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슈(Koshu) 포도 (사진=Wikimedia)
코슈(Koshu) 포도 (사진=Wikimedia)

일본의 내추럴 와인 산업이 전례 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포브스(Forbes) 보도에 따르면, 일본 내 와이너리 수는 지난 16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국내 소비자와 해외 바이어의 주목을 동시에 받고 있다.

2024년 기준 일본 전역의 와이너리는 총 493곳으로, 이는 2008년의 238곳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현재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46개 지역에 와이너리가 분포해 있으며, 이는 국가 전반에 걸친 포도 재배 및 양조 잠재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인정신, 문화, 그리고 코슈(Koshu)

미국 수입업체들도 일본 와인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 소재 내추럴 와인 수입업체 D-I Wine의 창립자 브렛턴 테일러(Bretton Taylor)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와인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장인정신과 정밀함, 섬세함에 대한 문화적 헌신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집중은 일본의 요리, 디자인, 그리고 와인 양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전했다.

2021년부터 일본 와인을 수입해 온 D-I Wine은 현재 5개 지역의 8개 와이너리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인 파트너 중 하나는 1958년 교육자 가와다 노보루(Noboru Kawada)가 설립한 ‘코코 팜 & 와이너리(Coco Farm & Winery)’로, 학습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사회적 목적에서 출발한 와이너리다. 이곳은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산 포도만을 사용해 야생 효모로 자연 발효를 진행한다.

코코 팜 와인은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주로 사용됐으며, 일본항공(Japan Airlines) 프리미엄 클래스에서도 제공되는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홍보 디렉터 오치 쇼코(Shoko Ochi)는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의 수출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며, “일본 와인은 포도의 순수한 맛과 은은한 감칠맛이 조화를 이루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와이너리는 도치기, 야마가타, 홋카이도에 자가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의 신뢰할 수 있는 내추럴 포도 재배자들과 협업해 약 30종의 품종을 사용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홋카이도산 오스트리아 품종으로 만든 ‘츠바이겔트(Zweigelt) 2019’는 카시스, 블랙 체리, 계피, 후추의 풍미와 함께 미묘한 흙 내음이 특징이다.

제도적 지원과 국제적 인정

일본 와인 산업의 성장 배경에는 제도적 지원도 한몫했다. 2002년 일본 정부는 지역산 포도를 사용할 경우 최소 생산량 기준을 6,000킬로리터에서 2,000킬로리터로 완화한 ‘지정 와인 생산 구역 제도’를 도입해 신규 와이너리 진입 장벽을 낮췄다.

이어 2003년부터는 ‘일본 와인 컴페티션(Japan Wine Competition)’이 출범해 일본산 포도를 100% 사용한 와인을 심사하며 품질 기준 향상과 산업적 야망을 견인해왔다.

현재 일본 와인은 IWSC, 디켄터 월드 와인 어워드(Decanter World Wine Awards),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nternational Wine Challenge) 등 국제 대회에서도 수상하며 세계 무대에서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조용한 혁신, 내추럴 와인의 부상

특히 내추럴 와인의 부상은 주목할 만하다. 테일러는 “도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와인 시장 중 하나로, 이곳의 소믈리에, 셰프, 와인 애호가들은 단순히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찬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프랑스의 내추럴 와이너리를 탐방할 때면, 이미 일본 수입업체들이 먼저 계약을 마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2024년 일본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1%가 내추럴 와인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는 유기농 또는 바이오다이내믹 와인(15.7%)보다 높은 수치다. 이는 소비자들이 내추럴 와인의 다양성과 진정성 있는 테루아 표현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방증한다.

비공식 통계지만, 일본 내 내추럴 와인 라벨은 현재 350종 이상이 온라인상에 유통 중이며, 이는 수요와 생산 모두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시사한다.

테일러는 “일본 와인은 아직 국제 시장에서 새로운 존재지만, 이미 장소성, 전통, 혁신성을 모두 담아내는 독창적 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와인을 “섬세하지만 인상 깊고, 알코올 도수가 낮으며 감칠맛과 공간감이 살아 있는 와인”이라 묘사하며, “이들은 소리치지 않고 속삭이는 와인이다.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보답해주는 카테고리이며, 지금이야말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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