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갯짓 하나로 공간을 무한대로 떠도는 새는 예술가의 예술혼을 일깨워 종종 작품으로 환생한다. 같은 선상에서 포도밭에 자생하거나 출몰하는 조류는 청정함과 직결되어 와인 라벨의 모티프로 자주 등장한다.

먼저 라 스피네타 와이너리를 예로 들자. 라 스피네타의 첫 번째 히트 와인이자 스테디셀러 자리를 꿰차고 있는 브리코 괄리아란 모스카토 다스티가 있다. 브리코 괄리아는 메추라기 언덕이란 뜻으로 하늘색 테두리를 두른 라벨 액자 안의 메추리는 뭔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안젤로 가야도 조류 마니아다. 고향인 랑게 숲에 자생하는 꿩을 모델로 세운 파자노 라인(Fagiano line)을 연작으로 내놓았다. 바롤로 다그로미스, 랑게 소비뇽 블랑 알테니 디 브라씨카, 랑게 로쏘 시토 마레스코는 다채로운 깃털색을 지닌 꿩이 요염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토스카나 최초로 끼안티 와인 황금비율을 개발해 끼안티 표준 맛을 정립한 리카소리 와이너리도 새를 모티프로 삼았다. 리카소리의 카살페로란 와인은 날개를 활짝 펼친 도요새가 땅으로 돌진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왼쪽부터) 레 포타찌네 와인을  장식하고 있는 노랑배 박새 그림, 박새의 실물인 소피아가 왼쪽 박새를 가리키고 있다.
(왼쪽부터) 레 포타찌네 와인을 장식하고 있는 노랑배 박새 그림, 박새의 실물인 소피아가 왼쪽 박새를 가리키고 있다.

몬탈치노 소재 한 생산자는 와이너리 호칭을 아예 조류명으로 불렀다. 레 포타찌네(Le Potazzine) 와이너리인데 포타찌네는 몬탈치노에 자생하는 노랑배 박새의 이탈리아어다.  흥부한테 박씨를 물어다 주어 선한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징물로 각인된  박새의 한 부류다. 나란히 앉아있는  두 마리 박새는 여사장님의  두 딸이다.  왼쪽의 초랑초랑한 눈을 지닌 새는 막내 소피아고, 오른쪽에 눈을 감고 있는 새는 큰 딸 비올라다. 포타찌네는 외할머니가  어린 손녀들을 부르던  애칭이다. 몬탈치노는 예로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손주를 이름 대신 포타찌네라 호칭하는 관습이 있다. 동서양 불문하고 조부모의 손주에 내림사랑은 끔찍한 모양이다.,

포타찌네의 어린이는 다 커서 숙녀로 자랐다. 하지만 라벨은 28년 전 모습 그대로다. 다만 새 라인이 추가될 때마다 깃털 색만 바꾸어 재 등장시켰다. 이 지점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남자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눈치챘을 거다.

레 포타찌네를 이끄는 모녀. 좌측부터 소피아, 질리올라, 비올라. 가운데가 오너이자 어머니다
레 포타찌네를 이끄는 모녀. 좌측부터 소피아, 질리올라, 비올라. 가운데가 오너이자 어머니다

레 포타찌네는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세계에서는 드물게 여성 2세대가 오너축을 이룬다. 창립자가 어머니고 그녀의 딸(포타찌네)들이 2세대다. 어머니 질리올라의  와인 입문 동기는 좀 색다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밭이나 와인 학도로 와인 메이커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은 적도 없다. 다만 그녀는 여성 특유의 직감과 추진력이 남달랐다. 몬탈치노가 고향이고 결혼 전에 그녀가 가졌던 직장도  비온디 산티와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생산자 협회에서 사무를 보았다. 와인을  배워서 익힌 게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서 저절로 자라 듯 그녀의 유전자는 자연스럽게 와인 생태계를 빨아들였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부르넬로와인의 잠재성을 직감했고 구체적인 미래 행보도 세웠다.

관광객이 몬탈치노 버킷리스트를 짤 때 일 순위는 피아짜 가리발디 광장이 차지한다. 몬탈치노 시청사 바로 위쪽에 펼쳐진 광장인데 고가의 프리미엄 와인을 파는 와인샵들이 즐비하다. 이 샵들 사이로 질리올라가 1987년 개장한 에노테카 몬탈치노 프로두체 와인숍과 비녜리아 레 포타찌네 레스토랑이 보인다. 몬탈치노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이 레스토랑을 강추한다. 로쏘 디 몬탈치노와 궁합을 맞춘 피치 알 라구 파스타의 환상적인 조합을 맛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자신의 사업 수완에 확신을 갖게 된 질리올라는 1993년  부르넬로 와인 생산을  추진했다. 초반기부터  자리가 잡히는 1990년도 말까지 그녀는 밭 관리와 양조법을 꼼꼼히 챙겼고 그 원칙들은 30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초반에 인수한 5헥타르 밭도 그대로고 몬탈치노 고유의 레드 와인만 고집하는 것도 여전하다. 로쏘 디 몬탈치노,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작황이 뛰어난 해에만 출시하는 리제르바가  주종이다. 그러다 최근에 30년 관행을 잠시 접었다. 0,5헥타르 밭을 임대했고 IGT  산조베제 와인을 도입했다. 소유 면적은 늘어났으나 고품질 소량 원칙을 양조 프로세스에 적용시키다 보니 생산량은 고작 6천 병 정도다.

라벨과 오너 가족의 구성만 본다면 여성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양조 스타일이나 개성은 오히려 남성적인 이미지에 근접한다. 레 포타찌네가 소유하는 밭은 라 프라타(남서향,  507미터)와 라 토레 언덕(남동향, 420미터)에 흩어져 있으며 서늘한 기후대를 보이는 몬탈치노 중서부에 속한다. 해발이 4백 미터 이상으로 한 여름에도 스웨터의 온기를 그립게 만드는 서늘한 밤 기온과 지속적인 햇빛 노출 등 장기 숙성에 필요충분 조건을 만족해 부르넬로 DOCG 등급에 지정됐다.

포도를 압착한 주스는 비슷한 크기에 동일한 온도로 맞추어진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 탱크에 모아진다. 비슷한 환경하에서 알코올 발효, 침용에 이어 젖산발효가 순차적으로 발생하는데 해마다 변동이 있지만 보통 2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이후 가족과 양조가로 구성된 시음팀이 탱크별로 시음을 하여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탱크와 로쏘 디 몬탈치노 탱크로 구분한다. 따라서 레 포타찌네의 모든 와인은 초반에 운명이 갈린다. 등급이 정해진 밭에서 거둔 포도를 정해진 룰의 흐름에 맡기는 일반 양조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분류된 와인은 호스에 실려 바닥에 난 맨홀을 통과해 마치 폭포가 떨어지듯 지하에 대기하고 있던 오크통에 주입된다. 여기서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는 최소 4년, 로쏘 디 몬탈치노는 1년 숙성된다.

와인 생산량은 작황의 영향을 받는다. 작황이 특별히 좋은 해는 부르넬로 생산고가 높고 숙성 잠재력이 기준에 못 미치는 해는 로쏘 디 몬탈치노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예외적으로 품질이 뛰어난 해는 리제르바를 배정해야 하므로 로쏘 디 몬탈치노 비중은 감소한다.

밭의 품종 구성을 보면 산조베제 그로쏘 품종이 조화를 내도록 세 개의 클론으로 조율돼 있다. 2000년대 초반부로 폭염과 가뭄의 주기적 반복에 대한 해결책이다. 클론 선택은 향미에 기준을 두기보다는 알맹이 크기에 달려있다. 비가 많이 오는 해는(2014년 경우) 저온 대비와 곰팡이 방제가  최우선인데 이럴 때 알맹이 직경이 좁은 클론이 신속하게 골고루 익는다. 반대로 여름이 더우면 (2017년 경우) 알맹이가 큰 과육은 상대적으로  껍질이 두꺼워 완숙 속도가 느려지고  과피가 쪼그라드는 과대 건조를 피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왼쪽부터) 로쏘 디 몬탈치노 2021,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9, 2018, 2017 빈티지, 리제르바 2019
(왼쪽부터) 로쏘 디 몬탈치노 2021,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9, 2018, 2017 빈티지, 리제르바 2019

IGT 산조베제 2021 – 2개월 알코올 및 발효 젖산 발효를 마친 후 12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숙성했다. IGT(수퍼 투스칸) 와인은 바리크 숙성을 통해 보디와 복합미를 증진시킨다면 레 포타찌네 IGT는 클론 자체의 우아함 속에 감춰진 힘 발현에 집중한다. 말린 바이올렛 꽃다발, 라벤더, 체리향을 피우고 조밀한 타닌과 신선한 산미가 어우러져 있어 어린 와인 분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로쏘 디 몬탈치노 2021 - 라 프라타(남서향, 507미터)와 라 토레(남동향, 420미터) 밭의 자연이 이 와인에서 조화로운 합창을 부른다. 15도 알코올이 무색할 정도로 입안에 적당한 무게감과 발랄함을 전한다. 바이올렛, 장미, 체리의 화사함이 봄 정원을 연상시키며 흑연, 부싯돌, 커피빈이 발산하는 향은 기품이 돈다. 타닌 감촉은 어린 나이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부드럽다. 산미는 다채로운 과일 풍미를 머금고 있어 상쾌한 여운이 오래 지속된다.

다음은 각자의 아이던티가 두드러지는 세 개의 빈티지 차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포타찌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는 계절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2017년의 더위, 2018년의 비와 서늘함 , 2017년 여름의 더위와 2018년의 적당한 비 등 두 해의 장점만 모아놨다는 2019년을 만나보도록 하자.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9 - 한약향, 라벤더, 장미, 체리, 딸기즙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타닌 짜임새는 레이스처럼 촘촘하고 입안 전체로 퍼지는 동안 신경은 몰입감을 만끽한다. 알코올과 산도로 인한 부드러운 질감과 과즙이 느껴진다. 42개월의 오크 숙성이 조각한 골격과 기품이 느껴진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8 - 낙엽, 타바코의 은은한 뉘앙스에 이어 블러드 오렌지, 레드 베리류, 체리 머멜레이드 같은 신선한 아로마가 뒤를 잇는다. 타닌결이 조밀하며 입안을 조이는 압박감이 전혀 없이 부드럽게 마무리한다. 무난히 즐길 수 있는 풀보디에 산미가 결합한 균형감이 뛰어난 와인이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2017 - 바이올렛, 타바코, 초콜릿, 감초, 정향, 오렌지 필, 럼에 재운 체리 등 농익은 과일이 풍성하다. 향기는 자신을 속속들이 보여주지만 입안은 감았던 태엽이 풀리는 순간의 에너지가 충만하다. 단단하게 결합한 타닌 조직이 풀리려면 시간은 걸리나 일단 열리면 유연한 식감과 더불어 경쾌한 산도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리제르바 2015 - 30년 통틀어 오직 4개의 리제르바(2004년, 2006년, 2011년, 2015년)만 선보였는데 이들 중 최연소 빈티지다. 레 포타찌네가 리제르바를 만들 작황을 선별하는 기준은 남다르다. 예를 들면 여름의 불청객 폭염의 출몰은 별로 중요치 않다. 4백 미터 고도에 조성돼있는 포타찌네 밭 경사면을 타고 올라온 더위도 여기서는 한 풀 꺾이기 때문이다. 합격기준은 수확에 접어든 포도의 성분 검사를 반복한 결과, 각 성분의 복합미 평균 수치가 높을 때다.

60개월 숙성은 깊고 폭넓은 향기층으로 표현된다. 와인 라벨을 박새에서 독수리로 바꿔야 할 정도랄까!. 향신료, 약초, 식물뿌리, 낙엽, 이끼, 정향, 타르, 타바코, 감초 향기가 묵직하게 피어난다. 약하지만 흑자두와 딸기의 달콤함도 감지된다. 부르넬로가 감각을 사로잡는 요소인 힘, 중후한 질감, 정교한 짜임새를 지닌 견고한 구조를 집합시켜 놓은 것 같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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