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내 오크통 시장은 감바(Gamba)와 가르벨로또(Garbellotto) 제작소가 양분하고 있다. 둘 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표준 사이즈를 제작하지만 각자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따로 있다. 감바는 7백 리터 이하의 소형 바리크로, 가르벨로또는 10 헥터리터 이상의 대형 보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이탈리안 셀러를 가득 채운 오크통 더미의 십중팔구는 둘 중 하나나 양 쪽 모두가 섞여있다는 의미다.

감바(정식명칭 Gamba Fabbrica Botti) 제작소는 7대째 오크통 제조에 큰 족적을 남긴 피에몬테 출신 감바 가문 소유다. 가문이 176년간 목재로 쓴 수종을 나열하면 특정 시대의 와인 취향이 보인다. 20세기초 목재는 인근 숲에서 채벌 한 아카시아나 밤나무로 충당했다. 그러다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산 참나무로 대체했고 1980년대 도입한 프랑스산 참나무는 마른 들에 번진 불똥처럼 확 퍼졌다. 프랑스산 참나무는 빠른 주기로 국제화하는 입맛을 따라갈 수 있게 했고 숙성기간을 짧게 조절해, 만든 지 2~3년밖에 안 된 와인에 숙성 부케를 품게 했다. 지난 40년간의 크기 대비 오크통 생산 곡선은 바리크의 성장세가 파죽지세였음을 보여준다. 실례로 2016년도에 바리크는 9천 5백 개, 보테는 3백 개를 기록했다. 감바의 고객은 1천여 개 와이너리에 달하며 가야, 푸르노토, 부르노 자코사, 안티노리, 반피 등 이탈리아 굴지의 생산자뿐만 아니라 미국, 칠레, 스페인에도 판매망이 뻗어있다.

감바 제작소에 마련된 야외 숙성장. 프랑스에서 절단된 판자는 이곳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까지 숙성시킨다
감바 제작소에 마련된 야외 숙성장. 프랑스에서 절단된 판자는 이곳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까지 숙성시킨다

감바 제작소는 남동 피에몬테주 아스티(Asti) 시 인근 ‘카스텔 알페로 다스티 (Castell’Alfero d’Asti)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변이 이름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이는 바르베라 다스티, 바르베라 델 몽페라토 수페리오레, 모스카토 다스티가 원산지인 언덕이 둘러싸고 있다. 풍미와 품질로 명성을 쌓아 온 와인산지와 감바가 오크통 제조 일인자를 유지하는 비결과 무관하지 않다.

감바의 주력인 바리크 제조과정을 보면 와인 양조 과정과 겹치는 접점이 많다. 흔히 와인의 90~95% 가 포도밭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바리크의 원료인 참나무가 자라는 숲이 완성도를 좌우한다. 1980년대 6세대인 에우제니오 감바가 바리크 제작에 뛰어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참나무 숲 모색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랑스 중부의 참나무 숲을 샅샅이 뒤진 결과 두 지방 다섯 군데 숲으로 좁혔다. 이후 이들 숲은 40년 동안 한결같이 감바의 든든한 참나무 공급지를 자처하고 있다.

에우제니오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 참나무(Quercus)는 전 세계에 3백여 종이 있어요. 바리크 제조에 적합한 참나무는 단 두 군데 숲에서 자라죠. 알리에 지방의 트롱세, 그로 보아, 드뢰일 숲과 리무쟁 지역 숲이죠. 앞의 숲은 토양 조성이 점토와 규산질의 혼합토로 퀘르쿠스 세실리스(Quercus Sessilis) 수종에 적합해요. 땅이 척박해 나무의 성장속도가 느리며 몸통은 작지만 기공이 세밀하고 재질이 치밀해요. 거기다 타닌이 부드럽고 은은한 바닐라 향을 머금으며 나뭇결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죠. 반면 남쪽으로 살짝 비켜있는 리무쟁 숲은 퀘르쿠스 페둔코라타(Quercus Peduncolata) 수종이 주류를 이루는데 토질은 비옥한 점토, 석회석, 화강암으로 구성돼있어요. 이 토양에서 자란 나무는 모양이 곧고 성장이 빠르고 결이 다소 거칠지만 기공이 넓어 나무 안과 밖의 산소 통과율을 증진해 타닌 추출량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프랑스는 참나무 숲 보존과 사용 규칙이 엄격한데 수령이 백 년 이상 된 고목만 벌목이 가능하다. 참나무는 자신이 숙성용기로 둔갑할지라도 살아 숨 쉰다. 그러므로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할 줄 아는 장인만이 재목감을 알아본다. 이 장인을 메랑디에(Merrandier)라 하는데 그는 자신이 고른 나무를 절단하는 당사자라 재목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일단 직경이 50센티미터를 초과해야 합격이다. 나뭇결(섬유질) 이 곧아 거침없이 쭉 뻗어있고 중간에 옹이가 있으면 실격이다. 옹이가 있으면 결이 일그러지거나 뒤틀려있기 십상이다. 절단은 유압장치 끝에 달린 날카로운 기구가 하강하면서 단번에 줄기(세로) 방향으로 쪼갠다. 전기톱은 나뭇결을 상하게 하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분된 나무는 4개 혹은 5개의 판자로 절단하고 다시 바리크 실물 크기로 자른다. 보통 5 입방미터(㎥) 크기 판자를 자른다고 가정할 때 쓸만한 판자는 1 입방미터(㎥ ) 정도 얻는다고 하니 원가와 폐기율은 메랑디에의 손 끝에 달려있는 셈이다.

프랑스에서 절단된 판자는 감바 제작소로 실려와 오크통의 모습을 갖춘다. 먼저 판자는 감바 제작소에 딸린 광활한 공간을 만난다. 이곳에서 판자는 벽돌처럼 층층이 쌓인 형태로 3년간 숙성기간을 보낸다. 비, 눈, 안개, 햇빛, 습도를 반복적으로 쏘이면서 타닌의 쓴맛과 떫은맛이 씻겨나가고 페놀 결합은 단단해진다. 오븐이나 건조기를 이용한 단기 건조나 수돗물 사용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수돗물을 소독할 때 넣는 염소가 나무와 접촉하면 클로로페놀 성분을 만들어낸다. 클로로페놀은 후에 TCA(트리클로로아니솔) 성분으로 탈바꿈해 거부감을 낳는 향기를 일으킬 수 있다. 지하실의 눅눅한 냄새나 젖은 종이 냄새가 나는 와인도 코르크 마개에 잔존한 TCA가 일으킨 코르키 현상 때문이다.

숙성 기간은 바리크 판자는 3년, 보테 판자는 5~6년까지 길어진다. 숙성을 마친 판자는 제조소 내부로 옮겨져 조립, 토스팅, 헤드 끼우기 과정을 거쳐 비로소 바리크로 완성된다.

먼저 쇠로 만든 후프(링) 둘레에 판자를 조립한다. 이때 윗부분은 좁고 중앙부로 내려가면서 마치 주름을 넣은 스커트처럼 넓어진다. 이어 조립한 판자가 흩어지지 않게 세 개의 임시 후프(working hoop)를 씌운다. 다음은 바리크 기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토스팅(toasting)이다.

토스팅은 세부적으로 예열, 굽히기, 토스팅으로 구성돼있다. 화로의 온도와 굽는 정도에 따라 최대 53분이 걸린다. 바리크는 스커트 부분을 밑으로 향하게 한 다음 220도로 달 구워진 화로 위에 씌운다. 화로를 품은 바리크를 밖에서 보면 마치 오크 텐트가 캠프 파이어를 하는 것 같다. 화롯불 세기는 바리크 만들고 남은 자투리로 태워 조절한다. 열기가 나무에 스며들면서 나무조직은 차츰 부드러워진다. 가끔 물을 뿌려주면 조직은 더 유연해져 불룩한 중앙과 양쪽 끝의 헤드 부분으로 갈 수록 좁아지는 바리크 형태로 성형하기가 수월해진다.

감바의 토스팅 원칙은 화롯불의 열기로 굽는 거다. 나무에 훈연향을 입히는 게 아니라 열기를 나무에 깊숙이 침투시켜 굽는 거다. 이 과정에서 페놀성분이 안정되고 식물 세포벽의 주성분인 리그닌 , 셀룰로스 , 헤미셀룰로스가 분해하여 향기물질로 변환된다.

감바는 토스팅의 핵심기술인 온도와 굽는 시간을 분 단위로 조절하기 위해 적외선 온도 감지장치를 개발했다. 즉, 토스팅 장인이 직접 불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휴대용 장치다. 토리노 대학교 양조학과와 함께 다년간 실시한 기체 크로마토 그래피 성분 분석법, 관능평가, 타닌 추출량 결과를 응용한 구음 테크다. 어떻게 보면 장인의 감각 영역에 머물던 세계를 우리 눈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실물세계다.

라이트 토스팅은 190도에서 40분정도 구우며 아몬드, 정향, 감초 향기물질을 생성한다. 이 정도의 토스팅이면 아직 과일과 꽃향이 살아있고 잔향에 훈연향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미디엄 토스팅은 205도에서 45분 유지하며 바닐라, 코코넛, 코튼 캔디, 초콜릿, 버터 스카치 등 달콤한 향이 주를 이룬다. 4메틸 구아이아콜 (4 methyl guaiacol) 같은 스파이시향 성분도 얻는다. 미디엄으로 구우면 과일과 훈연향이 조화를 이루는 와인이 나온다. 스트롱 토스팅은 220도를 53분 정도 지속하는데 이때 훈연향이 짙어지며 천연 아로마는 희미해진다. 타바코잎, 후추, 커피빈, 초콜릿의 자극적인 향기와 떫은맛과 실크 결이 대조를 이루는 타닌의 입체적 향연이 볼만하다.

토스팅을 마친 바리크는 라우터 머신에 장착되고 양쪽 헤드 내부에 홈이 파인다. 홈에 헤드를 끼울 때 못이나 접착제로 연결하지 않는다. 임시 후프를 제거하고 영구 후프를 채운 후 사포질로 매끈하게 결을 다듬는다. 내부 압력과 누수 검사, 외부 검사를 거친 뒤 포장한다.

오크통은 선사시대부터 와인 숙성 용기로 러브콜을 받았으며 로마인이 암포라로 교체하면서 잠시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러다 제작기술이 정교해지고 경량화됨에 따라 1등 자리를 탈환했다. 최근에 꽃, 과일 등 천연향기가 고급 향의 표준으로 부상하자 오크향이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는 듯하다. 거기다 오크 타닌을 흡수한 와인은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오크통 자체는 무죄다. 부적절한 사용, 자연향과 오크향의 조화점을 찾지 못한 미숙함, 과도한 사용, 오크통 비위생이 오크 명예실추에 한몫한다. 바리크를 적절히 사용하면 와인에 세련된 미묘함을 주어 와인에 복합미를 증진한다. 지금은 오크향이 배제된 무토스팅이나 라이트 토스팅이 사랑받지만 변덕스러운 우리 취향은 머지않아 진득한 나무향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입맛은 변하고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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