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National Wine Agency 지하1층 전시실에서 발굴된 와인 유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케타 봇코벨리 (Keta Botkoveli; 이후 케타)씨
조지아 National Wine Agency 지하1층 전시실에서 발굴된 와인 유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케타 봇코벨리 (Keta Botkoveli; 이후 케타)씨

가장 효율적인 공항으로 알려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자본주의의 화려함으로 무장한 이스탄불 공항에서의 환승을 거쳐 일행은 조지아의 주공항인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했다. 장시간의 이코노미 석 비행으로 지친 필자의 눈에 비친 트빌리시 공항의 첫 느낌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련된 공항들에 비해 다소 소박하고 어설프게 느껴져서 앞으로의 일주일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초조해졌다. 그런 나의 긴장감은 현지 안내인 역할을 맡았던 고고학 전공의 케타 봇코벨리씨를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차분히 진정됨을 느꼈다. 케타씨의 해박한 고고학적 지식과 역사적 안목은 후천적 노력으로 당연히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한 편안한 눈빛과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는 참으로 빼어난 것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일정 동안 만났던 조지아인들은 모두 우리를 참으로 편안하게 대해줬고 차츰 이러한 편안함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져 매우 익숙하게 됨을 느꼈다. 이러한 편안함과 왠지 모를 익숙함은 조지아에서 만난 다른 여러 이들에게서도 느낀 일종의 공통분모임을 깨달았고 필자는 난생처음 방문한 조지아가 왜 이리 편안하고 포근한 지 그 이유를 찾아보게 된다.

우리 일행은 조지아식 환대 (Georgian hospitality)를 받은 것으로, 조지아인들의 삶에서 손님을 잘 접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여서 그들은 매 순간 진심으로 손님을 접대한다. 단순히 비즈니스 상대자가 아닌 우리 집을 찾은 중요한 손님으로 잘 모신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부모님들께서도 어릴 적 늘 강조했던 우리네 삶의 방식이었는데 이제 현대화된 사회에 살면서 개인주의화되어 우리는 그 마음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조지아에서 만난 이들은 난생처음 만난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환대의 예절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느낀 편안함과 익숙함은 그러한 손님에 대한 배려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조지아 National Wine Agency 의장인 레반 메크줄라 (Levan Mekhuzla; 사진 맨 왼쪽)씨는 조지아식 환대 문화의 중요성과 타마다(Tamada)의 의미를 설명하였고 본인이 직접 타마다가 되어 연회에서 참석자를 위해 건배를 제의하는 방법을 전해 주었다.

이런 환대의 문화를 가진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연회를 잘 진행하고 잘 마감하는 것으로, 조지아식 연회를 수프라(Supra)라고 부른다. 조지아어로 식탁보라는 의미로, 식탁이 보이지 않도록 음식을 차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지아식 연회를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수프라에서 2명 이상이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연회의 전체를 주관하는 그날의 주빈이 있게 되는데 이를 타마다(Tamada)라고 부른다. 타마다는 토스트마스터이며 건배를 주관하는 사람으로 주재된 모임에서 가장 학식이 높고 존경받는 사람이 선택되며 연회에서 타마다의 말은 절대적으로 우선시된다. 만약 마땅한 타마다가 없을 때에는 진행만을 전문으로 하는 타마다를 초청하기도 한다. 선택된 타마다는 진심으로 그 모임의 완성을 위해 매시간 건배를 제의하고 때론 유명한 시를 읊는다거나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를 전하며 참석한 이들이 서로에게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중재하여 모든 참가자가 잘 귀가하도록 관리한다. 한 번은 저녁식사에서 케타씨가 눈을 적시는 일이 있어 무엇 때문인지 물어보니 옆 테이블에서 진행을 맡은 타마다의 말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라고 했다. 매사에 바쁘게 살아온 현대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과연 옆 사람의 말을 얼마나 귀 기울여 듣고 있을까 하는 자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잔잔한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조지아의 환대 문화는 이들의 순수함과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손에 뿔잔을 들고 있는 타마다를 형상화한 동상이다. 기원전 7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진품은 매우 작은 크기로 2006년 발굴되었다. 위의 사진은 시내에 전시된 가품이다.

조지아에서 힘들었던 일을 굳이 꼽자면, 모든 연회에 너무나 많은 와인과 음식이 참석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조지아에서 가다치릴리 고라로의 방문을 도와준 현지인 친구인 아우리카 (Aurika Kroitor)씨의 말에 따르면 조지아에서는 결혼식을 준비할 때 하객 한 사람당 준비하는 와인의 양을 1.5리터(750ml 와인 2병 분량)로 계산한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 없이 평균치를 나타내는 양으로써 많이 마시는 남자의 경우 2리터 이상을 마실 수 있다고 가정하고 와인을 준비한다고 한다. 만약 하객 100명이 오는 결혼식이라고 가정할 때 200병의 와인을 준비한다는 말이다. 물론 결혼문화에 따라 연회 시간이 길어질수록 준비하는 와인이 많아질 수도 있지만 정말 많은 양의 와인을 준비하고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연회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타마다의 역할이 그들의 문화에서 더욱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 연회에 와인이 모자라서 손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인드 또한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피자치즈인 하차푸리(Khachapuri)와 만두 모양의 힌칼리(Khinkali)등 조지아의 다채로운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서 해외에서의 식사를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도 문제없다. 그러나 여행 기간 동안 매 끼니마다 준비된 풍성한 음식이 테이블 가득 넘쳐나 매번 준비된 음식을 다 먹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필자의 경우엔 손님으로 참석하여 초대받은 음식을 남기기가 미안해서 계속 평균적인 식사량을 넘기다 보니 체중이 늘고 소화가 힘들어져 소화제를 찾곤 했다. 약간의 허례가 있는 내용으로 너무 많은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 부분은 조지아 내에서도 사회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한다.

조지아를 다녀와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볼 때 내 마음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방문 중에 만났던 조지아인들의 따뜻한 눈빛과 친절함이었다. 맞다. 필자는 화려함과 세련됨보다 훨씬 힘이 센 조지아인들의 친절함에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참으로 따뜻하고 안온했던 그들의 눈빛으로 인해 조지아는 필자에게 더욱 특별한 곳으로 기억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환대의 나라 조지아를 방문하여 필자가 느낀 조지아식 환대의 소중한 추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인 초시아시빌리 와이너리(Tchotiashvili Family Vineyards) 대표인 카카초시아시빌리(Kakha Tchotiashvili)씨가 조지아 양조용 토기인 크베브리의 내부를 청소하는 크라자나(Krazana)를 들고 있다. 20년동안 양조를 했음에도 아직 초심자라고 말하는 그는 평소엔 매우 수줍어하는 성격이나 그가 만든 와인을 설명할 때에는 환한 미소와 자신감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 사인한 자신의 와인을 선물로 건네던 그의 따뜻한 눈빛이 기억난다.

카레바 와이너리(Khareba Winery)의 와인숙성실 (Marani) 앞에서 방문단을 환영하기 위해 전통 복장으로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모습
카레바 와이너리(Khareba Winery)의 와인숙성실 (Marani) 앞에서 방문단을 환영하기 위해 전통 복장으로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모습

방문한 우리 일행을 위해 조지아 전통가요를 직접 불러줬던 모스미에리 와이너리(Mosmieri Chateau and Winery)의 총지배인이다. 그녀의 멋진 미소와 노래는 우리 모두를 매우 행복하게 해줬다.

왼쪽부터 금양 인터내셔날 정지웅, 비노에이치 육인영 소믈리에, 필자 변정환, 비티알커머스 노진호 이사
왼쪽부터 금양 인터내셔날 정지웅, 비노에이치 육인영 소믈리에, 필자 변정환, 비티알커머스 노진호 이사

여행의 전 일정을 함께했던 조지아 국립 와인 에이전시 고문인 메리암 메트레벨리(Mẵriam Metrevełi)씨와 함께 마지막 환송만찬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변 정환 원장 

블릭 와인 아카데미 원장 
WSET Level 4 디플로마
WSET 공인인증강사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
북저널리즘 공식작가

저서 : '와인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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