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대리의 한식탐험 3] 너무나도 한국적인 맛, 부대찌개

승인2019.04.17 10:05:32

대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부대찌개를 자주 먹게 된 건. 

어두컴컴한 지하 주점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선배들이 주는 소주를 들이켰던 시절, 안주는 항상 부대찌개였다. 술자리에서 그렇게 먹고도 질리지 않았는지 점심시간에도 자주 부대찌개를 찾았다. 사회인이 되고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오늘 점심엔 뭐 먹을까?' 하면 김치찌개, 중국집과 함께 반드시 나오는 선택지 중 하나가 부대찌개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음식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 의아하다. 재료를 보면 햄, 소시지, 치즈, 그리고 베이크드 빈스(통조림 콩)까지. 한식에서 쓰이지 않는 재료들이다. 특히 베이크드 빈스는 부대찌개 말고는 거의 먹을 일이 없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음식이지만 뜯어보면 낯선 음식 부대찌개, 대체 어떤 음식일까?

▲ 직장인의 단골 점심 메뉴, 부대찌개

사실 재료가 서양 재료일 뿐이지 부대찌개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맛이다. 매콤 얼큰한 국물은 김치찌개, 육개장, 매운탕 등 우리나라 국물 음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맛이다. 부대찌개에 들어간 이국의 재료들은 그 맛을 방해하기는커녕 강화하는 역할을 해준다. 햄과 소시지에서 나온 기름기는 고추의 매콤함을 더 얼큰하게 풀어주고(매운맛은 지용성이다.), 라면과 치즈는 국물을 더 기름지고 걸쭉하게 해 준다. 베이크드 빈스마저 김치의 새콤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인 입맛에 부대찌개가 딱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거기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 인기가 없을 수 없다.

이러한 부대찌개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군부대 주둔지 근처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부대찌개의 유래는 이미 너무 유명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잠깐 짚고 넘어가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소시지 등을 미군부대 인근 식당들에서 활용한 것이 시작이다. 부대에서 나온 고기를 활용했다고 하여 부대찌개라고 한다. 미군의 잔반을 끓인 꿀꿀이 죽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계보는 알 수 없다. 초기에는 재료 공급이 용이한 미군 주둔지, 의정부, 동두천, 평택(송탄) 인근에서 주로 팔렸다.

부대찌개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80년대의 두 가지 사회적 변화에 인해서인데, 첫 번째는 국산 육가공 제품의 등장이다. 80년대 이전의 부대찌개는 외국산 햄과 소시지를 사용해서 수급이 비교적 쉽지 않았다. 당시에도 국내에서 햄, 소시지가 생산되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육고기가 아닌 어육을 활용한 제품이었다. 이런 제품들은 육고기로 만든 햄, 소시지와 달리 오래 끓이면 흐물흐물해져서 제 맛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80년대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육가공 시장에 뛰어들고, 경제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 육고기로 햄과 소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부대찌개도 더 이상 외국산 햄, 소시지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외식문화의 확산이다. 경제성장에 따라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외식시장 전체가 급격히 성장했고, 부대찌개도 이에 발맞추어 널리 확산되었다. 

부대찌개는 크게 의정부식과 송탄식으로 나뉜다. 위에서 언급했듯 둘 다 미군 주둔지가 크게 자리 잡은 지역이다. 의정부식은 맑은 국물에 깔끔한 맛을 내서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연상시키는 반면, 송탄식은 햄과 소시지가 많이 들어가고 고기 육수를 쓰는 곳도 많아 맛도 국물도 묵직하다. 하지만 요즘엔 어디식 부대찌개임을 내세우기보단 그 식당만의 부대찌개 맛을 내세우는 식당이 많다. 토마토 육수, 족발, 고급 소고기 안심 같은 새로운 식재료를 넣어 차별화하곤 하는데, 태생부터 다양한 음식재료에 열려 있던 부대찌개의 특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 햄과 소시지가 듬뿍 들어간 송탄식 부대찌개

어느 도시를 가던 부대찌개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부대찌개는 우리 일상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부대찌개의 약진은 멈추지 않는다. 커가는 간편식 시장에서도 부대찌개는 두각을 드러낸다. 마트에 가면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간편식 부대찌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햄과 소시지 생산이 2016년 대비 2017년 각각 20.1%, 21.7% 증가했는데, 이는 부대찌개, 샌드위치를 위주로 한 간편식의 판매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8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생산량 기준) 지난 2016년에는 주요 라면회사들이 앞다투어 부대찌개 라면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마트에 가면 간편식 부대찌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창 육가공 식품의 위험성이 논의가 되었을 때 부대찌개를 좀 줄여야 하나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결과는 작심삼일. 부대찌개의 벌건 육수가 이미 내 피 속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오늘 원고를 마무리하면 걸쭉한 부대찌개나 먹으러 가야겠다. 

소믈리에타임즈 솜대리 somdaeri@gmail.com

<저작권자 © 소믈리에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모바일 버전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 24길 50 희은빌딩 별관4층  |  전화 : 02-499-0110  |  팩스 : 02-461-0110  |  이메일 : stpress@sommeliertimes.com
등록번호 : 서울 아 03477  |  등록일 : 2014년 12월 12일  |  발행인 : 최염규  |  편집인 : 김동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최염규
소믈리에타임즈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뉴스, 사진, 동영상 등)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2019 소믈리에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