bages)이다. 그는 포도원과 장비를 보수했으며, 당시 “우리 소유지의 풍부한 테루아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팀을 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의 경영을 맡았다”라고 말했다.

1975년, 카즈는 와이너리의 현대화에 착수했는데, 15년에 걸쳐 와인의 섬세함과 규칙성을 다시 정립하는데 일조했다. 또한, 그는 1990년대부터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마케팅을 시작하여 린쉬-바쥬를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프랑스 와인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


친환경 와인의 선구자, ‘폴 돌런(Paul Dolan)’

친환경 와인 업계의 전설, 폴 돌런(Paul Dolan) (사진=Truett-Hurst Winery)
친환경 와인 업계의 전설, 폴 돌런(Paul Dolan) (사진=Truett-Hurst Winery)

캘리포니아의 와인 업계의 전설이자, 오가닉, 비오다이내믹, 재생농업을 위한 글로벌 홍보자였던 와인메이커 폴 돌런(Paul Dolan)이 72세의 나이로 6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1977년 펫져 빈야드(Fetzer Vineyards)에서 와인메이커 직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92년 회장이 승진하였으며, 소규모 가족 브랜드를 수백만 케이스의 판매량을 판자랑하는 업계의 거물로 성장시킨 것은 물론 와이너리를 유기농 포도 재배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캘리포니아의 다수 재배자들에게 유기농 농업을 소개하고 유기농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에 대한 시장을 구축하여 유기적인 접근이 대규모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펫져 빈야드를 주류공용기업인 브라운-포먼(Brown-Forman) 그룹의 소속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2011년에는 와인그룹 콘차이토로(Concha Y Toro)가 펫져 와이너리를 브라운-포먼으로부터 약 2억 3,800만 달러(한화 약 3,098억 5,220만 원)에 인수했다.

친환경 인증기관인 데메테르 USA(Demeter USA)의 이사로도 활동했던 그는 펫져를 떠난 후, 자신의 기업가적인 면을 발휘하여 파트너들과 지속가능성의 새로운 측면을 탐구하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친구 필 허스트(Phil Hurst)와 함께 트루엣-허스트(Truett-Hirst)를 공동 설립했으며, 해당 와이너리에서 유기농 및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고, 종이 와인병을 시장에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등 와인 업계의 친환경 움직임을 위해 계속해서 전진하였다.


소테른 와인 업계 전설 & 前 샤토 디켐의 수장 '알렉상드르 뤼르-살뤼스 백작(Comte Alexandre de Lur-Saluces)'

알렉상드르 뤼르-살뤼스 백작(Comte Alexandre de Lur-Saluces) (사진=Wikimedia)
알렉상드르 뤼르-살뤼스 백작(Comte Alexandre de Lur-Saluces) (사진=Wikimedia)

지난 7월 24일, 소테른 와인 업계의 전설이자 36년 동안 샤토 디켐(Château d’Yquem)을 경영했던 ‘알렉상드르 뤼르-살뤼스 백작(Comte Alexandre de Lur-Saluces)’이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뤼르-살뤼스 백작은 1968년, 베르나르 드 뤼르-살뤼스 후작(Marquis Bernard de Lur-Saluces)이 사망한 뒤 샤토 디켐을 물려받으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그는 2004년까지 샤토 디켐의 리더이자 인도자로써 많은 와인애호가들이 수집하기를 선망하는 와인으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였으며, 항상 예의 있고 소박한 모습으로 포도원을 방문한 손님들을 정중하게 맞이했다고 한다.

뤼르-살뤼스 백작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은 럭셔리 그룹 LVMH와의 대립이다. 1991년부터 LVMH의 그룹은 이켐을 인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로 인하여 뤼르-살뤼스 가문 내에서 지분을 놓고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

당시 LVMH 그룹이 드 뤼르-살뤼스 백작의 친척으로부터 이켐의 지분 55%를 1억 100만 달러에 사들였고, 알렉상드르 드 뤼르-살뤼스 백작은 이러한 LVMH의 인수 움직임을 막으려고 했으나, 결국 LVMH는 알렉상드르의 아들 베르트랑(Bertrand)의 지분 역시 사들이며 지분율을 64.2%까지 늘리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4월 19일, 드 뤼르-살뤼스 백작은 치열한 대립을 펼치던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와 보르도에서 만나며 합의를 도달했고, 오랜 갈등을 끝내게 되었다. 당시 아르노는 백작이 가치 있게 여기는 품질 기준과 전통을 존중할 것을 약속하며 백작을 이켐의 CEO로 임명했으며, 2004년 5월 70세에 은퇴하기 전까지 해당 직책에 남아있었다.


칼라브리아 와인 업계의 전설, ‘니코데모 리브란디(Nicodemo Librandi)’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와인 업계의 전설 니코데모 리브란디(Nicodemo Librandi) (사진=Librandi Winery)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와인 업계의 전설 니코데모 리브란디(Nicodemo Librandi) (사진=Librandi Winery)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와인 업계의 전설 니코데모 리브란디(Nicodemo Librandi)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래 수학을 가르치던 일을 했던 리브란디는 자신의 형제인 안토니오와 함께 가족 와이너리에 전념하기로 결심하며 본격적으로 와인 업계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리브란디 와이너리(Librandi Winery)는 1953년, 6헥타르 크기의 포도밭으로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와 90년대 동안 큰 확장을 거듭하여 현재는 232헥타르 포도밭 규모로 성장했다.

그의 경영 기간 동안 리브란디는 칼라브리아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와인 브랜드 중 한 곳이 되어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으며, 갈리오뽀(Gaglioppo), 그레코 비앙코(Greco Bianco) 등과 같은 포도 품종으로 만든 독특한 와인으로 지역의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리브란디는 자신의 지역의 잊혀진 토착 포도 품종 연구에 대한 헌신뿐만이 아닌 기업가적 성공을 이룬 인물로, 1993년부터 와이너리는 Ponta-Duca Sanfelice 포도밭에서 페코렐라(Pecorella), 만타토니코(Mantonico)와 같은 품종을 부활시키기 위해 실험적인 농경을 진행해왔다.


알자스 와인의 영원한 앰배서더, ‘베르 트림바크(Hubert Trimbach)’

메종 트림바크에서 50년 동안 세일즈 디렉터로 일한 알자스 와인 업계의 전설 '위베르 트림바크(Hubert Trimbach)' (사진=Maison Trimbach)
메종 트림바크에서 50년 동안 세일즈 디렉터로 일한 알자스 와인 업계의 전설 '위베르 트림바크(Hubert Trimbach)' (사진=Maison Trimbach)

지난 9월 14일, 알자스 와인 명가 '메종 트림바크(Maison Trimbach)'에서 반세기 동안 세일즈 디렉터로 활동하던 위베르 트림바크(Hubert Trimbach)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현재 메종 트림바크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역에서 잘 알려진 유명 와이너리다. 하지만 위베르가 그의 형, 베르나르(Bernard)와 함께 1963년에 합류했을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버지 피에르(Pierre)의 사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베르나르는 클래식하고 드라이한 알자스 스타일의 뛰어난 와인을 만들었고, 위베르는 이를 마케팅하는데 있어서 최적의 인물이었다. 친근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잘 알려진 위베르는 내성적인 형과 완벽하게 보완되며 이상적인 판매 전략을 구사했다.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 최고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관리자, 소믈리에 그리고 고객들에게 트림바크 와인을 소개해왔다.


피에몬테 와인 업계 전설, ‘미켈레 끼아를로(Michele Chiarlo)’

피에몬테 와인 업계의 전설 '미켈레 끼아를로' (사진=Michele Chiarlo)
피에몬테 와인 업계의 전설 '미켈레 끼아를로' (사진=Michele Chiarlo)

피에몬테 와인 업계의 전설적 인물인 미켈레 끼아를로(Michele Chiarlo)가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끼아를로는 피에몬테의 정수를 담은 와인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명성이 높았으며, 바롤로, 모스카토, 바르베라 다스티 와인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알바에서 피에트로 라띠(Pietro Ratti), 에치오 리벨라(Ezio Rivella), 프랑코 질리아니(Franco Ziliani) 등과 같은 유명 동료들과 함께 공부한 끼아를로는 1956년 병입 사업을 시작하고, 가족의 포도밭을 관리했다. 1972년에는 칼라만드라나에서 새로운 와이너리를 설립하였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랑게, 몬페라토, 가비 등의 지역에서 최고의 토지를 선별하며 가족의 재산을 늘려갔다. 그 결과, 그의 세심하고 인내심 많은 접근 방식 덕분에 피에몬테 지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토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4년에는 말로라틱 발효법을 사용한 바르베라 와인을 선보여, 안정적이고 산도가 낮으며 와인이 영(young)한 시기에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현재 그의 이름을 딴 와이너리는 DOCG 바롤로, DOCG 바르바레스코, DOCG 니짜 그리고 DOCG 가비 지역 등에서 총 110헥타르의 부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해당 포도밭에서는 훌륭한 품질의 네비올로, 바르베라, 코르테제, 뮈스카 등 이탈리아 토착 포도 품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국제와인기구(OIV) 사무총장 '파우 로카(Pau Roca)'

OIV의 사무총장 '파우 로카(Pau Roca)'가 지난 7일, 오랜 지병으로 인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OIV)
OIV의 사무총장 '파우 로카(Pau Roca)'가 지난 7일, 오랜 지병으로 인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OIV)

국제와인기구(OIV)의 사무총장 파우 로카(Pau Roca)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2년부터 파우 로카는 OIV의 스페인 대표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소비자법률 및 정보(DROCON)’ 전문가 그룹의 회장이었다. 또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지속가능한 개발과 기후 변화’ 전문가 그룹의 부회장을 맡았다.

그는 20년 이상 스페인와인연맹(FEV)을 이끌며 글로벌 와인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었으며, 와인 분야의 디지털화 발전 및 OIV 내에서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활용을 촉진하며 부서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 디종으로의 OIV 본부 이전과 OIV 100주년 관리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세상에서 OIV의 역할과 활동이 인정받도록 하고자 했던 파우 로카는 WTO, UNWTO, OECD, FAO, CIHEAM, Codex Alimentarius 등의 다른 글로벌 기관들과의 연계를 강화했으며, 영국, 우크라이나, 알바니아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환영하며 OIV의 회원국을 총 50개국으로 만들었다.


나파밸리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

나파밸리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 (사진=Grgich Hills Estate)
나파밸리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 (사진=Grgich Hills Estate)

지난 12월 13일, 크로아티아 시골 마을 소년에서 나파밸리 와인의 세계적 명성을 일군 거장이 된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가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르기치는 금주법 이후 처음으로 나파 밸리에서 와인 시설을 건설한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라는 사람에게 고용되었고, 그의 첫 번째 빈티지인 1969년에 몬다비에서 전설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들었다.

로버트 몬다비에서 일한 이후. 그는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우승한 화이트 와인인 샤토 몬텔레나의 샤도네이 와인은 그르기치가 몬텔레나에서 만든 두 번째 빈티지였다. 해당 순간은 미국 와인을 전설적인 높이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나파밸리 와인 업계뿐만 아니라 미국 와인 업계 전체에서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1977년에 창립한 그의 와인 브랜드 ‘그르기치 힐스(Grgich Hills)’를 탄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아메리칸드림을 완벽하게 실현시켰다. 그리고 1989년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크로아티아로 돌아와 드디어 그의 대학 학위를 받았으며, 크로아티아의 와이너리인 ‘그르기치 비나(Grgić Vina)’를 설립하며 토착 품종에 집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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