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2000년부터 와인을 메이킹하기 시작해 와인의 품질은 물론이거니와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와인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와인메이커 '비비 그라츠(Bibi Graetz)'가 국내에 자신의 와인을 사랑하는 팬들과 애호가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와이넬의 그랜드 테이스팅 '아트인더글라스'에서 특별한 패션 스타일과 풍기는 아우라는 한눈에 그가 '비비 그라츠'임을 알게 했다. 작년 여름 한국을 방문했던 비비 그라츠의 마케팅 디렉터 빈센초 단드레아(Vincenzo D'Andrea)의 에너지도 보통 아니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번에 만난 '비비 그라츠'의 열정은 남달랐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을 조명하는 글과 평은 어디에나 있고, 실제 그의 와인은 완성도 있고 좋은 품질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그를 만나며 열정 가득한 괴짜 와인메이커 '비비 그라츠'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와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변화에 능한 늦깎이 괴짜 와인 메이커

2021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어 대면의 길이 막혔을 때, 해외 와이너리 관계자들의 한국 방문이 중단되고 마스터클래스, 시음회, 세미나 등 여러 행사들도 진행되지 못했다. 이때 비비 그라츠는 온라인을 통해 대대적인 버티칼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그의 열정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도와 다가오는 변화에 유연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친구들 모두가 여러 그림 도구를 들고 다닐 때 커다란 붓 하나만 들고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때부터 괴짜 아티스트인 비비 그라츠에게 '남다름'은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 중 하나가 되었다.

와인메이킹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교육 기관에서도 '와인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고 무작정 양조에 뛰어들었다. 비비 그라츠가 양조를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남다르다. 집안에 2헥타르의 포도밭이 있고 와인 셀러가 있는 등 여러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1999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와인 박람회 '비니탈리(Vinitaly)'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비니탈리 박람회에서 '올드바인(old vine)'으로 생산되는 와인들을 알게 된 그는 나무의 수령이 자기 나이보다 많은 것에 1차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그 올드바인으로부터 생산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들이 DOC를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과 포도 재배부터 양조까지 섬세한 작업들이 들어가는지를 알고서는 와인메이킹의 길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30년이 지나면 '비비 그라츠 DOC'를 만들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2020빈티지와 앞으로의 '오리지널 비비 그라츠'

와이넬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트인더글라스 갤러리(서울시 중구)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중 그는 인터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버티컬 테이스팅을 제안했고, 비비 그라츠 테스타마타(Testamata)와 꼴로레(Colore) 와인 2018빈티지부터 2020빈티지까지 총 6종을 시음하게 되었다. 

즉석으로 버티컬 테이스팅을 제안하여 직접 와인들을 푸어링 해주고 있는 비비 그라츠
즉석으로 버티컬 테이스팅을 제안하여 직접 와인들을 푸어링 해주고 있는 비비 그라츠

그의 생각과 철학이 변한 만큼 빈티지에는 그 차이가 명확했다. 특히 2018빈티지와 2020빈티지는 그 2년이라는 시간을 떠나 아예 다른 차원의 와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꼴로레나 테스타마타나 2018 빈티지는 와인 자체에 집중이 될 수 있는 스타일이 남아 있지만, 2019를 지나 2020빈티지는 '와인'과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하는 와인이 되었다. 그 무엇인가가 음식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공간이 되었든 말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변화를 몇몇 와인 소비자들이 반길지는 모르겠다. 과거에 보여주었던 강렬한 집중도와 밀도보다는 신선함, 유연함과 유려함, 우아함이 더 부각되었다. 그의 와인이 '더 마시기 편한(easy drinking) 와인'이나 '푸드 와인'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 메이킹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훌륭한 품질과 밸런스, 색채를 보여주는 '오리지널 비비 그라츠 와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테이스팅을 진행하며 "처음 와인을 만드는 10년 간은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더 강한 스타일을 추구했고 더 집중적인 스타일을 원했지요. 당시에는 그러한 스타일이 유행이기도 했습니다"라며 초반의 그의 와인 메이킹 스타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2011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가 왔다고 설명했다.

"2011년 어느 날 와인 소비자들의 리액션을 확실하게 포착했습니다. 이들은 실제 테이스팅에서는 집중도 있는 와인에 더 큰 반응을 보이고 높은 점수를 주었으나, 결국 우아하게(elegant) 마시기 좋은 와인을 선호했고 그러한 와인을 구매해 갔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아 양조와 생산 방식을 변화시켰지요. 최근 많은 소비자들이 선호하기 시작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와인으로의 변화의 첫 번째 인물이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와인 스타일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며, 이어 "이때부터 만들어진 와인이 진짜 비비 그라츠 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비비 그라츠의 '기대'가 나의 '기대'로

개인적인 감상으로 당일 시음을 한 2020년 빈티지에서는 그가 추구하는 확실한 우아함(elegant)이 묻어났다. 2018년 빈티지 또한 훌륭하였지만 대중적으로 익숙한 와인의 특징이 더 강했다면, 산지오베제만을 사용한 2020년 빈티지는 '비비 그라츠'가 구축한 와인의 우아함을 선명하게 알게 해 주었다.

모든 빈티지 테이스팅을 마치고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비비 그라츠
모든 빈티지 테이스팅을 마치고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 비비 그라츠

그는 2020빈티지 와인을 설명하며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가 추구한 와인의 스타일에 가깝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존 자신의 좋은 그림에 만족하지 않고 크게 화풍을 변화시키며 대중에게 또다른 새로움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아티스트와 같은 와인이 있다면 바로 비비 그라츠의 와인일 것이다. 

테이스팅하며 경험했던 향과 맛과 인상을 이 글에 구구절절 열거해 봐야 큰 의미가 있을까. 와인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 감상을 전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비비 그라츠도 모인 사람들 앞에서 즉석으로 6개의 빈티지 와인을 꺼내어 테이스팅 했던 것 아닐까. 마셔보고 경험해 보아야 안다.

테이스팅 말미에 그는 최근 2022빈티지를 배럴 테이스팅 했다고 전하며, 2022빈티지는 신선함과 말도 안 되는 스위트함, 스트로베리의 아로마 등이 어우러져 종합적으로 '매우 기대되는 스타일'의 와인이 완성될 것 라고 요약했다. 이전과 다르게 그가 말하는 기대가 나에게도 기대로 전해져 오는 것은 또 변화를 거듭해 새로움을 선사할 '오리지널 비비 그라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탈리아 수퍼투스칸에 지각변동을 가져와 와인업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괴짜 와인메이커 비비 그라츠의 행보는 와인업계 변화의 중심을 활기차게 역동하며 또 다른 새로움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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