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고성무 점장에게 한 잔을 따라주고 영규도 한 잔을 마셨다. 한주도 아주 조금, 시음주가 적으니 마시면 안 되겠지만 이 술은 그냥 양보하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아주 조금 한 잔을 마셨다. 

한주가 한 모금을 입에 굴리며 음미하고 있는데 조금 먼저 마신 고점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무릎을 꿇을 듯이 주저앉았다. 크지 않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와 이건 무슨 맛이지요?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영규도 부리부리한 눈이 더 커지며  “야 이런 술이 있었습니까? 형님, 이거 뭡니까?” 

하는 반응이다. 고점장의 반응도 예외적이지만 한주를 마실만큼 마셔본 영규의 반응을 보니 '역시' 싶다. 한주가 고점장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고점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네요. 처음이에요 이런 술은.” 

“고점장님이 무척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이거 손님들께 좀 돌릴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그런데 모든 분들께 한잔 씩 드릴 정도는 안 되니까, 제가 잘 아는 단골손님들께 좀 돌려볼께요” 

고점장은 술병을 들고 일단 바로 옆의 젊은 남자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상황을 설명하고 새 잔을 내와서 술을 따라주었다. 두 남자는 이쪽으로 눈을 맞추고 가볍게 목례를 한 다음에 바로 술을 마셨다. 그 중 한 사람은 마시는 품을 보아하니 술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사람으로, 테이스팅을 하는 자세로 술을 마셨다.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심상하게 술을 마시는 모습이다. 

“오, 오이시이!” 

술을 아는 것 같은 사람이 눈이 두 배쯤 커진 것 같은 얼굴로 외쳤다. 그 표정은 ‘신!세!계!’라고 외치는 듯 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해오는 저쪽에 영규가 유창한 일본어로 응대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명함 교환이 시작되었다. 옆자리 손님들이 먼저 명함을 내밀며 인사를 하니까, 영업력 좋은 영규도 자기 명함을 꺼내고 한주에게도 명함을 달라 한다. 무척 화기애애하게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영규가 자리로 돌아왔다. 

“뭐라고들 하시나?” 

“이런 술은 처음이라고, 최고라고 좋아들 하시네요.” 

“하하 좋아하시니 다행이네. 그래서 뭐라고 말씀드린 거야?” 

“이것이 일본 사케의 원류라고, 살균하지 않은 생주의 장점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렸지요. 한국에서는 살균하지 않은 청주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도요. 일본한주협회 홍보도 조금 했지요.” 

“그래, 어려운 얘기를 할 기회였군.” 

그렇다. 생주와 살균주의 차이는 마셔보면 너무나도 확연하지만 온통 살균주에만 둘러싸여 사는 사람은 그 차이를 알 기회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비교시음을 해보면 몇 마디로도, 아니 말 없이도 금방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생주를 즐기게 된 사람은 결코 살균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사이 고점장은 다른 테이블로 가서 또 시음주를 따르고 있었다. 다치 쪽에 앉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들 두 명이다. ‘저 쪽에 앉은 신사분들이 보내신 겁니다’류의 멘트라도 한 것일까. 아가씨들이 이쪽을 돌아다보며 역시 눈으로 인사를 하고 가볍게 목례를 한다. 그 중 한 명은 입술이 ‘고맙다’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오물거렸다. 

두 여인네들이 한국식으로 잔을 마주치고 술을 마시더니 우선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곤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이번에는 또렷이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 오이시이(맛있어요)! ” 

라고 말하는 게 시끌벅적한 홀을 건너서도 들렸다. 이번에도 역시 눈이 평소보다 훨씬 확장된 상태이다. 한주는 순간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젊은 처자들의 놀라서 기뻐하는 모습도 아름답고, 그런 표정을 이끌어내는 술도 아름답고, 도쿄에서 한주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 밤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여기저기 술을 마셔본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들 눈이 커진다는 것, 그 표정은 순수한 놀라움과 기쁨의 표정이었다. ‘앉은뱅이술’이란 것도 있지만 전주의 ‘오늘’은 ‘눈이 커지는 술’ 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싶었다.

바로 이렇게, 모두가 놀라고 기뻐할 술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것이 한주의 꿈인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발자국을 뗀 날이다. 작은 술집에서 몇 사람만이 기억할, 그러나 역사적인 첫걸음의 날인 것이다. 


용어해설 : 앉은뱅이술


충청남도 한산의 소곡주를 앉은뱅이술이라 한다. 맛이 너무 좋아서 계속 마시다 보면 취해서 못 일어난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전주의 ‘오늘’은 ‘눈이 커지는 술’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술을 처음 마신 사람들은 전부 눈이 휘둥그레지는 특징이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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