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실을 말해주는 게 내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법이니까, 그게 싫으면 나 만나기 힘든 건 이미 알겠지. 내가 중요한 사실을 말해줄게. 이게 치에에게 갖추는 최대한의 예의란 말야. "

"....."

"술을 팔 생각을 먼저 하고 만드니까 코지(麴)에 효소제 같은 것을 쓰고, 열처리 살균 같은 것을 하게 되는 거야. 미생물로 발효시킨 술을 왜 가열해서 그 미생물들을 다 죽여버리지? 그건 맛있는 술이 아니라 유통하기 쉬운, 요는 돈 벌기 쉬운 술을 많이 만들려는 기술일 뿐이라고. 그런 짓도 오래 하다 보면 그게 진실이고 그게 전통 같이 느껴지지. 그 결과가 이런 술들인 거야. 영혼도 차별도 없이, 거기서 거기. 조그만 차이에 탄레(淡麗)니 가라구치(辛口)니 강조해 봤자 결국 향도 날리고 맛도 단순해진 술이 나오게 되는 거지. 뭐 애초에 돈 버는 게 목적이었으니 일관성은 있지만 말야.” 

예의라지만 그야말로 신랄하기 그지없는 말투다. 지금의 니혼슈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논리다.  니혼슈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소리다.

“하지만 어떤 양조장이라도 토지(杜氏) 이하 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는 거라고. 수백 년, 몇 대나 이어온 양조장들도 많아. 그렇게 네가 말 한마디로 평가할 만큼 얄팍한 게 아니라고!!” 

치에의 반격은 소리는 컸지만 전혀 날카롭지는 않았다. 어쨌든 본질은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하는 것, 그게 프로의 세계니까. 열심히 하니까 인정해 주세요라는 건 실은 반격이라기보다 약한 꼴을 보인 셈이다. 역사는 존중받을만한 것이지만 오래되었다고 다 잘하는 것이라면 망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나.   

“치에, 이 술을 마시고도 아직 정신이 안 들었어? 솔직히 말해서 그 열심히인 도지(杜氏)님들, 이 술을 마셔보면 반응이 어떨까? 정말 자기 술이 최고라고, 이제까지와 같이 계속 만들 수 있을까? 이게, 이 만큼이 진실이야. 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애초에 이 몇 년 사이에 나마겐슈 출시가 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정신을 차려가고 있는 것이라는 증거긴 하지.” 

한주가 말을 마치고 자신의 잔과 치에의 잔을 채웠다. 그리고 건배를 청하듯이 잔을 내밀었다. 일종의 화해의 졔스쳐이기도 했다. 아직도 얄밉고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지만 거절할 생각도 들지 않는 잔이었다.


용어설명 : 코지(麴), 토지(杜氏)


코지(麴) : 쌀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탄수화물을 당화한 후에 당분을 알코올 발효를 시키는 두 단계가 필요하다. 한주의 경우 이 두 과정은 누룩이라는 하나의 발효제에 의해서 수행되지만 일본의 경우는 이미 19세기에 당화 효소와 알코올 발효 효모를 분리해서 사용했다. 현재의 코지는 바로 이런 점(균의 분리 배양)에서 과거의 코지와 다른데, 일본 현지에서도 이 차이는 거의 잊힌 상태다. 

토지(杜氏) : 사케 양조장의 최고 기술자. 일본의 다른 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고 헌신적이며 전통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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