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양조업계와 학계가 앞으로는 단 50ml 규모의 소규모 발효 실험만으로도 양조 기법을 정교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Penn State University)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Microvinification)'이라 불리는 극소량 발효가 전통적인 5갤런(약 19리터) 규모의 파일럿 발효와 견줄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 연구나 양조기법 테스트 시 보통 수갤런 단위의 발효 실험이 진행되지만, 이는 시간과 자원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이번 연구는 미국 양조포도학회지(American Journal of Enology and Viticulture)에 게재되었으며, 소규모 발효가 보다 정확하고 비용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의 시니어 저자이자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식품과학부의 미샤 크바스니에프스키(Misha Kwasniewski) 부교수는 “충분한 반복 실험이 뒷받침된다면,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 또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런 소규모 실험은 연구의 정밀도를 높이고, 포도 성분을 기반으로 와인의 결과를 예측하며, 상업적 양조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고정관념을 시험하다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은 종종 산소 노출이나 일관성 부족 등의 우려로 양조업자들 사이에서 외면되어 왔다. 이에 대해 크바스니에프스키 교수와 제1저자인 식품과학 박사과정생 이지키엘 워렌(Ezekiel Warren)은 이러한 편견이 타당한지를 직접 실험으로 검증했다.
연구팀은 산소 흡수량, 발효 온도, 캡 매니지먼트(포도 껍질과 과즙 혼합 방식), 침용 시간(껍질과 과즙의 접촉 시간) 등 다양한 요소를 비교 분석했다. 또한, 색감과 질감을 결정하는 페놀 성분 및 향과 풍미에 영향을 주는 방향성 화합물 등의 화학적 구성 요소도 50ml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과 5갤런 발효 사이에서 비교되었다.
그 결과, 소규모 발효 역시 산소 관련 문제에 특별히 취약하지 않았으며, 화학적 결과 또한 대규모 발효 실험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포도 품종과 무관한 활용 가능성
연구는 실험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샹부르상(Chambourcin)과 느와레(Noiret) 두 품종을 사용했으며, 동일한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손으로 탈립하고 으깬 뒤 동일한 효모를 첨가해 발효했다. 크바스니에프스키 교수는 “이번 연구의 핵심은 포도 품질이 아닌 발효 규모의 유효성에 있었다”고 강조하며 “이는 와인 양조를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이다. 업계나 일부 연구자들은 여전히 ‘의미 있는 실험은 대규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데, 이는 발전을 매우 어렵고 비용적으로도 부담스럽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실용적인 제품 개발 도구로 주목
이번 연구는 특히 양조 기술을 미세하게 조정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크바스니에프스키 교수는 “와인 양조 시 우리는 수확 시기, 특정 효모 추가, 여과 방식 등 수많은 세밀한 개입을 시도하며, 그 결과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은 이를 더욱 수월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계의 선입견과 달리, 마이크로비니피케이션은 산소 노출에 더 민감하지 않으며, 대규모 발효와 유사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연구자와 와인메이커 모두에게 실용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오리건 테루아 컨설팅 그룹(Terroir Consulting Group)의 발효 컨설턴트이자 크바스니에프스키 교수의 제자였던 알렉스 프레드릭슨(Alex Fredrickson)도 참여했으며, 미국 농무부 산하 식량농업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Food and Agriculture)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