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쿄에 간다고 수선을 떤 것은 한주지만 막상 한주가 일어났을 때는 치에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전날 낮의 사케노진에서부터 시음삼아 마셔댄 술을 생각하면 엄청 숙취가 심하다거나 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늦잠을 자기엔 충분한 양을 마셨다. 한주는 마실 땐 곳잘 마셔도 다음날 숙취가 심한 편이다. 억지로 몸을 뒤틀어 핸드폰의 시간을 보았다. 

‘음, 벌써 10시인가? 오전 신칸센은 타기 힘들겠군’ 

니가타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론 두 시간 남짓. 사실 저녁 전에 무슨 약속이 있는 건 아니다.슬슬 씻고 나가서 점심 먹고 12시반 신칸센을 타더라도 오후에 숙소에 짐풀고 차 한 잔 할 시간은 있을 것이다. 

역앞 스자카야(須坂屋)에서 헤기소바정식을 먹고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도쿄에서도 그랬지만 에키벤은 먹을 것이 못 된다. 포장이야 반짝반짝하고 무슨 스토리도 잔뜩 만들어놨지만 뒷면의 식품성분란을 읽다보면 편의점 도시락과 하나 다른 것 없는 다양한 첨가물의 향연이다. 이것도 역시 돈벌기 위한 음식일 뿐. 그 와중에 편의점 도시락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맛이 특출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밥은 먹고 탄다. 니가타역 앞 의 헤기소바 면발은 언제 먹어봐도 탄탄하고 질김 없이 찰지다. 메밀은 씹는 맛이 절반이라는 것이 한주의 지론이다.

니가타는 이 며칠 비가 와서 눈이 많이 녹았지만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눈이 쌓여있고 스키 슬로프에는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과연 여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설국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가 묘사한 ‘설국’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가 온 그 터널도 아니고, 방향도 반대지만 역시 그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르는 광경이다. 한주도 강원도 홍천에 살지만 이 정도 눈이 오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눈이 오면 생활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은 열대성 작물이지만 이렇게 눈 많고 일교차 큰 곳에서 좋은 쌀이 나오기도 하지.’ 

아이러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곤 또 하나의 아이러니. 

‘일본은 청주의 나라라지만 사실 생주로 따지면 한주에는 결코 미치지 못해. 이런 정도 차이라면 물류문제만 해결하면 일본에서도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겠어.’ 

한주는 에코백에 담긴 ‘오늘’을 다시 보았다. 오늘 도쿄에서의 저녁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일부러 남은 술을 회수했던 것이다. 가져온 술 중 ‘오늘’은 이제 여분이 없으니까. 

‘사실 평소보다 퍼포먼스가 좀 좋긴 했어. 어제만 같으면 10점 만점에 9.5점은 줄 수 있을 정도지. 산미와 감미가 아주 미묘하게 밸런스가 흔들린 것을 제외한다면 말야. 향이 좀 단조로운 것은 장기숙성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숙제고. 그나저나 개봉한 지 하루가 지나도 누룩취가 전혀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열차는 도쿄 우에노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주에겐 여기가 종착역이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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