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를 따라 간 곳은 호르몬야끼집이다.  
“이라샤이마세!” 
하고 손님을 맞다가 영규를 보더니  
“아, 형님 오셨어요?” 

하고 한국말로 바뀐다. 지인의 가게로 안내해온 모양이다. 하긴, 가져온 한주도 마셔보아야 하니까 아는 사람 가게가 편할 곳이고, 게다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어쨌든 영규가 모르기가 오히려 힘들 것이다.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 받아 들어갔다. 전체는 30석쯤 되는 곳, 일본 답게 조금 비좁은 듯 한 느낌으로 좌석배치가 되어있지만 깔끔한 느낌이기도 하다.

“우선 음식을 시키시지요. 여기 호르몬야끼는 유명한 집이라 몇 달에 하나 체인점이 생겨나는 곳입니다. 여기도 본점은 아닌데, 점장하고 친하기도 하고 본점과 지점의 차이는 거의 없도록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곳이라 여기로 모셨습니다." 

“응, 영규가 알아서 잘 안배했겠지. 주문도 부탁해. 메뉴판은 좀 볼께.”

어디든 처음 가는 곳은 그 집에서 가장 유명한, 혹은 자신 있다는 메뉴를 시키는 편이다. 음,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 있으면 그걸 시키는 게 먼저인 것 같기도 하다.  한주에게 먹는다는 건 세상과 접촉하고 인식하는 과정의 하나이기도 했다. 어쨌든 영규는 척척 뭔가를 주문하고 있다. 영규와 점장, 자이니치 두 사람, 평소 대화는 한국어로 하지만 주문은 일본어가 주로 오간다. 음식 이름이라는 것은 역시 일본어가 편할 것이다. 한주는 옆에서 귀는 오가는 대화에, 반면 눈은 메뉴판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메뉴판에는 냉면도 있고 찌개도 있는데 냉면은 모리오카(盛崗) 스타일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이걸 맛보긴 좀 그렇고, 찌개는 수입되는 한국 대기업의 시판장류를 쓸 테니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하긴, 여기서 오늘 밤을 끝낼 것도 아니니 먹을 것에 과히 집착할 것이 없지. 오히려 관심이 가는 것은 일본 답게 소와 돼지 창자의 다양한 부위를 구분해서 판다는 것이다. 한주의 짧은 일본어로는 사진 메뉴판을 봐도 여기가 거긴가 어딘가 싶은 부위들이 많다. 그만큼 세분화가 되어있다.

메뉴판 탐구를 하다보니 어느새 금방 식탁이 차려진다. 영규가 상차림을 하러 온 점장을 인사를 시킨다.

“안녕하세요, 고성무입니다.” 

깡마른 몸이지만 어딘지 마음이 넉넉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나이는 영규에게 형님이라는 것을 보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정도겠다. 

“반갑습니다. 류한주입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엄청난 한주 전문가를 모시고 온다고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영규형님이 그러시더군요.” 

“….. 아 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못 됩니다만, 제 이름이 한주인 건 맞습니다.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주는 어딘지 칭찬을 못 참는 경향이 있다. 별로 칭찬 같은 것 받고 자라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류점장의 말에 왠지 모르게 어색한 기분이 되어서 살짝 시니컬한 느낌이 묻어나는 대답이다. 예의만은 잃지 않았지만. 

고점장도 뭔가 어색한 것을 깨달았는지, 바쁘기도 한 상황이어서인지 꾸벅 절을 하고는 금방 물러간다.  

숯불에 호르몬야끼를 굽고 있자니 점장이 금방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서비스로 드리는 것입니다. 아오이 오니(青い鬼), 푸른 도깨비라는 이름의 칵테일입니다. 식전주로 올려드리겠습니다.” 

푸른 도깨비라더니 과연, 한국 소주를 기본으로 뭔가 음료를 넣었는지 약간 새콤달콤한 맛이 있는 칵테일에 풋고추 두 개를 도깨비 뿔같이 꽂았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술에 있어서는 원리주의 성향이 있는 한주지만 이것을 보고는 미소가 돌지 않을 수 없다. 


용어소개 : 호르몬야끼, 모리오카냉면(盛崗冷麵)


호르몬야끼:
소나 돼지의 내장을 구워먹는 것. 원래 일본인들은 육식습관이 드믈고 특히 내장을 먹지 않아 버리는 것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생활하던 1세대 동포들이 이 내장을 활용해서 먹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외식업의 주류 메뉴로 발전했다. 호르몬이라는 말 자체가 ‘버린다’는 오사카 방언 ‘호루’와 ‘물건’ 이라는 ‘모노’가 합쳐진 말이라는 설이 유명하다. 호르몬은 조선인을 차별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호르몬야끼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리오카냉면(盛崗冷麵):
재일교포 양용철씨가 고향인 함흥의 냉면 스타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면발이 쫄깃하고 매운맛과 단 맛이 강한 스타일의 냉면인데, 현재는 모리오카시의 향토 음식으로 선정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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