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좋은 술은 양력으로 12월, 음력으로 10월에 술을 내려 그 이듬해 1월까지 익혀서 마시는 술이라고 한다. 통밀을 이용하여 누룩을 만들고 숙성된 밑술과 고두밥을 혼합하여 덧술을 만든다. 거기에 메주콩, 엿기름, 들국화, 붉은 고추 등 소곡주의 맛과 향을 내는 재료를 첨가한 후 저온에서 100일 정도 숙성시킨다 <사진=한산소곡주>

대한민국 제19호 식품 명인은 한산소곡주의 우희열 명인이다. 1500년 역사를 가진 명인의 소곡주는 조선 시대 때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주막에 들러 소곡주를 마신 다음 그 자리에서 짐을 풀고 마시다가 과거시험 날짜가 지나서 집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 소곡주는 백제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를 보면 다안왕(11년) 흉작으로 민가의 소곡주를 전면 금지한 바 있고, 무왕(37년) 3월에는 조정 신하들과 백마강 고란사 부근에서 소곡주를 마시며 그 흥이 극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의자왕 (16년) 3월에는 임금이 궁녀를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백제가 멸망하자 한산 건지산 주류성에 백제 유민들이 그 한을 달래기 위해 소복을 입고 술을 빚었다고 해서 소(素)자가 붙여졌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외에도 음식디미방, 요록, 치생요람, 음식보, 역주방문, 산림경제, 중보산림경제 등 다수의 문헌을 통해 소곡주 또는 소국주의 제조법이 전해오고 있다. 백제 때부터 충청남도 서천구 한산면 호암리는 명주의 본고지라고 알려져 있다. 우희열 명인은 1965년 호암리로 시집와 그때부터 소곡주의 제조법을 시어머니인 김영신에게 전수받았다. 여름에는 한산 세모시 바느질을 하고, 가을철에 추수가 끝나면 소곡주를 항상 빚었던 집안의 가풍을 따라 일손을 도왔다. 현재는 우희열 명인의 아들인 나장연 전수자가 가업을 이어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 우희열 명인은 1965년 호암리로 시집와 그때부터 소곡주의 제조법을 시어머니인 김영신에게 전수받았다. 여름에는 한산 세모시 바느질을 하고, 가을철에 추수가 끝나면 소곡주를 항상 빚었던 집안의 가풍을 따라 일손을 도왔다 <사진=한산소곡주>

한산소곡주는 백제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 그대로를 유지하여 특유의 향과 맛을 보존하고 있다. 가장 좋은 술은 양력으로 12월, 음력으로 10월에 술을 내려 그 이듬해 1월까지 익혀서 마시는 술이라고 한다. 통밀을 이용하여 누룩을 만들고 숙성된 밑술과 고두밥을 혼합하여 덧술을 만든다. 거기에 메주콩, 엿기름, 들국화, 붉은 고추 등 부재료를 첨가한 후 저온에서 100일 정도 숙성시킨다. 완성된 술의 색깔은 청주와 같다.

한산소곡주는 원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산 지방 깊은 천연수로 소곡주를 제조하는데 이 지방의 물은 염분이 전혀 없고 철분이 약간만 함유되어 있어 물맛이 독특하여 소곡주의 맛을 내기에 알맞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한 누룩을 직접 만들기 위해 평원을 가꿔 유기농 기법으로 직접 밀 농사를 지으며, 그 외에 들어가는 찹쌀, 콩, 생강 등도 충청남도 서천 농가에서 전량 계약재배로 재료를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인공첨가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한산소곡주는 2015년 한일중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 공식 만찬용 술로 쓰였으며, 2014년 벨기에에서 열린 ‘몽드셀렉션’에서 금상을 받은 바 있다.

참고로, 식품명인은 우수한 우리 식품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하여 식품제조, 가공, 조리 등 분야를 정하여 식품명인으로 지정 및 육성하는 목적이다. 명인은 식품의 제조·가공·조리 분야에 계속하여 20년 이상 종사하거나 전통식품의 제조·가공·조리 방법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실현하는 등 자격요건을 갖춘 자를 대상이다. 시,도지사가 사실 조사 등을 거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또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지정을 추천하면, 식품산업진흥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게 된다.

소믈리에타임즈 정유진기자 you-jinjeo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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