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것도 참 좋다. 식초도 일본의 식초와도 비슷하네요. 하긴 당연한 거겠지요?” 

치에가 얼음 띄운 식초음료를, 이것도 처음엔 시음 모드로 신중히 맛을 보고는 다시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일본술과 한국술은 기본적으로 같은 쟝르의 술이니까 식초가 비슷한 것도 당연하겠지. 그 식초와 술을 잘 섞으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지금 이 현미식초도 좋지만 파인애플 식초가 아주 좋았었는데, 요즘은 안 하시죠?” 

한주가 몰라서라기보다 아쉬운 맘에 물어보니 김경찬 대표가 단호히 대답한다. 

“그게 채산이 영 안 맞아서요.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가격으로 팔려면 만들면 오히려 손해에요. 천연식초, 수제 식초라고 하지만 사실 파인애플시럽 같은 것을 쓰지 진짜 파인애플만 써서 만드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소비자들은 차이를  잘 모르고 가격만 중시하니까 제대로 하는 사람만 손해 보는 경우가 생기죠.” 

한주가 입맛을 다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전형적인 예인데, 그거 성분표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일을, 참 사람들이란 무심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란 불평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 이제 일어나 볼까?” 

한주가 채근했다. 오늘 저녁 전에 양조장 한 곳을 더 들를 작정이라 마음이 살짝 급하다. 

“좋은 술, 좋은 시간 너무 감사드립니다.” 
“언제든 또 오세요.” 

두루의 두 주인이 나와서 두 손을 맞잡고 배웅을 했다. 한주는 치에를 차에 태우고 창문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또 뵈어요.” 
“네 또 오세요.” 

손을 흔드는 치에는 급한 경사를 내려가며 금방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두 분 참 좋지?” 
“응 그러네. 흔히들 장인들에게서 보이는 뭔가 좀 단단하고 불편한, 그런 게 없으셔.” 

“술 만드는 이야기 하다 보면야 그런 게 없지도 않지만..., 맞아! 마음결도 곱고 인심도 넉넉하고. 좋으신 분들이야. 그리고 그거 알아? 이 양조장은 농사 직접 지어. 쌀은 직접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다른 곳에서 사 오지만 누룩 만드는 밀이며 소주 만드는 메밀은 직접 농사짓는 거야.” 

“양조장 일도 힘드실 텐데 직접 농사를? 농한기에 술을 만드는 일본 양조장이라면 모르지만 여긴 일 년 내내 술을 빚잖아?”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지. 단순히 힘든 일을 견디니까 대단하다는 것보단 그렇게 직접 농사를 짓는 재료를 쓴다는 게, 뭔가 양조업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라고 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직접 농사짓는 재료를 쓴다는 건 양조를 하건 요리를 하건 특별한 일임이 틀림없지.”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한주는 느낀다. 양조장과 농사 중 어느 하나라도 한주는 제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는 데 말이다. 그 중 어느 것도 한주의 적성이 아니라 그렇긴 하겠지만. 

“양조장과 집이 붙어있는 곳은 일본에도 많지만 이곳은 뭔가 굉장히 가정적인 느낌이었어.” 

“가정적인 느낌이라니 말인데, 저 두 분 상당한 러브스토리가 있지. 두 분이 어느 큰 회사의 입사동기로 만나서 결혼까지 골인한 케이스야. 그것뿐이라면 흔한 사내연애라고 하겠지만 처음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남자는 인천 영종도, 공항 있는 그 영종도 넘어서 석모도라는 작은 섬으로 발령이 났어. 당시는 연륙교도 없는 작은 섬이었거든. 여자는 충청도 내륙의 공주로 발령이 나고. 그 공주까지 주말마다 김 사장님이 구 이사님 보러 오토바이 타고 왕복했다는 거 아냐.” 

“와, 그건 로맨틱한 스토리다 정말.” 

치에가 좋은 술을 만났을 때와 같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집 자체는 양조장 한다고 일부러 동북향으로 지은 집일 정도로 신경을 썼는데, 그래도 뭔가 가정집 같은 분위기인가 보지?” 

“보통 선호하는 남향으로하면 직사광선이 비쳐서 미생물에겐 안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지? 그래도 여기는 산지 아냐? 눈도 많이 오고. 이 추운 곳에서 동북향 집이라니, 그건 정말 술을 위해서 주거환경을 희생한 거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술은 어때?” 

“음… 좋은데, 좋긴 한데 아직 확실한 자기 색깔은 없는 것 같아. 석탄주라는 술이 시장에 많이 있는 만큼, 자기 색깔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탁주인 삼선은 산미가 높은 것이 개성이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아직 확실한 자기 것이 있다고 보긴 조금 어려울 것 같고…, 청주는 그보다도 좀 개성이 덜 두드러진 것 같아. 술이 안 좋다는 건 절대 아닌데, 그런 자기 개성이 있어야 시장에서 어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군. 아, 그나저나 한 모금에 석탄주인줄 알아맞히는 건 어디서 배운 재주야? 몰래 술 공부라도 했어?”

한주는 정말 궁금해서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당연한 거 아냐? 이제 거래처가 될 지 모르는데, 기본적인 공부도 안 하고 그저 혀끝으로 맛만 보는 건 실례지. 일본에서 사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도매상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거래처 술에 대해서는 공부를 깊이 한다고. 도쿄 같은 시장에서는 수천 종의 사케가 다양한 환경에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이쪽이 준비가 없으면 식당이나 슈퍼 같은 곳에 입점은 언감생심이고, 혹 입점이 된다고 해도 퇴출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봐야지. 신문이나 잡지 같은 곳에 광고비를 지출할 수 있는 대형양조장이라면야 상관 없겠지만 작은 양조장일수록 사람의 노력이 더 중요한 거야. 소매점이든 식당이든 개별 업장에서 술을 팔 수 있도록 지원을 할 정도가 안 되면 한 사람 몫을 한다고 할 수 없어.”

치에의 눈썹이 약간 가운데로 몰리며 엄격한 인상이 되었다. 한주도 백 번 공감하는 얘기다. 우리나라 도매상들은 아직도 술 날라주고 수수료 떼는 정도의 모델이다. 전국이 24시간이면 택배로 다 배송이 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이것도 술은 면허가 없으면 취급하지 못하도록 한 주세법만 아니면 간단히 무너질 비지니스들이다. 그리고 지역특산주 등이 성장하면서 인터넷 판매와 택배가 가능한 술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나저나, 술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정도의 일에 무슨 면허가 필요하단 말인가?

“옳으신 말씀이야. 우리나라 도매상들은 대개 술 주문 대신 받아주는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지. 그래서 제조업체나 고객들도 슬슬 불만이 쌓여가고. 뭐 원체 소주나 맥주 같은 경우는 다 같은 물건 날라주고 수수료 떼는 역할만 했으니… 그런데 술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일본에서 배울 데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 얘기를 하자면 좀 긴데, 우리 이제 또 새로운 목적지에 온 것 아냐?” 

치에의 말대로 레인지로버는 이제 다음 행선지인 예술 양조장의 입구 안내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치에는 이 비밀을 쉽게 알려줄 태세가 아니다.

*인터넷 주류판매도 허용이 되고, 도매상들도 조금씩은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긴 합니다. 아직까지 거래처에 나가서 영업지원을 할 정도의 역량을 가진 영업사원은 보기 힘든 것 같지만요.

그보다는 전국에 보틀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보틀숍은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가진 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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