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 성당. 라치오 와인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자리인 리벨라지오니 RIVELAZIONI 이벤트가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행사의 주최자는 이탈리아 최대 여성 와인 단체인 레 돈네 델 비노다
로마 바티칸시국의 성베드로 성당. 라치오 와인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자리인 리벨라지오니 RIVELAZIONI 이벤트가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행사의 주최자는 이탈리아 최대 여성 와인 단체인 레 돈네 델 비노다

한 와인을 완성하는데 여성의 손길은 얼마나 필요할까? 이탈리아 여성 와인 협회 (Associazione Nazionale Le Donne Del Vino)가 실시한 ‘이탈리아 와인업계에서 여성의 역할 조사’를 인용하면 이해가 빠를듯하다. 여성 와인종사자의 28% 가 생산(포도농사와 양조)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어 소매업등 세일즈 분야(24%), 와인유통업 (12.5%)이 뒤를 잇는다. 또한 여성의 고용비율이 높은 업무분야는 마케팅과 홍보(80%), 와이너리 투어와 고객환대 (75%) 및 세일즈(51%)로 발표됐다.

업무상 필자는 와이너리를 자주 방문하는데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 처리는 여성직원과 소통한다. 그 시간에 남성 직원들은 밭에서 일을 보거나 양조장에서 자신의 일에 삼매경하고 있어 외부인이 그들과 대면할 일은 흔치 않다. 여성인구가 와인업계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생산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후방지원에 몰려있다. 와이너리 방문 고객 및 시음 지원, 관리직, 세일즈, 와이너리가 직영하는 숙박, 레스토랑 및 와인바 등 고객 대면 자질이 매출 증대와 직결되는 분야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탈리아 여성 와인협회는 자국 내 와인문화 향상, 책임 있는 음주 문화 보급, 여성 와인 종사자의 지위향상과 개선 및 이를 위한 정부기관과 공공단체와의 조율을 목적으로 창립했다. 1988년 창립이래 20개의 지부와 1천1백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탈리아 최대 여성와인 단체다.

지난 10월 26부터 28일까지 협회 소속 라치오지부는 ‘리벨라지오니(RIVELAZIONI)’ 이벤트를 개최했다. 행사명인  리벨라지오니는 폭로란 뜻으로, 다소 과격한 표현을 제목으로 내 건 데는 '라치오주 와인을 속속들이 공개하겠다'는 지부 회원들의단호한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화산와인 마스터클래스는 생산자와 와인저널리스트가 함께 참여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화산와인 마스터클래스는 생산자와 와인저널리스트가 함께 참여했다

라치오 와인의 키워드- 화산토

라치오(Lazio) 주 와인은 이탈리아 수도인 로마와 로마 북동과 남부를 에워싸고 있는 5개 군(province)에서 나온다. 주 면적은 17 242 km² , 이중 포도밭은 25,500헥타르를 차지한다. 라치오는 현재까지 3개의 DOCG, 27개의 DOC, 6개의 IGT급 와인을 등급에 올려놨다. 등급와인 산지는 로마 위성 도시에 위치한 화산언덕, 비테르보와 리에티 지방, 프로시노네와 라티나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치오 와인을 함축한 키워드는 화산토다. 60만 년 전에서 25만 년 전 사이에 라치오 대지를 뚫고 폭발한 분출물이 퇴적과 풍화를 거듭하며 쌓아 놓은 화산경치가 장관이다. 또한 중앙이 함몰한 내부로 빗물이 흘러들어 형성된 칼데라 호수로도 위엄을 떨치고 있다. 남부는 화산이 폭발한 적은 없지만 여기저기 지문을 남겼다. 화산 불기둥에서 떨어져 나온 대량의 쇄설물이 모암 위에 샌드위치처럼 화산재와 모래, 자갈을 쌓아 놓았다. 원(源) 토양(모암)은 2억 5천만 년 전에서 2천만 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탈리아가 태고 바다에 잠겨있을 때 갑각류 껍질이 분해와 화학변화를 거듭한 후 잉태한 석회석이 주성분이다.

라치오는 화산, 티레노 해, 고대 화석의 석회토, 지중해성 온화한 기후 등 천연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2백 여종에 달하는 토착품종의 생태 다양성이 더해진다. 상당수의 품종은 역사 다큐물에서도 다룬 로마인들이 동물가죽, 암포라, 토기항아리에서 발효해서 마시던 와인들이다. 고대나 지금이나 라치오 와인 맥을 잇는 와인은 화이트 품종에서 오며 주 전체 생산량의 80% 를 차지한다. 말바지아 푼티나타(또는 말바시아 델 라치오), 트레비아노 토스카나, 벨로네, 그레케토가 대표적이며 레드 품종은 체사네제, 칠리에졸로, 몬테풀차노, 네로 부오노,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들 수 있다.

라치오의 3대 와인지역

이미지 출처 Wikipedia
이미지 출처 Wikipedia

북부산지는 비테르보 지방과 랜드마크인 볼세나 호수(표면적113,5 km², 수심 168미터) 인근의 화산토를 들 수 있다. 볼세나는 이탈리아내 칼데라 호수 중 수심이 가장 깊은 호수로 손꼽힌다. 호수 인근 마을은 EST! EST!! EST!! Montefiascone Doc (에스트!에스트!!에스트!! 몬테피아스코네) 와인산지로 유명하다.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주 국경과 맞닿은 관계로 품종의 멜팅팟 구실을 한다. 산조베제, 알레아티코, 카나이올로, 그레케토의 다채로움을 맛볼 수 있다.

로마시 남쪽 지방은 목가적인 경치로 세기에 걸쳐 로마 부유층의 휴양지로 명성을 누려왔다. 화산 언덕에 자리잡은 양조장들은 콜리 알바니, 카스텔리 로마니, 프라스카티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 부유층의 고급 취향을 만족시켰다. 이 와인들의 명성은 라치오의 등급와인으로 이어졌다. 2011년도에 로마 DOC 등급이 제정되었는데 기존의 로마 위성도시에 자리 잡은 16개의 Doc 와인지역을 커버하는 전위적 등급이다. 기존의 군소 등급을 로마 우산아래 두어 광역도시, 로마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지정했다. (로마 DOC 와인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 w.html?idxno=125403)

남부지방은 티레노 연안의 라티나 지방과 내륙의 프로시노네 지방으로 나뉜다. 프로시노네와 일부 로마지방의 극동부는 라치오 프리미엄 레드의 자존심, 체사네제 산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체사네제로 만든 와인 중 등급을 획득한 와인은 체사네제 델 필리오, 체사네제 디 아필레, 체사네제 디 오레바노 로마노가 있다. 주 남동쪽에 위치한 라티나 지방은 네로 부오노, 벨로네, 트레비아노 같은 토착와인과 시라,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쁘디 베르도, 샤르도네의 국제취향이 공존한다.

화산 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귀한 성분들

화산토양은 화이트 와인에 미네랄과 산미의 날개를 달아준다. 신맛과 짠맛으로 양립하는 두 맛이 조화를 이룰 때 마치 맑은 시냇물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시냇물의 청정한 물 속 세계가 눈에 비추어지는 순간 안구가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산미와 짠맛이 조화를 이룰 때 맛과 향기가 또렷해지는 맛의 신세계가 열리고 아로마 분자 하나하나가 생기를 얻는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화산이 터질 때 폭발속도가 대피속도를 추월해 생존 가능성이 바닥을 치더라도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산토가 비옥하다는 데에 있다. 베수비오의 피엔노로 토마토(Pomodorino del Piennolo del Vesuvio DOP)는 화산토 축복을 받은 골드채소다. 당과 유기산의 보고인 옥토에서 자란 토마토는 곰팡이가 잘 피지 않는다. 껍질이 두껍고 열매가 자루에 단단히 붙어 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천연 아로마의 유효기간이 길고 달고 신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화산토는 우리한테 친근한 맛을 낯설게 만드는 맛의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리 미각에 익숙하던 맛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로마 주변의 화산토에서 생산한 메를로를 마신다면 맛기억 세포는 농익은 레드 과일의 달콤한 향이나 실크 타닌 인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대신 또렷한 산미와 결이 꼿꼿한 타닌 같은 어린 산조베제의 여운 안에서 당신은 허둥댈지도 모른다.

화산토 성분의 50~70%는 규산으로 알려졌다. 규산은 토양 내 수분 함유량과 일조량이 적당한 조건하에서 포도의 신진대사를 촉진 및 개선한다. 화산토에 녹아있는 마그네슘, 칼륨, 알루미늄, 철 성분의 흡수를 촉진한다. 한마디로 규산은 나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비타민 역할을 한다.

화산토양에서 자란 포도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풍부하다. 카로티노이드는 식물 색소인데 당근의 주황색은 바로 이 색소 때문이다. 포도가 햇빛을 받으면 색소는 냄새분자로 분해된다. 이 분자를 노리소프레노이드라 하며 다시 이오논과 베타 다마스콘 같은 방향 물질로 분해되어 꽃과 과일 향기를 낸다. 후에 병숙성을 거치면서 패트롤, 부싯돌, 케로신 (휘발유) 같은 TDN계열 냄새분자로 변한다.

미네랄은 항산화 성분을 다량 함유해 와인이 젊음을 오래 유지하게 도와준다. 산도를 오래 유지하는 과일이 장기간 싱싱하듯 포도가 천연 아로마를 오래 품게 한다. 또한 산은 고급 산으로 분류되는 숙신산이다. 숙신산은 신맛의 감도를 줄이고 짠맛을 증가시킨다. 이는 산미가 낮은 게 아니라 입안에 짠맛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속성 때문이다.

자코비니 와이너리가 생산한 ‘라치오 IGT 비앙코 2022’ 와인은 알바노 호수 변에 조성된 화산토에서 자란 트레비아노 토스카나로 만들었다. 제라늄, 신선한 과일, 향초, 복숭아 ,헤이즐넛 향기가 퍼지면서 기분이 한층 맑아진다. 산뜻한 산미로 인한 깔끔한 여운이 독보적이며 아몬드의 쌉쌀한 맛이 미각에 감미롭게 녹아든다.

남부 로마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빌라 시모네 와이너리는 프라스카티의 화산토양에 적합한 말바시아 푼티나타 품종 개량에 역량을 기울여왔다. 40년 노력의 산물이 바로 프라스카티 수페리오레 2022 빌라 데이 프레티다. 자몽, 허브, 청사과, 진저 같은 상쾌한 아로마와 부싯돌, 사프론의 정갈한 향이 느껴진다. 일교차로 인한 서늘함은 절제된 산미로 표현되고 있다. 입안에서 여러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밸런스 잡힌 바디를 음미할 수 있다.

카스텔리 로마니지역에 위치한 에레디 데이 파피 와이너리는 자연 아파시멘토를 응용한 한정판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완숙한 상태에서 나무에 그대로 놔두면 말바시아 푼티나타는 아로마가 선명해지고 바디에 매끄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압착에 이어 알코올 발효한 와인을 밤나무 통에서 9개월 숙성했다. IGT 라치오 말바시아 푼티나타 가라테아 2021은 호두, 쉐리, 바닐라 , 꿀, 버터, 캐러멜, 망고, 패션프루트, 계피의 싱그런 내음이 솟는다. 진저의 톡 쏘는 향이 생동감이 서려있다. 경쾌한 산도가 식감을 자극하며 미디엄 보디와 짙은 미네랄이 절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칼럼은 이탈리아 토착와인의 뜨는 별 - 라치오주 와인을 빛나게 하는 특별함 (2) 편에서 계속됩니다.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공인 소믈리에
국제 와인 품평회 심사원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운영
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1 레벨 와인 치즈 테이스터
랑게 와인 앰버서더
로에로 와인 저널리스트 협회가 주최하는 2022년 국제 와인 저널리스트에 선정

Certified Sommelier by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Columnist of Korean Wine Magazines
Wine Judge from International Wine Awards
Awarded as Best Foreign Journalist for Roero Wine Region
Langhe Wines AmbassadorOrganizer of Winery Tour in Main Italian Wine RegionFirst Level Certified Cheese Taster by 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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