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는 신주쿠 근처의 에어비엔비. 집 한 채를 다 쓰는 곳이다. 단신이니 방 한 칸이면 되지만, 이렇게 병적으로 주변공간을 확보하는 버릇이 있는 한주다. 특히 일본의 비즈니스호텔 같은 곳에 있다가는 폐소공포증이 도질 것 같다나 어쩐다나. MRI를 찍다가 말 그대로 패닉이 와서 의사 지시로 중간에 나온 적도 있다. 

‘도쿄는 오래만이네.’ 

그동안 큐슈로, 시코쿠로, 오사카로 거의 매 해 일본을 찾았지만 도쿄 시내에 들어와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그나마도 신주쿠나 긴자 같은 곳에서 술이나 마시는 정도. 이 도시의 속살에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겉핥기 여정으로만 다녔다. 우에노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신주쿠로 가서 숙소에는 짐만 던져놓고 나왔다. 역 근처의 커피숖에 앉아서 못다한 작업을 마무리하고나니 커피도 딱 한 모금이 남았다. 시간은 커피 한 잔 정도는 남았고. 

도쿄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규를 만나는 것이다. 김영규. 재일교포 3세. 일본 한주협회 회장. 몇 년 전 한주가 운영하던 가게로 불쑥 찾아왔을 때가 기억난다. 구래나룻이며 턱수염이 무성하고 눈이 왕방울 같은, 농담 좀 섞어서 ‘다루마’ 같은 느낌의 사내가 찾아와 일본억양이 틀림 없는 한국말로  

“여기가 세발자전거지요? 류사장니무 되시무니까?” 

하던 그 때가 말이다. 

“서울에서 꼭 한 곳 막걸리 전문점을 들러야 한다면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추천을 받아 왔습니다.” 

그 추천해줬다는 분이 미리 전화를 해줘서 누군가 올 줄은 알고 있었다. 일본손님이 드믈게 오는 것도 아니던 때라 그런가보다 했지만, 본인을 일본막걸리협회 회장이라고 소개하는 데는 한주도 뭐냐 했다. 일본에 막걸리협회 같은 것도 있었구나고 안 처음이 그 때다. 일본 전국에 개인, 혹은 기업 회원이 3천을 헤아리며 시음회 등의 행사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고 자체 기획, 개발한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막걸리를 서울에 들고 와서 같이 한일 국제 시음회를 한 적도 있는데 첨가물 없이, 준수한 막걸리였다. 일본 특유의 깔끔함은 도수가 낮고 가볍게 마시는 막걸리에 더 어울리는 특성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 사내도 술에 대한 집념과 내공이 남 못지 않구나라고 느낀 것도 그맘때다. 그후로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서 나름 가까운 사이가 되고, 양국의 술교류회도 하고, 의견이 안맞아 좀 투닥거리기도 하고, 두 나라의 다른 사정들을 주고받으며 느낀 바도 있고 그랬었다. 그렇게 한주를 한 번 일으켜보자고 의기투합 하고 있는 사이다. 그래서 막걸리협회라는 말도 한주협회로 바꾸고 활동하고 있다. 

오늘은 한주가 영규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다. 바로 ‘일본막걸리’ 마시기. 그렇다. 오늘은 한국에서 수출한 것이 아닌, 일본 현지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들을 마셔보는 날인 것이다. 

약속장소는 신주쿠도, 긴자도, 시부야도 아닌 이케부쿠로. 번화가이기 하지만 앞서 얘기한 곳들처럼 ‘핫한’ 느낌은 없는 곳. 이런 것이 막걸리 분위기인가 싶은 생각도 하며 이케부쿠로역 출구 앞에서 영규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젊은 친구들이 버스킹도 하고, 또 그걸 보다보니 생각보다 여기도 젊은 곳인가 싶은 기분도 들었다. 

“형님~” 

저기서 예의 다루마 같은 사내가 손을 번쩍 들고 주변이 다 돌아볼 만큼 힘찬 목소리로 불렀다. 김영규, 일본한주협회 회장이다. 


용어해설 : 일본막걸리


일본도 막걸리붐을 타고 많은 ‘맛코리(マッコリ, 막걸리의 일본식 발음)’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주로 니혼슈를 생산하는 일본 양조장들이 맛코리도 만들었는데, 막걸리붐이 잠잠해진 지금은 생산하는 종수가 많이 줄었지만 현재까지도 수십 종의 일본 맛고리가 생산되고 있다. 맛코리는 니고리자케 같은 일본 전통 탁주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쟝르이다.


백웅재
강릉에서 글짓고 밥짓는 백웅재 작가는 문명개화한 세상을 꿈꾸며 서울, 부산 등지의 한주클럽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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