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 Pérignon 2004 Champagne
Dom Pérignon 2004 Champagne

거의 20년이 된 샴페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색상이 짙어져 금색에 가까웠고, 따르면서 잔잔하게 솟구치는 섬세한 기포는 2~3분내 잦아들었지만 상큼하면서도 기분 좋은 향을 피어 올렸다. 팔렛에서는 구수한 효모, 꿀, 조청, 카라멜, 배숙, 말린 꽃의 풍미에 이어 너트류의 은은한 뉘앙스와 크리미한 뒷맛을 남겼다. 부드러워진 산미와 아미노산이 만들어낸 우마미, 그리고 와인속에 녹아 든 당분은 긴 세월을 통해 완벽하게 Integration 되어 감동적인 밸런스를 보여주었다.

2004빈은 피노 누아 53%, 샤르도네 47%의 블랜딩으로 병내에서 무려 8년간의 앙금 숙성을 거쳤다.

돔 페리뇽(Dom Perignon)은 루이뷔통 그룹(LVMH) 산하 Moet & Chandon(모엣&샹동)이 만든 최고급 빈티지 샴페인 브랜드로, 17세기에 활동했던 베네딕트 수도승 페리뇽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그는 포도 재배와 양조에 많은 공을 세운 수사였다.

실제 그의 이름은 피에르 페리뇽(Pierre Perignon)이었는데, 평생을 수사로 일하며 헌신했던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가 죽었을 때 도미누스 (Dominus: 수도원장)라는 호칭으로 예우해 주었는데, 이 Dominus를 줄인 말이 바로 Dom이 되어 그의 이름 앞에 붙게 된 것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그가 태어난 해와 죽은 해는 태양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생몰연대와 동일한데, 둘 다 1638년에 태어나 1715년에 사망했다. 한 사람은 태양처럼 빛나며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치와 향락을 즐겼고, 다른 한 사람은 음습하고 침침한 지하 셀러에서 와인을 만들며 고생하다 떠났으니 참 인생이 불공평하다.

Moet & Chandon (모엣&샹동)이라는 샴페인 하우스 이름도 유래가 있다. 창업자 끌로드 모엣 (Claude Moet)의 손녀가 결혼하면서 샹동 Chandon 가문의 사위가 들어와 동업 구조를 만들게 되자 회사 이름을 모엣&샹동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복덩어리 사위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것이 바로 페리뇽 신부가 수사로 일했던 오빌레르 수도원 교회와 포도밭이었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셈이다.

돔 페리뇽의 첫 빈티지는 1921년이었지만 출시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1936년에야 출시되었다.

돔 페리뇽이란 브랜드는 원래 메르시에 샴페인(Champagne Mercier) 하우스의 상표로 등록되어 미사용 중이었는데, 1927년 모엣 가문과 사돈을 맺으면서 무상으로 양도해준 덕분에 모엣&샹동의 브랜드로 탄생한 것이다. 모엣 가문이야 말로 탁월한 혼인정책의 귀재라 할 수 있겠다.

페리뇽 수사가 샴페인을 발명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는 거품을 싫어했고, 어떻게 하면 이 거품들을 없앨까 머리를 굴리며 세월을 다 보냈다. 상파뉴 지방은 파리보다 훨씬 북쪽이라, 추위가 빨리 찾아왔기에 효모들이 발효하며 알콜을 만들어 내다가 기온이 내려가면 발효를 멈추게 되고, 병입 후 봄에 기온이 오르면 효모들이 깨어나 탄산가스를 만들면서 그 압력으로 병이 폭발하기 일쑤였다.

문제는 한 병만 터지는 것이 아니라 연쇄 폭발을 일으켜 생산량의 절반을 잃기도 했기에, 페리뇽 신부는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색이 베어 나오지 않게 하는 프레스 방식의 고안, 3개 품종을 섞는 아상블라주 방식의 채택, 블랑드 누아 방식 고안, 코르크 마개를 마감재로 사용, 고압에 견디는 영국산 Bottle 사용 등 오늘날의 샴페인이 있기 까지 마중물 역할을 해 냈기 때문에 그의 업적을 칭송하게 된 것이다.

샴페인의 내부 압력으로 병이 터지는 문제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석탄 사용을 통한 고열 용융법으로 병을 제조하면서 병의 강도가 강화되어 문제가 해결되었고, 코르크의 사용과 그 위에 씌우는 머즐(쇠 철망)의 발명으로 해결되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샴페인은 1844년 아돌프 자끄손 (Adolphe Jacquesson)의 머즐 발명 이후라고 봐야 하겠다. 1710년대부터 거품나는 샴페인이 만들어지긴 했으나, 아주 약한 발포성 알코올 음료였을 뿐이다.

Dom Pérignon 2004 Champagne
Dom Pérignon 2004 Champagne

발효가 끝난 와인 병 내에 설탕과 효모를 넣어 2차발효를 유도하여 스파클링을 만드는 샴페인 방식 (Methode Champenoise)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프랑스인이 아니고 영국 의사 Christopher Merret였는데, 그는 1662년 그의 논문에서 샴페인 방식을 처음으로 문서화하고 체계화한 업적을 남겼다.

제대로 된 샴페인은 크리스토퍼 이후 200년이 지난 뒤 나오게 되었다. 이전에 작은 거품이 나는 샴페인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이후 기술 발전을 통해 강한 압력을 견디는 병, 코르크 마개, 철사망 머즐의 발명이 있고 난 다음에야 지금 같은 샴페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일이든 이론이 먼저 정립되고, 그에 따르는 주변 연관기술의 발전이 따라야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나오는 것이다.


김욱성은 경희대 국제경영학 박사출신으로, 삼성물산과 삼성인력개발원, 호텔신라에서 일하다가 와인의 세계에 빠져들어 프랑스 국제와인기구(OIV)와 Montpellier SupAgro에서 와인경영 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25개국 400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으며, 현재 '김박사의 와인랩' 인기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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