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전통주 진흥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막걸리 세계화’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하는지, 또 그에 맞는 실질적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막연한 접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도 막걸리 수출은 활발했던 시기가 있었고, 당시 우리는 이를 세계화의 성과로 여기기도 했다.

2008년 4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막걸리 수출액이 불과 3년 만인 2011년 5,280만 달러로 폭등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 시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막걸리를 ‘막코리(マッコリ)’라 부르며 소비했고, 막걸리 수출 물량의 약 80퍼센트가 일본으로 향했다. 특히 사케가 주류이던 일본에서 막걸리는 식이섬유가 있는 탁한 지게미와 유산균이 풍부하다는 이미지 덕분에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변비에 좋다’, ‘피부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까지 생겼고, 덕분에 막걸리는 ‘웰빙 주류’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서울장수 살균 막걸리를 소개할 때 홈페이지 @산토리
일본에서 서울장수 살균 막걸리를 소개할 때 홈페이지 @산토리

2009년 기준 막걸리 수출국은 28개국에 달했고, 미국(7%), 중국, 동남아, 중동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단지 일본 시장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경험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주류 문화로 확장된 결과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역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끈 막걸리를 수입해 마셔보려는 흐름까지 생겨났으며, 이는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막걸리의 전성기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0~2010년 베스트 히트 상품 중 하나로 막걸리를 선정했고, 일본의 《닛케이 트렌디》도 막걸리를 2011년 히트 상품 베스트 30에 올려 주목했다. 그러나 이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일 관계 악화와 엔저(円低)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막걸리 수출은 급감했다. 2013년 4만 3,082톤이던 수출량은 1년 만에 29%나 줄어들어 3만 658톤에 그쳤고, 이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2021년에는 1만 3,982톤으로, 정점 대비 67%가 줄었다. 막걸리 열풍은 잠깐 타올랐다가 몇 년 만에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최근에는 다시 감소세에 있던 막걸리 수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2011년의 정점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2011년 일본 올해의 히트상품 선정 ‘막걸리’ @jpnews 홈페이지 갈무리
2011년 일본 올해의 히트상품 선정 ‘막걸리’ @jpnews 홈페이지 갈무리

막걸리의 세계화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막걸리의 세계화에 앞서 국내 소비 증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걸리 수출 역시 소비 확대라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에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막걸리의 세계화라고 하면, 한국의 쌀과 누룩, 물 등 우리의 재료를 사용해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외화 획득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막걸리 세계화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 과거 수출 중심의 일방적인 전략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적 해석과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현지화’ 전략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막걸리 관련 행사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미국 브루클린에서 생산되는 ‘하나 막걸리(Hana Makgeolli)’가 국내에 정식 런칭되는 행사였다. 단순히 해외에서 만들어진 막걸리가 역수입된다는 의미를 넘어, 막걸리 세계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사례로 주목했다. 하나 막걸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 뉴욕의 물,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누룩을 활용해 전통 방식으로 빚어진다. 유통 특성상 생막걸리가 아닌 살균 제품으로 출시되었지만, 그 외의 제조 공정은 철저하게 한국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나 막걸리 출시 행사 포스터 @하나 양조장
하나 막걸리 출시 행사 포스터 @하나 양조장

흥미로운 점은, 기존에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던 저렴한 형태의 막걸리가 아니라, 누룩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만든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 막걸리는 미쉐린 레스토랑을 포함한 미국 주요 한식당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기존 한국에서 수출되던 대량 생산의 막걸리와는 전혀 다른,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로 가격도 750㎖ 기준 32∼38달러(4만∼5만원)로 가격에서도 차별화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 막걸리’ 외에도 최근 세계 곳곳에서 막걸리를 양조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시애틀의 ‘레인브루(Rainbrew)’, 프랑스의 ‘메종 드 막걸리(MAISON de MAKOLLI)’, 캐나다 밴쿠버의 ‘건배 막걸리’, 일본 시마네현의 ‘오모나막걸리’, 영국 런던의 ‘오감타파스바’ 및 ‘고미술 막걸리’ 등이 그 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외국에서도 막걸리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직접 양조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누룩을 활용한 전통 방식의 막걸리를 추구한다는 점이며,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대체적으로 드라이 한편이다. 이는 한국에서 흔히 마시는 달콤한 막걸리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외국 요리와의 조화를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양조자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막걸리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이를 술의 스타일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누룩 및 한국적인것들이 있는 하나 양조장 인스타그램 @하나 양조장 인스타그램
누룩 및 한국적인것들이 있는 하나 양조장 인스타그램 @하나 양조장 인스타그램

일본의 사케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현지 생산되는 것처럼, 막걸리 또한 ‘글로벌 로컬(Global-Local)’ 전략이 가능한 술이다. 특히 막걸리는 신선도가 중요한 술이기 때문에, 물류비용과 품질 저하를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국내산 쌀과 누룩 사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막걸리 문화의 세계화와 인지도 제고에 기여 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으로 봐야 한다.

만두, 김치, 고추장 등 한국 식품들이 이미 각국에서 현지 생산되어 유통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듯, 막걸리도 이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야 할 시점이다. 수출 중심의 전략과 더불어 현지화 전략을 병행하고, 나아가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서의 막걸리 양조 기준, 전통 제조법 인증, 교육 지원 등 체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하나 막걸리의 국내 런칭은 단순한 술 수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 ‘해외 생산 = 전통성 상실’이라는 오래된 편견에서 벗어나, 전통 방식의 계승과 현지 문화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막걸리를 만들며 한국의 전통 술 문화를 존중하고 확산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막걸리는 단순한 전통주를 넘어 하나의 ‘문화 자산’으로서, 더욱 넓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형박사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전통주를 연구 하는 농업연구사로 근무중이다. ' 23년 인사혁신처 대한민국 공무원상 대통령 표창, 15년 전통주 연구로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대통령상 및 '16년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 우리술품평회 산양삼 막걸리(대통령상), 허니와인(대상) 등을 개발하였으며 개인 홈페이지 www.koreasool.net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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