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노가와(信濃川)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니가타(新瀉) 후루마치(古町). 니가타의 야경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품위 있게 늙어가고 있는 니가타 오쿠라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이 빛나는 봄을 배경으로 한 쌍의 남자와 여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  

“싱거워. 한국 맥주 보고 물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한텐 일본 청주가 그런 느낌이네. 나마겐슈(生原酒)가 가열 살균한 제품보단 좀 낫긴 하지만, 좀 낫다는 그 정도겠지.” 

한주가 말투까지 신랄하게 내뱉었다.  

치에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일본 사케를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은 확실히 분했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놓인 몇 병의 술 중에 몇 단계나 격차가 느껴지게 뛰어난 술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단 한 병의 한주, 전주의 ‘오늘’이기 때문이다. 사케 전문가로서 뭐라도 반박을 하고 싶어도 이 화려한 맛과 향은 압도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반박이고 뭐고, 이 술 한 잔을 더 마시고 싶다는 욕구가 무엇보다 강하게 치에를 지배하고 있을 만큼. 치에가 말없이 한 잔을 더 자기 잔에 따르자 한주가 빈정거리는 투로 또 속을 긁었다. 

“술의 도시 니가타의 양조장이 총출동한 이번 사케노진에서도 별로 눈에 띄는 데가 없어서… 내가 입맛이 높아진 탓이지 뭐. 치에도 참 용해 그런 술들을 잘도 파네.” 

이건 도발이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치에를 약 올리려는 의도적인 도발. 치에는 도발에 발끈해서 앵도라진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도, 어디서도 이런 술을 맛보기가 어렵다는 거야. 현실도 생각해야지. 이렇게 누룩까지 써서 완전 생주로 만들면 원가도 비싸질 수밖에 없고 냉장유통을 해야만 하쟎아.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술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구!” 

실제로 치에는 자기 역할이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술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 정확한 정보와 적절한 가격으로 술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니혼슈(日本酒)가 전 세계의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대중적인 리쿼샵 등에서도 팔리게 되는 데 치에와 월드니혼슈는 당당히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돈도 제법 잘 벌고 있고.   

“아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 치에 같은 도매상들이 편하고 값싸게 다룰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것 말이지. 머, 그런 생각이라면 마트 같은 곳에라도 납품하면 되는 것 아닌가?” 

치에는 이제 정말 얼굴이 빨개져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술을 사마시는 게 뭐 어떻다는 거야? 그런 빈정거리는 말투 좀 어떻게 못하겠어? 도대체가 사람에게 예의란 게 없어!” 

한주는 치에가 화를 내던 독기를 뿜던 별로 영향 받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더 느긋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의 저음이 느려지기 시작하면 조심해야 한다. 


용어설명 : 나마겐슈(生原酒)


일본술들은 거의 살균되어 유통된다. 우리나라 이자카야에서도 상온에 보관되어있는 사케들을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나마슈(生酒)는 살균(보통은 열처리)을 하지 않은 술이고 겐슈(原酒)는 물을 타서 도수를 맞추지 않은 술이다. 생주는 냉장을 해야 해서 유통은 어렵지만 미생물이 살아있어 맛과 향이 훨씬 깊고 풍부하다.

최근에는 일본 사케도 생주 출시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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